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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 하고 싶은 일 2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아이 | 주홍비
“파티스리 라뚜셩트를 운영하는 주홍비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파티스리* ‘라뚜셩트(La touchante)’ 대표 주홍비라고 합니다. 올해로 4년째 브랜드를 운영해 오고 있어요.
*파티스리(Pâtisserie): 제과를 만드는 사람 또는 반죽을 필요로 하는 음식을 판매하는 매장.(네이버 지식백과)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고등학교로 하자작업장학교*를 수료했어요. 중학생 때는 ‘느티울행복한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녔는데요. 중학교 선배 중 작업장학교에 간 선배가 몇 분 있어서 하자를 알게 됐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두고 여러 고민을 하다가 작업장학교가 재밌어 보여서 선택했습니다.
*하자작업장학교: 하자센터에서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한 도시형 대안학교. 공연음악, 디자인, 영상, 춤 등 매체 중심의 작업과 교육이 이뤄짐.
작업장학교의 어떤 부분이 재밌어 보였나요?
학기마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고 맺는 방식이 흥미로웠어요.* 공연음악, 디자인, 영상 세 가지 매체로 프로젝트를 표현하고 활동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죠. ‘다양한 경험을 재밌게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세 가지 매체 중 저는 공연음악을 선택했는데요. 처음엔 디자인팀을 생각했지만 막상 와보니 공연음악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 바람에 재능 없는 음악을 하게 되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퍼포먼스적인 건 좋아했지만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지는 않았거든요. 많이 더딘 팀원이라 혼나기도 하고 연습을 정말 많이 했던 기억이 있네요.
*하자작업장학교는 학생이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PBL(Project-Based Learning) 방식의 교육과정을 운영함.
그때 경험 중 현재의 아이에게 영향을 준 활동이 있을까요?
다 인상적이었지만 하나를 꼽으면 여수국제청소년축제*라고, 제가 경험했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큰 프로젝트가 있어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청소년들도 모이는 엄청 큰 행사였거든요. 여수의 작은 섬마다 팀으로 나누어져서 활동한 기억이 나요.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행사를 직접 진행하다 보니 주체적으로 뭔가를 해보는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거기서 얻었던 활력이나 에너지도 저에게 계속 남았고요. 행사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도 그때 처음 해보면서 그다음에 뭔가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더라고요.
*2011년 제11회 여수국제청소년축제에서 하자센터는 큐레이팅을 맡아 프로그램을 기획함. 세부 프로그램 ‘나비효과 프로젝트’ 참여 청소년들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구성된 40개 팀으로 나뉘어 여수 도심과 금오도, 사도 등 섬 지역 곳곳을 누비는 활동을 함.
2011년 제11회 여수국제청소년축제
“드라마를 통해 케이크 만드는 사람을 파티시에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과 분야에는 언제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어릴 때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파티시에(Pâtissier)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거든요. 초등학생 때는 보통 흔히 접할 수 있는 직업만 알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흥미가 있었지만, 요리사만 알고 다른 일은 몰랐어요. 그러다 드라마를 통해 케이크 만드는 사람을 파티시에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막 두근두근하면서 파티시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중학생 때는 베이킹 동아리를 하면서 관심을 이어왔어요. 고등학교 진학 시기에는 요리나 제과 전문학교에 갈 것이냐, 아니면 (제과 분야가 아닌) 대안학교에 갈 것이냐 하는 고민이 많았고요. 당시에는 파티시에라는 직업에 확신을 갖고 그 길로만 가고 싶다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작업장학교 수료 후 파티시에의 길로, 조금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과 전문학교에 가지 않은 선택을 지금 돌아보면 어떠세요?
‘그랬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은 많이 해봤어요. 어떻게 보면 커리어 면에서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전문학교에 다닌 또래와 수준 차이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작업장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힘들었지만 저에게 큰 영향을 줬고, 성인이 되고 나서 나만의 프로젝트를 주체적으로 해냈던 역량은 하자 경험에서 나온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 선택을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어릴 때부터 꾼 꿈을 이루셨는데요. 아이는 10대 때 어떤 청소년이었나요?
