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를 변하게 한 창의는, 결국 그 분들의 삶으로 보여주었던 것들이다.” 2009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진행되었던 청소년 창의리더 특강 프로젝트 <혹,_이심?> 1기에 참여한 참참이(한상지)가 쓴 마무리 에세이의 일부입니다. 33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지난 특강과 스토리콘서트, 각종 발표, 소모임까지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던 브리스가 오는 3월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할 2기를 기대하며 지난 1년을 회고합니다.
이제 수능도 끝나고 웬만한 대학입학 결과발표도 끝났을 터인데..
원하던 학교 전공에 합격을 했는지 궁금하구나.
첫 모임 날. 행사 후까지 남아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했던 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학교 회장선거에 나갈 때, 사전 공약에 대해 교장선생님 및 교사들과 실행가능성을 논의한 후에 공약을 걸었는데, 막상 당선 후엔 공약을 실행하지 못하게 하시는 선생님들께 “전교생과의 약속입니다.”라는 너의 말에, 교장선생님은 “국회의원들 봐라- 공약 지키는 것 보았냐. 공약이란 그런 거다. 안 지켜도 괜찮다." 담임선생님은 "사회란 그런 거고 관료제 구조다. 다른 교사가 편들어줘도, 그 사람 나가고 다른 사람 들어오면 똑같다. 너무 용쓰지 마라. 나이를 먹는다는 건, 꿈을 하나씩 버린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술만 는다.” 라고 하셨다면서. 18살 눌렀던 눈물을 울컥 쏟아내었지.
그리고 네가, 혹이심에 오면 뭔가 다르다고. 자신이 생각한 삶이 “불가능한 일” “있을 수 없는 일”만은 아니라는 희망이 생긴다고.
그렇게 고3임에도 4회차까지 말없이 꼭 참석하던 네가. 어느 날 이제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여기 너무 좋은데. 학교와 너무 다른 세상 같아서 그게 힘들어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다 그대로에요. 제 힘은 너무 작구요. 학교가 사회라면… 결국 제도 이상을 넘지 못해요. 법 공부를 할 거에요.”
18살 너의 중심의 선택은 앞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폭풍과 가뭄을 만나며 전제 자체가 변화되거나 점핑하는 과정을 겪겠지만. 너의 그 고3을 축복했었다.
출발_기획과 고민
2011년. 극심한 양극화와 동시에 사회가 다각화되면서 이 땅에서 하자와 만나고 함께 성장할.. 그렇게 접속할 수 있는 친구들 또한 매우 다양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생존 자체에 대한 돌봄이 필요한 친구들부터, 공교육 학교에선 모범생이지만 내면으로 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2-30대 이후 방황을 하거나 허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까지..
물론 하자가 다 만날 수도 없고, 그 만남이 다 좋을 수도 없지만. ^^
이 프로젝트의 경우는 시작할 때- ‘학교에서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지만, 아니 오히려 성적 좋은 기대주에 가깝지만, 대형 미디어에 등장하는 유명인 외에 롤모델을 찾지 못하는,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 정답을 잘 찾는 친구들’을 떠올렸어. 어쩌면 이 친구들 또한 다른 형태의 자극과 돌봄이 필요한 건 아닐까라는. 과다한 ‘돌봄’ 속에 오히려 자신과 타자, 사회에 대한 성찰의 힘은 없이 개별화된 객체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말을 걸고 싶었어. 정말 너의 고민을 너의 말로 해보자고. 인생 진로에서도 누군가의 네비게이션만을 바라지 말고, 나침반과 지도를 기꺼이 보는 힘을 가지라고. 누군가와 ‘함께’ 그 길을 걷는 기쁨을 알자고. 그리고 각 분야마다 새로운 길을 만들고 함께 걷는 연습을 해보자고.
사실… 처음엔 학교와 야자, 끊임없이 채워져 있는 학원 시간표로 바쁜 너희가 월 1회라도 잘 참석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단다. 아이들이 5월 스토리콘서트 때 만든 연극이 생각난다. 채칵채칵-하는 시계 소리와 함께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표현. 대안학교처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지 못하는 이런 환경과 관계 속에서 과연 1년에 몇 번 만나고 이야기한다고 무슨 변화와 의미가 생길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네가 다르게만 느끼던 하자센터가 세상과 다른 것만이 방점이 아니라, 그래서 그 세상을 자신이 있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바꿔나가고 있는 소위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시야를 나누게 되길 원했었다. 그래서 33명 모집에 70여명의 친구들이 신청을 했을 때, 밤새 읽고 또 읽으며 고를 수밖에 없었어. 1년이 지났을 때. 꾸준한 16명 정도의 친구들이 남았고, 희망을 말하더라. 너무 많이 사용되고 왜곡되어 발에 채이는 돌멩이만도 못하게 들리기도 하는 희망이라는 말. 이건 결국 ‘몸으로’ ‘함께’ 지난하게 살아내는 것으로 배우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조금이나마 같이 배운 것 같다.
