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돌 노트>는 하자센터에서 '판돌(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 판돌들의 커리어와 일터로서의 하자에 대해 이야기 나눈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여섯 번째 인터뷰이로는 학습생태계팀(2022년 기획3팀) <오디세이학교>에서 길잡이 교사 역할을 맡고 있는 판돌 재은을 만나보았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 하자에서는 보다 수평적인 소통을 위해 본명/직급 대신 하자 이름(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에 등장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는 <프로젝트> 게시판에서 자세히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판돌 노트 교사 편 - 재은
#오디세이학교 #대안교육 #대안학교 #자유학년제 #교사
안녕하세요. 재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재은이고요, 학습생태계팀1)에서 오디세이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디세이학교>는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자유학년제’를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제 언어로 말하면 17세의 청소년들에게 1년의 틈이 주어지는 가능성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1) 학습생태계팀은 2022년 기획 3팀으로 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재은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커리어를 이어오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떻게 하자에 오게 되셨나요?
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해서 졸업 시점에 ‘청년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었었는데요. 그때가 2012년이었는데, 격변의 시기에 정당을 하고 보니 정치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에도 청년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청년허브’가 생겼을 때 함께 일했고요. 그리고 저는 부모님께서 환경운동을 하셨어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생태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질문하고 화학물질을 적게 쓰는 일을 실험하는 ‘비전화공방’에서 홍보와 대외교류/협력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후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하자를 추천해 줬어요. <오디세이학교>가 저는 좀 궁금했거든요. 청소년을 만나고, 교사로 일한다는 건 뭘까.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기대가 됐어요. 망설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요.
청소년을 만나본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담임 교사 역할을 맡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하자에서 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프리랜서로 하면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게 좋았어요. 청년허브에서도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한 사람과 깊이 있게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빛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사람이 성장하는 조건, 교육이라는 것이 뭘까 호기심도 있던 참이었어요.
두 번째는 제가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서 나왔는데 제게 영향을 준 선생님들이 있거든요. 사회학을 전공한 것도 선생님들의 영향이 컸는데요.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오디세이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일하면서도 제 경험이 반영되는 것 같긴 해요. 질문이나 청소년을 만나는 태도에 있어서요.
그럼 교사 역할을 실제로 해보니 어떠신가요?
훨씬 좋아요. 고등학교 때는 또래 친구들을 무서워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일을 맡을 때 망설였던 부분이 청소년이 무서운 것도 있었거든요. 20대 이상의 청(소)년을 만날 때는 사회적인 얼굴로 만날 수 있지만 10대는 날 것이잖아요. 저도 날 것이고 상대도 날 것일 때의 뾰족함이 겁났는데 막상 만나보니 역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어요. 청소년들이 가진 흡수하겠다는 에너지가 있거든요. 그 눈빛과 에너지가 자극이 되게 커서, 저를 계속 공부하게 만들어요. 청소년들에게서 배우고 공부하게 되고 수업을 진행할 때도 연구하게 되고.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일을 하면서 ‘아,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네’ 하는 지점이 있어요.
오디세이학교 교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일단 담임 역할이 있어요. 죽돌2)들 개개인의 성향과 지금 과정에서 하고 있는 질문들을 이해하면서 ‘같이 가자’, 찌르기도 하고, 너무 앞질러 가지 말고 ‘뒤도 좀 보자’, ‘천천히 가자’. 이런 일을 해요.(웃음) 상호 유기체 같은 공간을 조심스럽게 만들어가는 느낌? 도자기를 빚어가는 느낌? 표현하기 어렵네요.(웃음)
정확한 업무는 담임 역할에 행정 업무도 있고, 행사 기획, 홍보도 하고요. 거의 모든 일의 총합이네요. 죽돌들이랑 싸우기도 하고요(웃음) 수업도 해요. 저는 ‘세상 읽기’ 시간에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어요. 이들의 글을 읽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2) 죽돌: 하자에서 활동하며 배우고 학습하는 청소년
오디세이 죽돌들과 재은
학교 일상을 기획하고 운영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저의 컨디션이요. 제가 건강하지 않고 마음이 작아져 있을 때는 모든 게 안 좋아 보여요. 죽돌들이 아프다고 말해도 ‘정말?’하면서 의심하게 되어 안 좋더라고요. 죽돌의 이야기 속에서 숨은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관계를 쌓으려면 결국은 다시 저로 돌아와요. 제가 건강해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퇴근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거리두기를 못 할 때 예민해져서, 정해진 시간까지 일하고 퇴근한다가 스스로의 약속이에요.
하자 판돌들은 명함 만들 때 6가지 디자인 중에 고를 수 있잖아요. 재은은 어떤 그림을 고르셨나요?
저는 초록이 있는 거요. 풀인가? 초록색이 좋아서 골랐어요. 초록도 레이어가 많잖아요. 겹겹이 있는 게 예뻐보였어요.
재은의 명함
하자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너무 많은데요. 그 느낌이 신기했는데, 작년에 죽돌들을 만나고 수료하고 방학 때 이별앓이를 하고 있었거든요. 되게 많이 울었어요. 마음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첫사랑 같은 느낌? 죽돌들이 없는 공간을 보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곳에 굉장히 많은 청소년이 거쳐갔겠구나. 나 말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많았겠구나. 공간의 흔적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구나.’하며 고마웠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게 두고두고 남아요. 하자라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지, 거쳐간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지.
팀에서 매주 티타임 하는 것도 재밌어요.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짧게 일상 이야기를 하는데 하고 나면 좋더라고요. 판돌들도 다시 보이고. 심지어 토리(오디세이 판돌)랑도 일상 얘기를 잘 못하니까. 편한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그동안 어려웠던 순간은요?
판단해야 할 때가 제일 어려워요.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때. 여러 상황과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어요. 가령 코로나 확산으로 원래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시점에 늘 고민이죠. 죽돌들이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사실 저야 코로나가 퍼지는 시기에 오디세이학교를 담당하게 되어 괴리가 덜한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판을 짜고 누군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물론 죽돌들과 관계 맺는 것도 과제고요. 어떤 때는 잘라야 하고 어떤 때는 마음을 받아야 하고 화를 내야 하기도 해요. 상황과 맥락, 대상이 어떤 상태인지 끊임없이 고려하게 돼요.
하자 tmi가 있다면 하나만 이야기 해주세요.
하자에는 없는 게 없어요. 온갖 장비, 3D프린터도 있고 막 구석에 이것저것 다 있고. 좋은 자원들이 참 곳곳에 많아요. 사람을 포함해서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까, 각자 갖고 있는 기술도 많이 다르고요. 그래서 뭔가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환경인 것 같아요.
하자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있으신가요?
저는 본관 옥상에 있는 텃밭이요. 숨통이 필요할 때 올라가 있곤 해요. 작년에 옥상텃밭에서 농사를 했어서 거기 가면 초심을 느낀달까요. ‘내가 여기 왜 있지’, ‘뭐 하려고 했지’ 이런 것을 생각하게 돼요. 텃밭이 있어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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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하자 옥상 텃밭의 모습
마지막으로, 판돌로서 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판돌이 되면 좋을까요?
청소년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중요할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어떤 시대적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관심 갖고, 그들에게 어떤 경험이나 자원이 있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사업으로 풀어내면서 뭔가를 같이 하려고 노력하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 게 애정이죠. ‘이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이런 마음이 있으면 일하기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