지금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유쾌한 거 좋아하고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었어요. 어떤 일이든 재미있고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고요. 사실 청소년기에는 스스로를 너무 몰랐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잘 몰랐고, 뭔가를 선택할 때도 두려움이 많았거든요. 지금까지 오면서 실수도 많이 하고, 타인으로부터 상처 또는 좋은 영향력도 받으면서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방향성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있고 다방면으로 진지해진 면이 있어요. 여전히 재미있는 것에 흥미가 있지만 진지해진 면이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죠.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에 제과 전문학교에 들어갔어요.”
작업장학교 졸업 후 본격적인 요리와 제과의 세계에서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라고 아시나요? 많이 알려진 프랑스 요리학교인데요. 저는 꼬르동 블루는 아니고 ‘르노뜨르(École Lenôtre)’라는 학교에서 공부했어요. 르노뜨르는 프랑스에 본교가 있고 한국에서는 SPC 기업이 ‘프랑스 제과 전문가 양성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엔 꼬르동 블루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교육과정을 비교해 보니 르노뜨르의 과정이 조금 더 다양하고 현대식 제과가 많이 접목된 것 같더라고요. ‘업계의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들어가게 됐죠. 전문 제과 지식도 쌓을 수 있고 이론부터 실습까지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또 수료증이 있으면 그만큼 인정 받기도 하거든요.
르노뜨르의 수업 진도를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 경력이나 기초가 있어야 해서 20살 때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우선 신입으로 취업해서 설거지, 잡일부터 시작하는 막내로 경력을 쌓았죠. 2~3년 정도 경험이 차고 준비가 된 22~23살쯤, 르노뜨르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과정이 끝나면 프랑스 본교에 가서 연수 생활을 하는데요. 한국에서 시험 보고, 프랑스 본교에서 수업 듣고, 다시 마지막 시험을 치면 전체 과정이 끝나요. 저는 프랑스 연수까지 모두 수료한 다음에 ‘벨루에 꽁세이(Bellouet Conseil)’라는 제과 학교 단기 연수 과정도 밟았어요.
에꼴르노뜨르 재학 시절
파리에서 공부하실 때는 어떠셨어요? 언어도 그렇고,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많이 어려웠어요. 일단 제과 업계에서 쓰는 불어는 불어 사전에 없어서 그 단어들을 시험 보듯이 공부하고 외워서 가기도 했어요. 근데 언어도 쉽지 않았지만 생활 자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오랫동안 꿈꿔온 파리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현실이 그걸 모두 충족할 수는 없으니까요. 한국과 다른 환경이나 상황이 힘들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또 학생이다 보니 자본도 넉넉하지 않고, 하고 싶었던 것을 편히 누릴 수 없었어요. 점점 타지 생활이 외로워지고 지치더라고요. 프랑스의 업계 문화나 환경이 당시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한국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한국의 한 디저트바에 채용 공고가 나서 프랑스에서 화상 면접을 봤어요. 돌아와서 바로 일하게 됐고요.
작업장학교에 아이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있었나요? 졸업생 중에 제과 일을 하시는 분은 처음인 것 같아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응원해 주는 친구는 많았지만 르노뜨르 들어가기 전까지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죠. 공통 관심사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와 함께할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라든지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어려웠어요. 르노뜨르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도 동료를 만나고 싶다는 거였거든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없었으니까요.
그런 아쉬움은 르노뜨르에서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셨겠어요.
맞아요. 저보다 많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나도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전에는 혼자 경험하고 혼자 공부해 왔는데, 거기서는 같이 공부하면서 의문점이 생길 때 함께 해결하고 서로 코멘트해 주기도 하고요. 같은 관심사, 열정, 목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속해있으니 많은 영향을 받아서 더 열심히 경험하고 공부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질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앞서 프랑스에서 면접을 보고 귀국한 후에 바로 일을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창업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신 거예요?
우선 당시 한국에서는 디저트 문화 자체가 별로 대중적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취업의 폭이 넓지 않았죠. 귀국하고 일하게 된 곳은 그중에서도 네임밸류가 있는 곳이라 처음엔 기쁘고 즐거웠어요. 근데 그것도 잠깐이더라고요. 저는 디저트 스타일, 손님을 대하는 응대나 서비스 이런 모든 것을 브랜드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브랜드의 가치관과 제 가치관이 맞지 않았어요.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로 업계 중심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진짜 원하는 걸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1년 동안 일하면서 수셰프(부주방장)까지 했는데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일은 정말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고민도 많았어요. 그래서 다음 스텝을 밟으려면 다른 디저트 숍에 들어가거나 해야 할 텐데 그게 맞는 걸까? 이런 다양한 질문 속에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라고 마음먹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결정을 확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하루 일과가 매일 비슷한가요 아니면 다른가요?
