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자에서 소라라고 불렸던 이성재입니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고 브라질 타악팀인 ‘히치모싸’, 어쿠스틱 밴드 ‘소이화’ 등 다양한 곳에서 퍼커셔니스트*로 활동 중이에요. 저는 청각장애 음악인이기도 해서요. 청각장애가 있으면 음악을 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퍼커셔니스트(Percussionist): 타악기 연주자
바투카다 팀 ‘히치모싸’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소라라는 이름의 뜻도 궁금해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죽돌*로 2014년부터 지내기 시작해서 2017년에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일반 사립고등학교에 다녔는데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 추구하는 교육 시스템에 회의를 느꼈어요. 이대로 계속 학교에 다니다가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자퇴 후에 부모님께서 하자작업장학교를 추천해 주셔서 입학하게 되었어요. ‘소라’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하늘(空)이라는 뜻인데요. 하늘처럼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에서 지었어요.
*하자작업장학교: 하자센터에서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한 도시형 대안학교. 공연음악, 디자인, 영상, 춤 등 매체 중심의 작업과 교육이 이뤄짐.
*죽돌: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을 부르는 말.
퍼커셔니스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요.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자작업장학교가 많은 영향을 줬어요. 작업장학교는 내가 사는 세상을 현장에서 경험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주관을 기르는 학교인데요. 공연음악, 디자인, 영상 이렇게 세 가지 매체 중 하나를 정해 배울 수 있어요. 이 매체들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매체라고 볼 수 있지요. 예를 들면 공연음악팀에서는 여러 축제나 문화제, 시위 현장 등 다양한 곳에서 공연하면서 현장에 계신 분들과 에너지를 공유하며 기운을 불어넣어 드리고, 영상팀에서는 현장의 여러 상황을 영상으로 담아 다큐로 제작해요. 디자인팀은 현장과 관련된 그림, 깃발, 포스터 등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나를 연결하지요. 저는 공연음악팀을 선택해서 바투카다*라는 브라질 타악 음악을 배웠고, 그게 진로를 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바투카다(Batucada): 여러 종류의 북을 다수가 함께 연주하는 브라질 음악.
하자작업장학교 재학 시절 소라
“내 손끝에서 나오는 연주로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즐겁다라는 걸 느꼈어요.”
작업장학교에서 공연음악팀을 전공한 모두가 음악을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소라는 언제 음악을 일로써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셨어요?
처음부터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고 하진 않았어요. 언젠가 하자에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님이셨던 남정호 선생님의 마스터클래스*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 현대무용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 작업장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현대무용 학원에 들어가 입시를 준비했어요. 평소에 춤추는 걸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차츰 업으로 삼기에는 춤이 저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입시 막바지에 발을 다치는 바람에 그만두기로 했어요. 이후 3개월 동안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일이 무엇일까,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꼈을까’ 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문득 하자에서 했던 바투카다가 떠오르더라고요. 여러 가지 북을 함께 두드릴 때의 웅장한 소리와 악기를 통해 전달되는 울림이 너무 좋았거든요. 모두가 합을 맞추고 연주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 행복했던 기억도 있었고요. 많은 고민 끝에 내가 좋아했던 음악을 다시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때마침 국내 바투카다 팀 중 하나인 ‘라퍼커션(Rapercussion)’에서 멤버를 모집하고 있어서 들어가게 됐어요. 라퍼커션에서는 다양한 공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는데요. 입단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합주를 하면서 꾸준히 연습했더니 공연할 준비가 되었다고 인정받게 됐죠. 매달 4~5번씩 여러 공연과 행사에 참여한 덕분에 많은 무대에 서면서 ‘내 손끝에서 나오는 연주로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즐겁다’라는 걸 느꼈어요. 이때 타악기를 집중적으로 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일로써 해보자고 결심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특정 분야의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수업.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대학 졸업 준비에 집중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네요. 거의 매일 작업실에서 연습하고, 다양한 사운드를 녹음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또 매주 직장인을 대상으로 카혼(Cajon)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삼바 바투카다 팀 중 하나인 ‘히치모싸(ritmoça)’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히치모싸는 작업장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계속 브라질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만든 팀이에요. 공식 활동을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됐고, 축제나 행사가 있는 다양한 곳에서 공연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이것저것 하고 있다 보니 주말이 거의 없다시피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소라가 진행하는 카혼 워크숍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음악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대학 경험을 추천하고 싶으실까요?
