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본관에서 진행했던 평화책 순회전시 ‘검은 평화’를 기억하시나요? 그렇다면 이 전시가 청소년들이 기획하여 진행됐다는 사실 역시 알고 계셨나요?
왕왕 :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따금 만나다
하자에서는 평화책 순회전시 큐레이터 청소년을 '왕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3~16세의 청소년이 모여 각자의 평화를 정의하며 나누고, 함께 이야기 한 평화를 녹여내 전시를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올해도 역시 왁자지껄하고 통통 튀는 왕왕이들이 6월 8일부터 9월 7일까지 총 12회 동안 전시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함께 만났던 12주의 기간은 우리의 전시를 위해 해야 할 일을 4개로 나누고(공간 기획, 책 소개, 굿즈 제작, 체험 존 구성) 각자가 해야 할 일을 기획해 과업을 수행해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친해지기까지 5주 가량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친해지고 난 후에 왕왕이들의 활동은 더 오래, 더 깊게 진행됐습니다. 새침하게 말도 섞지 않던 왕왕이가 자신 있게 자기 의견과 감정을 말하게 되기까지, 근엄한 척 자리에 뚱하게 앉아 있던 왕왕이가 다른 왕왕이와 몸을 섞어 뒹굴며 놀기까지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우리의 전시가 완성되었습니다.
2019년 왕왕이들의 활동은 파트너 강사 찬쓰(허영찬)와 후기청소년 PM 랑(김지희)이 도우미로 함께했는데요, 2019 왕왕이들의 영원한 간식요정 랑이의 시선을 통해 본 왕왕이들의 활동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왕왕이와 도우미 랑
저는 카페 그래서 운영 청소년 파트너로 하자와 처음 만났습니다. 하자에 있는 동안 청소년의 매력에 호기심을 갖게 돼 왕왕이들과의 만남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6월의 시작은 일 년의 절반을 가까스로 넘겼다는 안도의 마음과 익숙함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던 때였습니다. 권태로움을 느낄 찰나 저는 11명의 왕왕이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고, 왕왕이와 도우미라는 관계를 통해 다시 한 번 새로운 열정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죠!
2. 평화책 순회전시 프로젝트를 통해
이전의 저는 청소년을 ‘도움이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왕왕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율적인 활동과 시간에 어리둥절하던 왕왕이들이 점차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지로 전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피스피스를 통해 저는 청소년은 넘치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십대 시절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것이 짜여 있는 학교와 오로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던 학원의 커리큘럼을 매우 성실하게 따랐던 학생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주체적인 결정과 자율적인 활동에 이따금씩 어려움을 느끼곤 했었어요. 저는 '청소년기때 보다 자율적인 환경 아래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었다면 좋았을텐데'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왕이들에게 주체적으로 목표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이 소중했답니다.
3. 랑은 왕왕이를 기억합니다
저는 왕왕이들이 새로움 앞에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던 첫 만남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6월과 7월을 지나 이들이 점차 밝은 미소로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순간들도 기억합니다. 또한 ‘평화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짓던 왕왕이들이 ‘평화란 모든 것이 섞여있는 검정색의 상태’라 정의한 순간 역시 기억합니다.
피스피스 프로젝트를 통해 발전한 것은 왕왕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평화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12주라는 기간이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기에는 넉넉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왕왕이들과 저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큐레이터 왕왕이 생각해낸 검은 평화는 여러 가지 색이 한 데 모이고 섞여 검정색이 만들어지듯이, 평화 역시 많은 것들이 조화롭게 또는 복잡하게 공존하고 섞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왕이들의 다채로운 개성과 생각이 모여 검은 평화를 만들어냈듯 저에게 왕왕이들은 형형색색으로 모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