하루 일과는 비슷해요. 매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건 저희는 시즌마다 디저트가 계속 바뀌거든요. 시즌에 맞춰서 제철 과일을 사용하거나 색감, 디자인을 바꿔가요. 그래서 다음 시즌 준비할 때는 회의를 많이 해요. 또 백화점 팝업에 들어간다거나 행사나 이벤트를 준비할 때는 미팅도 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운영하고 계신 ‘라뚜셩트’는 어떤 곳인가요?
라뚜셩트는 불어의 ‘감동적인’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이름이에요. 흔히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고 어르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서 ‘감동적인 선물이 되자’는 뜻을 담았어요. 초창기에는 프랑스 제과가 별로 대중적이지 않아서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렵게 않게,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자는 방향성을 갖고 시작했죠. 친숙한 재료를 접목하거나 시각적인 부분도 편안하게 하려고 했고요. 지금까지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든 생각은 디저트라는 게 식후에 먹는 식음료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때로는 디저트를 나누는 순간이 추억이나 경험을 남기기도 하더라고요. 누구나 다른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공유한 추억 하나쯤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추운 겨울날 친구와 먹었던 붕어빵의 기억 같은 거요. 저희 디저트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 시간이나 공간의 분위기, 맛, 모든 경험이 그런 짙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희 매장에 방문하시는 모든 분이 그런 경험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간, 분위기에 관한 고민도 끊임없이 하면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뚜셩트 공간
그렇다면 베이킹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네요. 공간도 그렇고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요.
맞아요. 정말 별표 5개예요. 디저트만 잘 만든다고 좋은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패키징, 컨셉이나 담고 있는 가치관도 중요하고, 마케팅도 무조건 필요해요.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지만 현실적으로 수익이 있어야 하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그것만 잘해서는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절대 불가능해요. 매장을 오픈하고 브랜드를 운영하려면 여러 공부를 통해 사업체계를 만들어 가야 해요.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10대 때 하자에서 하는 프랑스 요리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꼬르동 블루를 수료한 프랑스인 선생님이 주 1회씩 한 달 정도를 가르쳐주셨는데요. 생소한 요리를 배우고 만들어보면서 처음으로 프랑스 요리에 관심이 생겼어요. ‘무조건 프랑스 관련 요리나 제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너무 신선하고 재밌었거든요. 그때를 기점으로 작업장학교를 수료하고 요리와 관련된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르노뜨르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들어가지 않았을 때, 르노뜨르 수료한 선배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게 아닌데도 그분이 하는 일이나 알고 있는 지식을 접했을 때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 ‘역시 르노뜨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르노뜨르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로는 그 시간에 푹 빠져서 같은 업계 사람들과 제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함께 경험하러 다니기도 하고요.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 프로페셔널함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파티시에, 셰프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죠.
그다음이 라뚜셩트 오픈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디저트바에서 전문 셰프로 활동하던 시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갈증을 계속 느꼈거든요.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만의 브랜드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게 전환점이 되어서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아이가 하시는 다양한 일 중 하나의 과정을 쭉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신제품 개발로 이야기 해볼게요.
[정보 수집] 예를 들어 가을 준비를 해야 한다면, 가을에 수확되는 과일이나 견과류, 혹은 그에 어울리는 색감 같은 것을 많이 찾아봐요. 정보 서치도 하고 책도 읽어보면서 접하는 색깔, 사물, 음식 등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스케치] 얻은 정보를 토대로 어떤 조합이 괜찮겠다거나 이런 스타일로 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스케치를 해요. 그림으로 그려서 디자인과 맛, 질감, 식감을 전체적으로 생각하죠.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고 색감에 많이 신경 써요. 식감도 시즌에 맞춰서 구상합니다. 재료도 엄청 다양하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계획도 나열해 보죠.
