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주도인문사회등등과학연구소 <10대연구소>는 지난 5월 24일 국가 미래 비전 설정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Inclusive Korea 2018' 특별세션1 청소년 목소리팀으로 참가하여 "4%를 위한 학교를 100%를 위한 공간으로"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아래 발표 ppt와 원고를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처음 발표라 떨리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여러분께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10대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합니다. 저희는 10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를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연구하는 서울시립하자센터 10대연구소입니다.
저희를 세가지 키워드로 소개하자면 첫째 10대 당사자, 둘째, 연구를 통한 변화, 그리고 셋째는 다양한 차별과 편견에서의 자유입니다. 저희는 서울 인천 경기등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매주 토요일 연구 및 토론을 진행하는데요,
이 사진은 저희의 수많은 활동중 10대의 불안 연구 결과입니다. 보시다시피 학교는 왜 다니는가, 대학을 꼭 가야하나, 무시, 소외, 돈, 내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가 등 10대의 불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큰 문제들을 나타냈습니다. 저희의 연구는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저희는 원인 연쇄 분석 방법을 통해 ‘청소년들은 왜 제대로 된 발언권이 없을까?’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발언권이 없는 첫번째 이유는 (비청소년들은) 청소년들이 무엇이 자기에게 좋은지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청소년들이 반박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신가요? 이 두가지 생각의 원인을 연쇄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나이를 사회적 계급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주의가 나왔습니다. 한가지 이유가 더 남아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발언하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또 생각해 보았는데 그 결과 좋은 수입과 안정적인 삶이 청소년들에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과중심주의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성과중심주의인 4%를 위한 학교의 문제에 대해 발표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4%를 위한 학교가 무엇일까요? 학교보다는 4%의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이라 예상이 되는데요. 4%는 1등급 커트라인의 퍼센트입니다. 학교는 소수를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합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동아리, 기숙사, 자습실과 시설 이용까지 다양한 혜택을 일부 학생들에게 집중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자습실 내에서 성적에 따라 좌석 명칭을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로 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지 않은가요?
그 외에도 암암리 운영되는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보충수업과 동아리 운영, 성적에 따른 학생자치활동 제한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교는 4%를 위해 96%의 학생들의 기회와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전교생의 수가 줄면 1,2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등교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오직 수상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관심분야가 아닌 대회에 바닥 깔아주기 식으로 참여시킵니다. 그야말로 4%만을 위한 학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에서 4%이외, 96%의 청소년들은 어떤 존재일까요? 그들은 제 존재를 인정받고 마땅히 누려야 할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을까요? 학교에 다닐 때 저는 교지편집부에서 활동했습니다. 교지편집부는 매년 말이면 소위 명문대에 간 선배들의 수기를 받습니다.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너희도 힘내라는 글을 보며, 고작 4-5명의 성공담을 듣기 위해 학교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00명의 청소년이 학교에 있다면 100명 각각의 진로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학교는 대학이라는 외길로 모두를 밀어 넣고 그에 낙오되는 사람을 배제하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도 자랑스럽게 선생님의 소개를 받으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선배들이 1등급 선배 뿐만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다양한 삶을 사는 선배들의 얘기가 더 많이 들리길 바랍니다. 4%를 위해 96%의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됩니다.
이런 4%만을 위한 학교의 문제는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과에 따른 차별을 지속적으로 당하고 지켜본 학생들은 이를 학습하게 됩니다. 공부를 못하는 내가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치밀하게 스며든 성과주의로 인해 청소년들은 차별을 참고, 행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차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성과에 따른 차별이 내재화가 되는 거죠.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곧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고, 그들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듭니다. 사실 이 문제는 단지 성과에 따른 차별이라는 좁은 영역 안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 영역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허용한다면, 다른 영역의 문제를 촉진하고 정당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학교 안의 문제를 사회 전체로 확장해서 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필요합니다.
저희 10대연구소는 차별이 없는 포용적인 학교를 실현하는 대안으로 청소년 발언권 보장, 원탁형 교실, 인권중심교육과정의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모두를 위한 학교는 모두가 목소리 낼 수 있는 학교입니다. 학생의 발언권은 학생자치활동에 의하여 보장되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은 학교에서 학급회의나 대의원회로 이를 실시하도록 지원해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큰 오산입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본분은 자기 몫의 발언보다는 오직 공부라고 생각하여 그 시간에 자기주도학습을 시키거나 각종 대회를 실시합니다. 심지어 학급회의와 대의원회가 운영된다 하더라도 정책 수렴의 편의를 위해 대표들만 회의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정작 다수 학생의 의견 반영 없이 학교 정책이 결정됩니다. 학교의 주체는 학생입니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면 고등학생은 평균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학생들이 성적 등 많은 요소에 의해 억압받는 상황에서 발언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학생 중심의 학교를 만들기해 학교는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생자치 제도를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제도가 실제로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공간도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실 의자에 앉았을 때 무엇이 보이시나요? 저는 제 앞 친구의 뒷모습과 칠판이 보입니다. 마치 앞만 보고 가는 듯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앞만 보기 보다는 주변도 둘러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책상의 배치를 원형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둥글게 앉으면 어디 앉았는지 위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주변을 더 넓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통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듣는 주체가 아닌, 말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교실의 모습이 바뀐다면 우리가 배우는 내용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학교에서 1교시 인권교육, 2교시 페미니즘, 3교시 노동권, 4교시 경제적 자립, 5교시 진로탐색, 6교시 정치 및 정당활동을 배우는 건 어떨까요? 입시를 위한 교육과정이 아닌 내 삶을 위한 인권 중심 교육과정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학교는 4%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교는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저는 유딩, 라레, 달, 은별, 나무, 헤윰, 우지, 자두 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