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그들의 To do list 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3년 여덟번째 일-기는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에 재학중이며 하자 청소년 동아리 팀 '해제'에서 영상 작업을 하는 지금의 기록입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19살 지금입니다. 요즘은 크리스마스에 관심이 있어요. 크리스마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챙기거든요. 5학년쯤 되면 어린이날에도 선물을 못 받는데 모두에게 선물 받을 기회가 있다는 게 좋아요. 생일도 아닌데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이 기분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To do list
영화보고 기록하기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하기
투두리스트 작성하기
7시 50분에 집에서 나오기
밀린 병원 가기
돌려서 말하기
영상 공부하기
수어 공부하기
말 안 하기
글방에 꼬박꼬박 참여하기
운전면허 따기
페스코 실천하기
➡️ 다르게 사는 일에 집착하지 않기!
- 평소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아침 7시에 일어나면 지하철을 1시간 정도 타고 학교에 가요. 학교에 가면 프로젝트를 계속하다가 5시쯤 끝나요. 끝나고 집에 바로 오는 날은 별로 없고, 남아서 잔업을 할 때가 많아요. 동아리 회의 같은 것들을 하죠. 그럼 오후 9시~10시쯤 돼요. 집에 와서도 해야 하는 일을 하다가 보통 새벽 2시쯤 잠드는 것 같아요.
- 지금은 ‘거꾸로캠퍼스’라는 학교에 다니고 있죠. 어떤 학교인가요?
거꾸로캠퍼스는 비인가 대안학교예요. 일정 기간 배우면 졸업하는 ‘몇 년제’ 형태가 아니라, 내가 배움을 다 마쳤다고 생각할 때 학교를 나가는 ‘엑시트’를 하는 곳이에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팀을 이뤄서 사회문제 찾고 솔루션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저는 ‘어게인’이라는 팀에서 2년 가까이 활동했습니다. 저희 팀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봤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도담’이라는 이름의 솔루션을 만들었죠. 흔히 스포츠를 할 때 자기감정을 쉽게 표현하잖아요. 그래서 스포츠를 하고 회고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어요.
- 하자에서는 ‘해제’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청소년의 입장에서 느낀 사회문제를 그 시선 그대로 궁금한 점이나 문제라고 느끼는 점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올해는 노동조합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보는 영상을 만들었고, 대안학교 내 학교폭력과 관련한 영상도 만들었어요. 대안학교에도 학교폭력이 있는데 그에 대한 대비나 제도가 부족한 것 같아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죠. 또, 한동안 MZ세대가 계속 화두였잖아요. 미디어에 나오는 ‘MZ’가 진짜 그 특징을 잘 담고 있는지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영상도 만들었습니다.
해제 활동 모습
- 작년에 만났을 때는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해외 대학 진학을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국내 영화과에 가려면 지금 학교에서 해온 활동이나 하자 동아리에서 한 작업을 포트폴리오로 인정받을 수가 없거든요. 국내에도 대안학교 포트폴리오로 갈 수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제한적이에요. (포트폴리오를) 다 새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아쉬웠고, 그래서 해외 대학을 알아보게 됐어요. 대학에 가지 말고 취업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깊게 공부해 보고 싶은 욕망이 커서요.
- 삶의 좌우명이나 모토가 있나요?
제 하자 이름과 연관이 있는데요. 그동안 할까말까 고민하거나 재보고, 이거 하면 뭐가 좋지? 생각하다가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아요. 그래서 할까말까 고민할 때 “지금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닉네임도 지금이라고 지었어요.
- 요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엑시트(졸업)하고 뭐하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우선 내년까지는 학교에 다닐 계획이고요. 유학 준비도 하고 있는데… 가지 않을까요? 여기서 고민은 ‘유학 자금을 부모님께 전부 의존할 것인지, 아니면 졸업하고 돈을 모아서 갈 것인지’인데요. 만약 먼저 돈을 모은다면 그 시간을 얼마나 가질 건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유럽 대학을 추천 받았는데 저는 캐나다에 가고 싶거든요. 철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캐나다에 정말 친한 친구가 이민을 갔어요. 그 친구가 이야기 해주는 캐나다의 문화나 학교 이야기가 궁금해요. 예를 들면 성소수자 친화적인 문화 같은 거요.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근데 국내 대학 입시도 하긴 하려고요.
✔️ 영화보고 기록하기
제가 처음 영화를 만든 게 고2 여름방학이었어요. 지역 특성화고에서 영화를 만드는 워크숍에 참여했거든요. 워크숍이 끝나고 영화 기록 노트를 받았어요. 100개의 영화를 기록할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얼마 전에 다 채운 거예요. 일기는 꾸준히 못 쓰지만 영화 일기는 영화뿐 아니라 누구랑 봤고 어땠는지를 다 쓰게 되니까 일기의 상위호환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맘에 안 드는 영화는 ‘내 취향 아니다’ 한 줄만 쓰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건 ‘처음엔 어떤 인상이었는데 실제로는 어떻다’ 라던지, 꽂힌 장면에 대해 쓰기도 해요.
- 영화는 보통 어떻게 봐요? 영화관에 직접 가기도 하나요?
영화관에 가는 걸 엄청 좋아해요. 요즘은 영상자료원(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영화 보는 것에 맛 들였어요. OTT에 없는 영화도 영상자료원에는 있거든요.