[테스트] 그다음엔 새로 만든 레시피 혹은 갖고 있는 레시피를 정리하고 수정해서 테스트 해봐요. 시트, 크림, 무스, 콩포트, 잼 등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팀원들과 시식해 보고 거기서부터 하나씩 수정해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정하고 사진도 찍어보면서 통과시킵니다.
[출시] 구상한 디저트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되면 재료의 원가, 단가 측정 후에 가격을 책정하고 출시해요. 인스타그램 공지도 합니다. 신제품 개발에 걸리는 기간은 제품마다 다른데요. 하루 만에 뚝딱 테스트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고 수십 번 만들어 보고 탈락하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2주에서 한 달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메뉴가 궁금해지네요. 라뚜셩트의 시그니처는 어떤 것이 있나요?
‘비비피앙’과 ‘에떼’라는 메뉴가 있어요. 비비피앙은 패션후르츠 무스랑 프랑보아즈(산딸기) 무스로 나뉘어 있는 무스케이크인데, 질감이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가벼워서 처음 디저트를 접하는 분들이 입문하는 용도로 좋아요. 에떼는 말차를 사용하는 파운드케이크예요. 사실 이 메뉴는 처음부터 시그니처 메뉴로 선정하기 위해 만든 건 아니었지만 저희가 이걸로 너무 많은 관심을 받게 됐어요. 지금도 계속 인기 있고요. 디자인과 맛을 많이 좋아해주세요.
시그니처 메뉴 '에떼'(중앙 위)
“모든 직업이 그렇듯 일의 이면이라는 게 있잖아요.”
셰프이자 파티시에로서의 일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하고 싶은 것이자 해야 하는 것’인 것 같아요. 지금 저에게는. 그리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합니다. 해야 한다는 건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끼시는 거예요? 하자센터 화장실에 ‘일곱 가지 약속’이 붙어있잖아요. 그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라는 말이 어릴 때부터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제가 파티시에로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거든요. 그냥 맛있고 예쁘게 만들기만 하고 싶죠. 근데 그거 말고도 청소도 해야 하지, 설거지도 있지, 무거운 거 들면서 궂은일도 다 해야 해요. 모든 직업엔 일의 이면이라는 게 있잖아요. 지금 저는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이 일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어느 정도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이 되었으니까요.
라뚜셩트를 오픈하고 나서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나 반응이 있었을까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희가 19년도에 매장을 오픈했을 때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었어요. 외진 골목에 있기도 했고, 사업이나 장사를 잘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시작했으니까요. 3개월 정도 돼서 고민이 많던 차에, 한 유명 인플루언서분이 우연히 방문해 주신 거예요. 저도 알고 있던 분이라 너무 깜짝 놀랐죠. 그분이 진심으로 저희 디저트를 맛있게 드신 것 같더라고요. 우연히 들렸지만 맛있었다며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려주셔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됐어요. 백화점 입점 문의도 계속 들어오고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릴 만큼 많이 오셨죠. 그러다 보니 가게 확장도 하게 됐고요. 그 후에도 그분이 개인적으로 주문하시거나 가끔 오시기도 해서 덕분에 많이 힘을 얻었어요. 진짜 무모하게 시작했는데 어찌 보면 운이 좋았고 감사한 일이기도 해요.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진심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좌절이나 실망하는 일도 생길 것 같아요.