과정_진행과 배움
<특강>
첫 시간. 창의는, 리더는 과연 뭔지- 어떻게 살건 지- 소박하더라도 ‘너희 말’로 하길 바랬는데. 1년 후 글은 최소한 열심히 고민한 너희의 말이었어. 고맙더라.
강사는, 그저 멋들어진 이론을 학구적으로 말할 분들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제3의 대안을 가지고 스스로 그 삶을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들과 동행하는 사람을 찾았어.
그리고 그 분들에게 <삶으로 말하는 “창의란?”>에 대한 강의를 부탁했어.
- 1차: 이토 다케시 <Question Everything!!: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사회적기업가, 광고기 획 회사 ASOBOT 대표
- 2차: 김가영 <무력감을 다시 만나다: 무력감에 지지 않는다> /16세 창업, (주)지리산농산 물유통 등 4개 회사 CEO
- 3차: 고영 <세상을 바꾸는 나비형 인간: 작은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컨설턴트, 프로보 노그룹 SCG대표
- 4차: 이윤신 <방향성을 가진 서로 다른 개인들의 총합: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평 화운동가, 노리단 퍼포머
- 5차: 박홍이 <비 올 때까지 기도하는 우리로 살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연세 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 6차: 홍기빈 <G20은 올림픽이 아니다: 창의란 왕따 될 용기> /경제학자, 글로벌정치경제 연구소 소장
- 7차: 박용준 <창의란 꿈을 사는 것이다> /인디고서원, 인디고잉 국제판 편집장
대략 내용이 보이니? 강의 자료들은 네이버 카페에 있으니 들어와 보렴.
<스토리 콘서트>
리프가 안 나올 무렵. 너희가 직접 글을 낭독하거나 음악 연주, 프리젠테이션으로 발표를 하는 '스토리콘서트‘라는 걸 만들었었어. 첫 회는 ‘生(생활, 생명…)’에 대해서, 2회는 ‘희망자만 받습니다’라는 주제로 진행했는데, 논의하고 되짚어보는 준비 과정에서 마음의 역동이 일어나더라. 그리고 너희가 서로 무언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은 학교 성적과 또 다른 의미였나 보더라. 이후 창의서밋에서 혹이심과 청소년창의위원회가 함께 기획에 참여하면서 ‘스토리 콘서트’를 확대 진행해보게 되었지.
<허심탄회>
사실, 모든 기획은 아이들의 역동을 보면서 가자는 생각이었어. 역동이 없으면 특강과 토론만 진행할 수도 있었고. 그런데, 첫 날 공식 행사 후 모임에서 몇 몇이 확 터진 마음은 그 이상을 꿈꾸게 만들더라. 그리고, 정말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진로에 대한 고민, 학교 구조와 부조리에 대한 불만, 심각한 왕따나 평가절하된 꿈으로 인한 깊은 상처 등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다문화나 사회 경제구조로 인한 문화 소외의 문제까지- 다양한 대화와 자기 자리에서의 대안을 고민하게 되었어. 비정기적인 이 모임을 ‘허심탄회’ 라고 불렀어. 이 때 참석하던 친구들 중 하나는 학교를 만드는 꿈을 좇아 교육학과에 진학했고, 하나는 논객이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글을 쓰면서 성공회대 입학을 준비해. 과감하게 재수를 시작한 친구도 있고, 바리스타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고. 하나는 사회적기업 등을 위한 공공 캠페인을 하는 전문기획자가 되겠다고 해. 중요한 건, 부모님의 권유와 성적 외에 ‘왜’ 그 일을 하려는 지 처음 고민해보기도 하고, 누군가 지지해 주고 자신이 지지가 되어줄 수 있는 경험을 하기도 한 것 같아.
물론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물, 잘 만들어진 이슈도 없어. 모두가 자연스레 힘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학원 갈 시간에 여길 오는 게 맞나- 하는 당면한 고민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고, 약속은 13명 참석인데 와보면 3명이 와 있고….
나도, 솔직하게 말하면 왜 이 힘든 걸 계속할까 고민할 때가 있어. 그리고 이런 건 단지 정서적 카타르시스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이게 옳을까?
다시 가는 이유는 하나더라. 한 명의 움직임. 한 명의 작은 변화. 한 명의 위로. 어쩌면 이 사회 속에서 우린 이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경험과 연습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함께 하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어야하는 게 아닐까.
1기 마지막 시간에,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했어.
결론을 말하자면, 난 성공했다. 공교육의 영향권에 있건, 탈학교를 했건, 대안학교를 다니건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배웠다. -오크
올해 반을 혹이심과 함께 하면서 배운 많은 것 중, 꼭 이야기하고 싶은 제 키워드는 ‘간절함’입니다.
비록 간절함은 그 자체로는 매우 위태롭고 변명이고 부정적이고 도피적이더라도
삶이 지금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
그 가치로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삶의 가치와
우리가 느끼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만나게 해주는
하나의 방향이 되어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 하나로 세상을 설명할 수 없기에
세상만으로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있는 이 삶에서 몇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기 위해
유예하는 삶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는 힘들게 그 순간들을 버텼습니다. 좀 많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요.
