한 명의 사람으로도 설명되는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어느 순간을 이야기해도 그 사람이 묻어나온다. 그는 핀란드 교환 학생의 시절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시아의 한국과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핀란드의 한 도시에서 만났다. 서로에게 큰 공통점은 없었지만, 그는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었고 나는 그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이었다. 그 외에도 그와는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한마디만 나누면 친구가 되어 있다. 나도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는 잘 줍는다. 무엇이든 잘 줍는다. 핀란드에서는 긴 겨울이 끝나고 노동절을 맞는 축제가 열린다. 집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밖으로 나와 술과 햇빛을 즐긴다. 축제가 끝나는 날에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맥주캔을 이곳저곳 버려둔다. 이제 그의 일은 스쿠터를 타고 그 캔을 하나씩 줍는 것이다. 캔을 슈퍼에 가져가 돈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많이 주웠냐고 물어보니 부자가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만큼의 돈은 된다고 한다. 그러더니 캔을 팔아 버거를 사주겠다고 한다. 얼마 후 버거를 먹게 나오라더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버거집으로 데려갔다. 버거를 우물우물 씹으며 꽤나 노동집약적으로 벌어들인 수입을 이렇게 편히 취해도 되나 생각했다.
이후 한동안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할 때 그를 can이라 불렀다. 나 정말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만났어. 캔을 주워서 돈을 번다고 한다? 신기하지? 근데 그 돈으로 버거를 사주겠대, 아 이제 캔(can)이라 불러야겠다. 오늘은 캔과 시내에 나갔어. 그날은 캔과 다른 친구들과 차를 빌려서 놀러 가서 호수에 묶여 있지 않은 카누를 탔어. 캔은 어렸을 때 총을 맞을 뻔한 적이 있대. 오늘은 캔이 한국어 시험을 볼 때 도와줬어. 캔은 너무 웃기지 않아? 우리의 대화에 담긴 수많은 캔
그에게는 사람을 줍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기도 한다. 사람을 줍는다. 한 번 눈이 마주치면 인연이 시작된다. 하루는 그와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고 그는 내가 입고 있던 자켓에 적힌 한국어를 알아보며 말을 건네왔다. 짧은 만남에서 우리는 연락처를 공유했고 그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나는 그의 친구가 되었다. 안부를 묻는 게 따뜻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였다. 별일 없는 일상의 순간에 여행의 순간에 그는 매번 문을 두드리며 불쑥불쑥 찾아왔다. 잘 지내고 있는지 별 탈은 없는지 물어왔다. 때론 문을 활짝 열며 반겨주었다. 사람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가 있는 곳으로 초대해 주었다. 지낼 곳이 없어져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언제든 자신의 방에서 지내도 된다며 지금 할 일은 걱정하는 것이 아닌 이따 잘 놀 수 있도록 잘 쉬어두는 것뿐이라고 말해주었다.
하루는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인지 물어보았어. 너는 답했지. “친구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거야.” 어떻게 저렇게 겁 없이 다가가고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까 궁금했어. 아낌없이 다 주어버리면 너에게 남는 것은 무얼까? 나는 늘 두려웠거든. 사람들에게 기대하게 되면 실망 또한 커지는 법이니까. 사람에 기대하는 것도 그들이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도 지겨웠어. 그런데 많은 상처를 받고도 다시 줄 수 있는 너의 모습이 참 강해 보였어.
어느 날은 자신에게 룸메이트가 생겼으니 빨리 보러 오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문을 두드리고 새로운 룸메이트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침대를 한가득 차지하고 있는 악어 인형을 가르킨다. 자기 몸만한 악어 인형을 숲에서 주웠다고 한다. 과연 윤리적인 행동일까? 싶으면서도 그러려니 한다. 그런 그에게도 자신만의 확고한 윤리적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트램을 탈 때 주로 돈을 내지 않는데, 정해진 트랙 위에서 자동화된 시스템에 맡겨 운행되는 트램에 트램 기사가 하는 것이라곤 감독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돈을 지불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 후부터는 트램을 모는 기사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 일이 그렇게 쉽나? 그렇다면 버스는? 버스는 노동이 필히 들어가기에 제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뭐 사실상 버스는 돈을 내지 않으면 탈 수 없는 구조이고 트램은 눈치를 보며 돈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
나침반 펜던트를 나의 작은 곰돌이 인형에 달아주며 말한다.
“길을 잃지 말라는 의미에서”
“어디서 난 거야?”
“주운 거야”
작은 선물이지만 소중하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 종종 영화를 한 편씩 보았다. 하루는 이탈리아 남부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루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영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주인공 루카와 알베르토가 힘차게 안디아모(let’s go)!를 외치며 출발하는 모습과 그들이 빨간 베스파를 타며 자유로워 보였던 모습이 기억난다.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언젠가 빨간 베스파를 타고 여행을 떠나자고 다짐하며 안디아모를 외치며 시내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우리의 마지막 일주일은 그렇게 보냈다. 새벽까지 시내를, 호숫가를 걸어 다니고 간혹 호수에 뛰어들며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는 간혹 옆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다. 엉망이 되어 있는 방에 멋쩍어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삶이 더 엉망이라고 농담을 건네주는 그런 사람. 장소는 공간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 그런 그는 온 마음을 아낌없이 다 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재기보다 내어주는 것. 문을 두드리는 것. 삶에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이것들은 내가 너로부터 주운 것들.
한국으로 돌아와 영상 통화를 했다. 화면에 보이는 천장에는 달랑달랑 달려있는 나무늘보 인형. 또 어디선가 주워왔다던 그 인형. 길을 걷다 스쿠터를 보게 되면 그 상표명을 살핀다. 가끔 나는 우리가 함께 빨간 베스파를 타고 이탈리아의 도시를 누비는 상상을 한다.
글_ 숲(하자글방 죽돌)
디자인_ 물고기(하자글방 죽돌)
2023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은는이가〉는 구성원의 변화를 앞두고 그간의 활동을 기념하고자 진(zine)을 쓰고 엮었습니다. <닿은 마음이 쓰는 우리가>(줄여서 은는이가)라는 제목처럼, 독자의 두 손에 닿기까지 〈은는이가〉의 우정 어린 글쓰기의 여정이 담긴 진은 손수 한 땀 한 땀 제작되었습니다. 글쓰기 공동체로서 죽돌이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리며 만든 작지만 큰 세계입니다. ‘From. 하자글방’에서는 진에 실린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