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오전 10시 영국 영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의 사이먼 터커(Simon Tucker) 대표가 하자센터를 방문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성사된 자리였습니다. 그는 하자투어를 통해 하자마을의 전반적인 사업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본관 999클럽에서 하자센터 판돌, 사회적기업 실무자들, 하자센터 내 청소년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1시간 동안 이루어진 간담회에서 사이먼 터커 대표는 영파운데이션의 교육 및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을 소개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하자센터를 비롯한 한국의 관련 기관들과 어떤 협력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그간 펼쳐온 하자센터의 교육 사업, 한국의 사회적기업 육성 상황, 한국에서의 사회 혁신 배경과 경험 등이 폭넓게 공유됨으로써 하자센터와 영파운데이션이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파운데이션은 최근 몇 년에 걸쳐 여러 아시아 지역 기관들과 함께 적극적인 협력 사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어떤 사업들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사이먼 터커 대표는 연구와 국제 청소년 프로그램이라고 답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성장해온 기관들인만큼 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서로 신뢰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해결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영국의 교육혁신 사례인 스튜디오 스쿨(Studio School)을 주도하고 있고 오랫동안 교육, 의료 분야의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을 진행해온 만큼 사이먼 터커 대표는 ‘한국의 사회적기업가들, 실무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도전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유자살롱의 이충한 공동대표는 한국 사회가 아직은 ‘사회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사회성을 이념이나 정치라는 잣대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 한국이 대기업 위주의 성장 경로를 겪어온 나라이다 보니 좋은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상, 훌륭한 기업가적 리더십에 대한 롤 모델이 없다는 점, 사회적기업이 영리기업으로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사회 공헌의 주제로서도 성장해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주체들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하자센터가 오랫동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교육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과 영국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공유와 함께 양국의 청(소)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영국의 사회혁신 기관, 사회적기업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이먼 터커 대표는 전반적으로 영국 청(소)년들은 창의성이 풍부하기는 하지만 영국 자체가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서 그런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고 회사나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는 데도 거부감을 많이 보이며 이 때문에 취업보다는 취업보다는 스스로 창업을 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지원하는 기관들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는군요. 청(소)년들 스스로가 취업보다는 창업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은 청년 자신이 아닌 정부가 창업을 청년 실업의 해법으로 보고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라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영파운데이션은 업라이징(Uprising), 리질리언스(Resilience), 스튜디오 스쿨(Studio School)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Uprising과 Resilience는 영국의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멘토 그룹과 만나 개인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고 긍정적 사고를 통해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로서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이후 시의원, 구의원으로 선출되거나 지역 커뮤니티의 이사로 활약하는 성과가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Studio School은 일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혁신 프로젝트로서 제도권 교육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지역성과 현장성을 살린 실용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제도권 교육 체제 안에 있지만 인지적인 학습보다는 비인지적인 학습, 실천을 통해 학습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와는 그 물리적인 환경부터 전혀 다르게, 마치 회사나 작업장, 사무실 같은 분위기로 설계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프로젝트로 만들어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다양한 기관, 비즈니스 그룹들 등 여러 파트너들과 협업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 이렇게 만나게 된 기업들은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업들을 의뢰하기 때문에 최소 임금보다도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사이먼 터커 대표는 청소년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역점을 두는 것 중에 하나가 해당 프로젝트의 결과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Studio School의 경우도 그 영향을 분석하고 있는데 비인지적이고 실천이 위주가 되는 학습을 경험한 학생들의 인지적 학습 능력이 향상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덧붙였습니다.
Studio School에 대해서 김희옥(히옥스) 하자작업장학교 교장은 한국의 경우 지역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영국과는 다르기 때문에 지역을 놓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학교를 구성하기란 쉽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사이먼 터커 대표는 하자센터가 오랫동안 청(소)년을 위한 창의적인 공간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한혜정(조한)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하자센터의 창의성은 하자센터가 위기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으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던 상황이었고, 기존의 한국 사회 문화와는 단절한 돌봄과 페미니즘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비록 1시간 동안의 짧은 간담회였지만 한국과 영국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 서로 어떤 점을 보고 배울 수 있을 지 구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앞으로 하자센터와 영파운데이션이 더욱 긴밀하게 만나 협력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