✔️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하기
지금 제가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일이 학교 프로젝트인데 그 프로젝트는 영상과 관련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 밖에서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싶어서 해제(영상 동아리)도 시작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친구들과 같이 팜플렛 만드는 프로젝트도 시작했고요.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팜플렛에는 청소년이 새로운 월경 용품을 써도 되는지, 뭐가 좋은지 그런 정보를 담으려고 해요. 10대들은 보통 부모님에게서 정보를 얻는데 부모님은 생리컵이라든지 다양한 월경 용품을 경험해 본 세대가 아니잖아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고 싶어서 산부인과나 보건소, 아하센터(청소년 성문화센터)에 계신 전문가 선생님들을 인터뷰하려고 준비 중에 있어요.
✔️ 투두리스트 작성하기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오늘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제 삶을 매니징하기 위해 투두리스트를 적기 시작했어요. 해보니까 매우 도움이 되더라고요. 보통 노션에 적어요.
✔️ 7시 50분에 집에서 나오기
제가 지각왕이거든요. 어느 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거예요. 프로젝트 하면서 팀원들에게 신뢰를 얻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그래서 선생님과 이야기해 봤는데 제가 8시에 나온다고 했더니 7시 50분에 나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니까 지각을 한 번도 안 하게 됐어요.
✔️ 돌려서 말하기
말을 강하게 하는 편이라 같이 프로젝트하는 친구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어 “왜 그렇게 해? 나라면 그렇게 안 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상처받는 친구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돌려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뭐든지 일단 “좋은데요?” 하고 보는 거죠.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니까 팀원들이 “진짜 사람 됐다”라고 말해주고, 노력을 알아주더라고요. 좋게 대화를 시작하니까 팀에 새로 들어온 친구도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런 효과가 있었어요.
✔️ 영상 공부하기
다른 영상 툴은 혼자 배웠는데 3D 툴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기계치이기도 해서 학원도 가고, 인강도 들으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어요. 학원은 이제 등록해서 곧 다닐 예정이고 인강으로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어요. 청소년 센터라던지 영상 관련한 수업이 있으면 바로 찾아가기도 해요.
✔️ 수어 공부하기
수어를 1년 전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왜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평소 말이 많은 편이라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거예요. 손으로 말해보니까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면이 있었어요. 수어는 복지관에서 배우고 있는데 또 새로운 세계잖아요. 거기 계신 분들이랑 소통하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전에 제가 진짜 좋아하는 농인 유튜버를 우연히 만났는데, 제가 수어를 할 수 있으니까 수어로 대화를 한 거예요. 감격스럽기도 했고 ‘수어를 한다는 게 인생에 참 이로운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 말 안 하기
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여러 사람과 있을 때 말을 많이 안 해봤더니 그게 저한테 좋다고 느껴졌어요. 말을 많이 했을 땐 후회도 많이 했거든요. 이제는 말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나는 시끄러운 캐릭터다’라는 것에 대한 압박도 줄었어요. 생각할 시간도 많아져서 좋아요.
✔️ 글방에 꼬박꼬박 참여하기
하자에는 하자 글방이 있는데 저희 학교에는 ‘히치 글방’이 있어요. 5기째 열리고 있고, 저는 한 기수 빼고 다 참여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영화도 글 쓰는 것 때문에 시작했으니까요. 보통 영상이나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는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글방 사람들은 차분하고 따뜻해서 다른 느낌을 받아요. 글에만 집중해서 쓰는 시간도 좋고요. 프로젝트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룹이 있다는 게 좋아서 꾸준히 참여하려고 하고 있어요.
- 글은 언제부터 썼나요?
한글을 알 때부터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웃음) 백일장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요. 평소에 주변에서 말을 재밌게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제가 하는 재밌는 말을 글로 기록해 두기도 해요. 글을 쓰면서 농담을 디벨롭시킬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단어 하나만 바꿔도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좋고 저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도 좋아요.
✔️ 페스코* 실천하기
예전부터 실천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도 환경 관련한 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일상 속 실천이 잘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채식을 하고 싶은데 어떤 음식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슬퍼졌거든요. 근데 어느 날 그냥 지금부터 해야겠다, 하고 지금 5개월째 하고 있어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하면 생각보다 잘 돼요. 오히려 계획을 세우거나 준비해서 하면 잘 안되더라고요. 해보니까 확실히 건강해졌어요. 돈도 덜 쓰게 되고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채식을 하면서 유제품, 가금류의 알, 어류는 먹는 사람.(네이버 지식백과)
- 팀 활동을 많이 하는데 채식 실천이 어렵지는 않나요?
프로젝트 할 때 완전 어려워요. 전에 팀원들이랑 회식 갈 일이 있었는데 몇 가지 선택지 중에 ‘지금을 설득해서 고기 먹으러 간다’가 선택지에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보통 그럴 때 너무 난처해서 그냥 안 가거든요. 어떤 경우에는 안 갈 수가 없어서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고기 말고도 여러 메뉴가 있는 가게에 가요.
➡️ 다르게 사는 일에 집착하지 않기!
이건 전체를 아우르는 항목이에요. 저는 자퇴를 2번이나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선택에 대한 다른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거예요. 남들과 같은 결과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요. 정작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다르게 살아가는 인생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과 ‘현재를 사는 시간’에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저는 미래 준비하는 시간은 ‘대학 입시, 논술, 정시’, 현재를 사는 시간은 ‘프로젝트’ 이렇게 나눠서 생각했는데요.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어 공교육 학교에 다니면 입시를 하니까 미래 준비만 하는 거잖아요.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은 여기까지야, 하고 정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예체능을 하다가 그만두고 나서도 그게 밑거름이 돼서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그게 제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한데, 나눠서 생각하면 그런 시간은 의미 없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