사람마다 달라서 무조건 대학에 가는 게 정답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합주 경험을 쌓고 싶어서 지금의 학교를 선택하게 됐는데요. 수업 중에 ‘위클리’라는, 매주 실전과 같은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수업이 있어요. 그 수업 덕분에 제가 기대한 것 이상의 합주 경험을 쌓아서 저에게는 대학이 큰 도움이 됐어요. 퍼커션 분야는 특성상 합주를 통해 많은 경험과 아이디어를 쌓고, 다양한 음악에 적용해 보는 게 중요하거든요.
다양한 팀에서 공연을 많이 해보셨을텐데요. 보통 어떻게 섭외가 들어오나요? 공연을 위한 연습을 따로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팀을 만들었다고 처음부터 공연이 들어오지는 않죠. 처음에는 행사나 지원사업에 신청서를 넣거나 버스킹 등의 활동으로 팀을 알려야 해요. 기회를 얻어서 곳곳에서 공연하다 보면, 공연 관계자분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서 다방면에서 연락이 오게 되더라고요. 관계자분과 명함을 교환하는 기회도 생기고요. 결국 중요한 건 활동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누구도 알아볼 수 없으니까요. 연습은 매주 한두 번은 모여서 2~3시간씩 하는 편이에요. 언제 어디서 공연이 들어올지 모르기도 하고, 계속 합주하면서 실력과 퀄리티를 높여야 하니까요.
“청각장애가 있으면 음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라의 커리어를 이어온 전환점 중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게 된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바투카다를 처음 접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청각장애를 가진 저에게 음악이란 멀기만 한 장르였거든요. 작업장학교에 입학해서 전공 매체를 선택해야 했을 때, 쉽사리 공연음악팀을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음악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두려웠고, 합주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합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합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작업장학교의 공연음악팀 선배들이 즐겁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의 즐거움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무대를 만들어 가는 경험이란 어떤 것일지 호기심도 생겼고요. 동시에 항상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던 제 모습을 넘어서서, ‘청각장애가 있으면 음악을 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사회적 시선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연음악팀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때 공연음악팀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음악을 하는 저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보니 늘 제 음악적 가능성에 의문을 품을 때가 많았어요.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 결심했지만, 과연 내가 음악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앞섰거든요. 그럴 때마다 제 음악적 가능성을 믿고 지지해 주신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청각장애는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메리트가 되어줄 거라며,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죠. 덕분에 힘을 입어 음악을 계속해 오고 있어요.
그동안 공연을 많이 해오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공연 현장이 있으세요?
친구들과 만든 팀 히치모싸에서 처음 홍대 버스킹을 했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1월 초, 영하 15도에 겉옷을 벗어 던지고 공연했거든요. 처음 해보는 버스킹이라 관객을 모으는 방법에 대한 요령도 없었어요. 우리 공연을 봐주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하면서 무작정 바투카다를 연주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웬걸,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느새 저희 주위를 빙 둘러싸고 호응해 주시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추위에 몸이 떨리고 손도 얼었지만 너무 즐겁게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이 맛에 음악을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홍대 겨울 버스킹
공연 음악 업계가 가까운 미래에 겪게 될 변화가 있을까요?