많죠. 사소한 예를 들자면 정말 공들여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요. 다 버려야 해서 상실감을 느낄 때도 있고요. 외부 요인이나 사람에서 오는 힘듦도 많아요. 함께 일하는 팀원 문제일 때도 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상황도 있죠. 그럴 때 저는 일단 내 감정을 알아채려고 해요. ‘내가 지금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하구나’ 그리고 혼자 울기도 하고 화도 내요. 그 감정을 빨리 털고 회복하려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하기 위한 감정은 필요하지만, 일에 감정이 개입되면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정을 배제하려 노력해요. 대표로서 빨리 이성을 찾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다음 결정을 해야 하니까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얻는 건 나에 대한 확신인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제가 10대였을 때도 늘 했던 질문인 것 같아요. 파티시에가 되고 싶지만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함께 있었죠. 그래도 저는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마음속에 뭐가 있다는 거거든요. 근데 용기가 없거나 두려워서 자꾸 되묻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액션의 결과는 실패나 성공으로 치부되곤 하는데요. 저는 그런 결과적인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과가 바뀔 수 있거든요. 하고자 했던 일이나 목표했던 것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다음 선택에서 이전의 경험이 아주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에 더 노련해지고, 비슷한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거죠. 혹은 이전 경험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도 있고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얻는 게 있다면 나에 대한 확신인 것 같아요. ‘나 이런 거 할 수 있네’ 혹은 ‘이건 못하지만 이런 건 좀 하는 것 같다’고 깨달으면서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확신을 쌓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지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하고, 그게 실패든 성공이든 가치 있는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 목표에 도달했을 때 ‘이 정도면 잘했다’ 하고 그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거고, 잠깐 멈춰서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만약 여러 상황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됐더라도 거기에도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으니까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요. 언젠가 다시 할 상황이 생기면 그때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지금 이 질문이 있다면 무조건 하라고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확신이 안 서고 모르겠다면 모험을 해보는 거죠.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지나가다 보이는 학원에 들어가서 그거라도 한 번 공부해 보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부딪쳐 보고 온몸으로 나를 소진하면서 느껴봐야 ‘나 이런 거 해보고 싶었구나’ 하는 확신이 생길 수 있어요. 지금의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거기서 오는 해답이 없으면 또 다른 걸 찾으러 가면 돼요. 생각에만 머무르다 보면 방 안에 가만히 있게 되거든요. 만약 직접 하는 게 좀 힘들다면, 정보 서치는 해볼 수 있잖아요. 그런 거라도 시작해 보고 재밌겠다 싶은 게 있으면 따라가 보는 거죠. 작은 거라도 해보면서 가슴이 살짝이라도 뛰면 일단 해보자, 그런 식으로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회에 나가면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걱정, 어려운 감정이 막 소용돌이치는 시기가 있어요. 처음에는 서툰 게 당연하고 모르는 게 많으니까 피해도 보고 상처도 받게 되는데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쁘거나 행복한 경험은 물론이고 힘들거나 속상한 경험도 다 가치 있더라고요. 그 경험이 쌓여서 내가 원하는 일을 더 잘하게 되기도 하고, 노련하게 대처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산을 오르면서도 ‘나 땀 흘리고 있는 얼굴 되게 웃기네’ 이런 식으로 유쾌한 부분을 찾을 수 있거든요. 너무 두려운 마음에만 집중하지 말고 재밌게 헤쳐 나가려는 마음을 갖고 뛰어들면 다양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어요. 그 경험을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고요. 그 과정에서 작은 목표를 세우고 도달하면서 ‘나 이거 해냈다.’ 하면서 스스로 확신을 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래야 나를 믿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두려움이 있을 때 아이는 어떻게 이겨보려 하셨어요?
저도 겁이 많았어요. 알바 면접 보려고 1시간 전부터 가서 서성거리면서 해야 하는 말을 수십번 되뇌고 연습하고 떨었어요. 혼자 뭘 하는 게 무섭고, 가족이나 친구에 많이 의존하기도 했고요. 그럴 때 저는 도장 깨듯이 해보려고 했어요. 혼자 영화 보기, 혼자 밥 먹기 이런 것들을 써놓고 혼자 카페 가서 1시간 동안 있다 와보고 그랬죠. 그러다 보니 용기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럼에도 뭘 하든 시작은 두려운 게 맞아요. 그즈음 저에게 생긴 좌우명이 ‘후회하지 말자’예요. 후회 안 하는 건 내 몫이거든요. 후회할 일이 없도록 에너지를 다 소진해서 해보면, 아주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후회는 안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런 말 하면 합리화를 잘한다고도 하는데 그것도 맞아요. (웃음) 합리화를 어느 정도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후회 안 할 정도로 눈 딱 감고 해보자, 저 같은 경우 그런 경험이 쌓여서 지금은 뭘 해도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보다 나이 많고 경력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미팅하는 것도 두렵고 제가 작게 느껴졌거든요. 그럴 때 그냥 내가 미숙한 거 알지만 눈 딱 감고 하는 거예요. 그게 쌓여서 지금의 노련해진 저를 만들었거든요. 제가 했던 것처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장치를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 기획·편집_ 효빛(안효연)
:: 윤문_ 나무(성윤서)
:: 사진제공_ 아이(주홍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