단 두 가지만 제게 위로와 소통을 도와주었어요. 하나는 그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나를 받아줄 장소가, 내 말을 들어줄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을 거야.' 라는 희망이었어요. -조솔
내겐 가장 암울할 수 있는 고3시절에서.. 혹이심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준 창문이었다. 내 안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러버
나에게 알에서 깨어날 수 있는 힘을 준 작지만 큰 기회였다. 여기 올 때. 모든 주변 사람이 싫었고, 사람 자체가 미웠다. 그러나 여기서 다 똑같지 않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떡국
혹이심에서 배운 건 단순한 앎이었다. 하지만 이 앎으로 인해 적어도 내가 끝없는 물음과 집념과 사소함과 사랑을 그만두지 않을 이유는 생긴 것이다. -마마
허심탄회에 모인 아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사는 방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목동에서 대학입시만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던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냥 독특하네- 라고 넘겼을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여기서 친한 관계를 맺으면서는 내 고루한 사고방식을 깨는 망치와 같았다. 예전엔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것들에 반응할 수 있는 나를 알게 되고는 스스로 놀랐다. 어느새 대학은 내 인생의 유일무이한 목표가 아니었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으악
첫 강의에서 이토 다케시가 “관찰은 세속적인 것들의 장엄함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이 생각은 창의리더 프로젝트에서 내 목표인 -일상에서 찾는 예술-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토 다케시의 편견을 깨고, 세상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이 강의를 가장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실천해 몸으로 보여준 ‘창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멋지고, 심장 떨리는 강의들이었지만, 그 모든 강의에서 창의라는 주제를 끌어내 보면 정말 큰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창의는 질문하는 것이고, 선입견을 깨는 것이고, 김가영씨처럼 쓰러진 상추 비닐하우스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고, 박홍이 교수님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는 노력이다. 그런데 창의는 결국 그 분들의 삶으로 보여주었던 것들이다. -참참
혹이심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거의 매 순간 고민하고 방황하고 다시 다짐하기를 반복했다. 그냥 많은 사람들처럼 현실에 맞춰 대충 살아가면 편하다는 것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여기서 확실하게 배운 한 가지 이유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땡그리
달빛이 비추이는 새벽에 책상에 홀로 앉아 창의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 전국에 몇이나 될까? (진짜로 했음) 수많은 대회에서 쉽게 말로 했던 ‘창의’라는 것에 대해 내 삶으로 연결시켜 본 건 여기가 처음이었다. -안티
이 모임은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주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고민했고, 방황했고,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이런 기회가 저에게 있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스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된 건, 힘들어도 가치를 가지고 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가지는 힘인 것 같아. 학교의 또래문화 속에서 어쩌면 역 소외되어 있는 아이들. 연예인과 성적 이야기 외에 다른 사회적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 속에서 형성되는 또 다른 왕따. 하자에 와서 엉엉 울던 아이들을 보며 소박하게 이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구나 생각했어.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내가 일하는 이곳이 ‘다양한’ 아이들에게 성장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많이 들었고.
‘어떤’ 직업인이,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다른 ‘판’을 만나는 것.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된다는 아이들. 어쩌면 하자센터 안의 대안교육 친구들과 또 다른 환경의 아이들을 위한 모임일 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여전히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가보는 거지.
2기는 하자센터 내에 분야별 멘토군을 연결하고 공간, 온라인 소통, 영상 캠페인, 글쓰기 등을 직접 해보려 해. 특강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고.
대상은, 1기에서 공교육 청소년들과 대안교육, 탈학교 청소년들이 직접 대면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걸 보고, 이번에도 제한은 두지 않으려 해.
기획과 진행은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지혜랑과 봉지가 많이 주축이 되기로 했고, 허심탄회와 커뮤니티 모임은 오크가, 포스터 등의 작업은 참참과 솔이 아이디어를 낼 듯. 강의 정리는 매달 강원도에서 나오는 녕근이가 하기로 했어. 동생은 모임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다네. (녕근이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제발 이런 가치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데…. 강의 정리를 잘 해볼까 하고 있어. 너도 보내줄게.)
또 여전히 고민
얼마 전. 젊은 영화 작업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죽을 용기도 없어 함께 모여 자살한 20대들의 기사도 보았다.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었던 에너지가 있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대학생도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꿈이 ‘짝꿍보다 돈 많이 버는 부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음이 깊은 데서부터 아려온다. 무력감에 슬프기도 하다.
리프야.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대체 어떤 곳일까.
너희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분야가 소위 말하는 ‘주류’이건, ‘대안진영’이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하나라도 손을 모둘 공간이 있는 것. 그걸 또 다시 만드는 것.
그리고 당장 이런 맥락 속에서 과연 창의적 리더-라고 말하며 특강에 초대할 분들은 어떤 분들이어야할까?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스펙만 쌓으러 오는 아이들은 어떻게 만나야할까?
오늘도 멈추지 않는 고민이다. 함께 하면 좋겠다.
건강해라. 어디에 있든. 잘 고민하며 살아보자. 의연하게 또 울면서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