빠르게 변하는 사회다 보니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몇 달 전에 기사를 봤는데, AI가 만든 음악, 그림 등 어느새 AI가 예술 분야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더라고요. 저는 그런 상황이 마냥 탐탁지는 않아요. 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AI가 예술처럼 (수입 면에서) 불안정한 직종에 발을 들이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한편으론 예술가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만의 표현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니까, AI가 인간의 감정선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안심하는 마음도 있어요. 결론은 예술은 인공지능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분야고, 향후 몇 년간은 예술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브라질 음악 같은 경우는 사실 수요가 거의 없는 장르예요. 그나마 바투카다 특유의 타악 퍼포먼스가 관객 호응이 좋아서 행사나 축제에 잘 섭외가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같은 축제나 행사 문화가 계속 존재한다면, 제가 활동하는 팀의 인지도를 꾸준히 높여간다는 전제하에 향후 5~6년 이상은 (지금처럼)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도 제가 앞으로 청각장애 음악인으로 살아가면서 넘어야 할 관문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진심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은 상황에 좌절하거나 실망하는 일도 생길 것 같아요.
저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공연을 해오고 있는데요. 한 번은 이틀에 걸친 큰 공연을 준비하는 시기에 돌발성 난청이 와서 갑자기 왼쪽 귀가 안 들리는 상황이 생긴 거예요. 급하게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지만, 청력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행여 제가 공연을 망치지 않을까 큰 걱정이 들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 생길 수도 있는데 지금보다 큰 공연에서 이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걱정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상황도 앞으로 청각장애 음악인으로 살아가면서 넘어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죠. 그렇게 최대한 모든 신경을 오른쪽 귀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공연에 들어갔는데요. 이때 되게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청력이 떨어진 상태로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더니 나머지 감각이 더 예민해지더라고요. 다른 연주자들의 모습과 손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보였고, 공연하는 공간의 진동이나 울림이 평소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남은 감각을 잘 끌어올린 덕분인지 공연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청각장애와 관련된 사회적 시선을 넘고 싶다는 마음이 원동력이에요. 매순간 한계를 경험하며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제 삶의 방향성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제게 장애란 늘 벽과 같았거든요. 친구들이 다 같이 떠들고 있을 때 대화에 끼지 못하거나, 토론 시간에 대화의 흐름을 놓칠 때마다 ‘나는 귀가 잘 안 들리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합리화하곤 했어요. 음악도 ‘청각장애를 가진 내가 어떻게 음악을 해’라며 말도 안 된다고 치부했어요. 그러다 작업장학교에 와서 한계에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공연음악팀에 들어갔고, 청각장애를 가진 나도 모두와 함께 합주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 저는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한 내 모습을 알아차릴 때 희열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내 음악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해져서 음악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는 중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소라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지금은 대학에 다니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졸업하면 (재정적으로) 독립할 생각이에요. 요즘은 카혼이라는 타악기를 가르치는 워크숍과 소속된 팀에서 공연하면서 돈을 버는데요. 당장 생활에는 문제가 없지만 졸업 후에도 안정적으로 생활하려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해서요.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수입이 안정적인 직종은 아니다 보니 이런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드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에요. 다만 제 주변을 둘러봤을 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을 갖고 나아가다 보면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궤도에 다다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믿음을 갖고 나아가는 중입니다.
“결국 내가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 지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저 역시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확답을 드리기도 어렵고요. 그렇지만 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한 번뿐인 삶,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꼭 하며 살자는 마인드가 있는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일을 실컷 해 본 뒤에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면, 그때 다른 길을 찾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집 밖으로 나와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입시만 바라보는 교육 시스템은 말 그대로 감옥이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을 한 공간에 가둔 채, 세상에 관심을 갖는 건 시간 낭비라며 성적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감옥 말이지요.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불가능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세상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결국 ‘내가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음악이 즐거운 것도 있지만, 매 순간 도전을 하며 나아가는 제 모습에서 삶의 만족감을 얻기 때문에 음악을 하고 있거든요. 여러분도 내가 어떤 순간에 삶의 가장 큰 만족감을 얻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자기다워지는지 잘 떠올려 본다면, 앞으로의 진로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