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오후 4시, 하자센터 999클럽에서는 조금 수상한 포럼이 열렸습니다. 폭력과 부적응을 말한다면서 스크린에는 뜬금없이 아이들이 악기를 두드리며 유유자적 뛰어노는 동영상을 틀어놓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동영상은 사회적기업 유유자적 살롱(이하 ‘유자살롱’)의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 소개 영상이었습니다.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이거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한 아이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밝은 모습이어서 모두들 조금씩은 의아한 표정을 짓게 되었습니다.
아직 약간 어색한 분위기이지만, 어쨌든 포럼은 시작되었습니다. 첫 발제는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의 야마모토 코헤이 교수님이 열어 주셨습니다. 야마모토 교수님은 정신보건 분야의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한 뒤 리츠메이칸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히키코모리 등 정신적인 어려움을 갖는 청년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는 분입니다. 첫 발표이니 상큼한 스타트였으면 좋았겠지만, 조금 강렬한 이야기로 시작되네요. 지금 28세가 된 이 여성의 사례인데, 14살 때 친구들이 그녀를 여자화장실에 가둔 채 호스를 통해 인분을 강제로 먹였다고 합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그녀는 지금도 정신과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물리적, 폭력적 이지메는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가해자, 방관자에게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최근 한국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를 색출해내는 것에 집중되어있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되는 지점이군요.
한국에서 2011년의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이 집단 괴롭힘(이지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 일본에는 1986년에 동경 나카노구에서 일어난 남자 중학생의 자살 사건이 있었습니다. ‘장례식 놀이’라는 이름의 사건이었는데, 충격적인 점은 가해 그룹에 담임교사가 포함되어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집단 자체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이지메 사건에 대해 가해자 위주의 처벌 위주로 대처하려 한다면 관중이나 피해자 등에게 남는 정신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다음으로, 일본의 청소년 자살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일본은 청소년들의 자살률도 오랫동안 세계 1위를 기록해왔지만,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자해 문제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긍정이란 것은 이지메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보다 적극적인 지원방식으로, 청소년들이 성장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발표를 마무리지어주셨습니다.
발표 뒤에 토론자들의 짧은 코멘트가 이어졌습니다. 격월간 민들레의 편집주간이자 공간 민들레 대표이신 김경옥 선생님께서 이번호 ‘민들레’의 주제인 ‘학교 폭력 VS 폭력 학교’와 관련지어 이야기를 꺼내주셨습니다. 이지메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학교폭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일부일 뿐, 가장 큰 학교폭력은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라는 얘기입니다. 학교가 가지는 이런 일상적 폭력을 문제화하지 않고서는 학교 폭력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누구나 방관자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없으면 대안도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두 번째 발표는 소위 ‘가해자 청소년’들에 대한 사례였습니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해자 청소년들에게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필통 기획팀의 한운장씨가 프로젝트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뮬레이션 할 때는 분당에서 소위 ‘파이터’라 불리는 친구들을 모아서 진행했답니다. 12주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보호관찰소에 머무르는 청소년들과 함께한 적도 있었는데,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나중에 폭주족이 되기도 하고 소년원에 가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사회와의 연결이 끊겨져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 발표자는 제주도 클린하우스에서 오신 장재연씨였습니다. 이 분은 위기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어른 자원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클린하우스’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른들을 ‘분리수거’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어른들을 선별하고, 이들의 정신연령을 15살로 낮춰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른들이 되도록 돕는 일을 했다고 하시네요. 많은 경우 공공기관의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과의 소통 방법을 찾지 못하는데, 이것이 감수성과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두 번째 꼭지의 마지막 발표자는 구미의 천찬경 미용실에서 청소년 만남을 실천하고 있는 임천숙씨였습니다. 무척 수줍어 하시면서도 할 말은 다 하시는 모습에 관객 분들이 열광을 해주셨는데요, 본인은 비결도 없고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연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다만 비결이 있다면, 화장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오토바이를 탄다고 해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답니다. 아이들은 그게 좋아서 오는 것 같다고 하시는군요. 이런 상식적인 태도가 희귀 사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가 봅니다.
두 번째 발표에 대한 코멘트는 일본 동경의 NPO법인 ‘문화학습협동 네트워크’의 대표이신 사토 요사쿠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일본에서는 이지메 문제와 히키코모리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하시면서, 2-30대 젊은이들 중에 50만~100만명으로 추산이 될 정도로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히키코모리인 20대 또는 3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대부분 이지메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 이지메의 특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별이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이지메를 당한 아이라도, 내일 이지메를 하는 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답니다. 이제는 성인으로까지 확대되어서, 직장 내 이지메도 상당한 문제라고 하는군요.
세 번째 발표는, 학교를 떠난 뒤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유자살롱’의 사례였습니다. 유자살롱의 전일주 공동대표는 뇌의 영역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관계와 존재감이 형성되어야 그 다음 단계 사고와 창조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관계와 존재감은 교육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인데, 가족과 공동체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 전체가 ‘무중력’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데, 순응하지도 일탈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취하는 방식은 무기력의 방식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빠르게 압축적으로 달려오다 보니 놓쳐버린 여러 가지 것들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들을 이끌어 줄 중력의 그물망을 만들어야한다는 이야기로 발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사회자인 저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압축성장을 이뤄낸 일본과 한국의 학교 혹은 사회는 마치 압력밥솥 같은데,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압력을 받으면서, 어른도 아이들도 아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체 그 압력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효율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끝에 누가 이득을 얻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습니다. 성공과 효율을 위한 압력을 조금만 줄여도 우리가 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우리는 계속 압력밥솥의 신화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이어진 짧은 토론시간 이외에도, 두 개의 애프터모임을 통해 훨씬 더 깊고 진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신관 103호에서는 20명에 가까운 전문가 분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교류와 전망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윗층 203호의 오픈 모임에서는 포럼에서 나누지 못한 더 날것의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날 이루어진 모든 것은 단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학부모, 교사분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길고 깊은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