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오디세이학교 죽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4박 5일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배움과 삶을 연결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익숙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다지고, 새로운 만남 속에서 타인을 환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귀중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올해 오디세이하자 죽돌들은 오랜만에 광주를 찾았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고, 그 의미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그 여운은 길고 깊게 남았습니다.
이어지는 3일 동안은 관심 주제에 따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지역과 여정을 경험했습니다.
‘읽재쓰기(읽는 재미, 쓰는 기쁨)’ 그룹은 순천과 파주를 찾아,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주제로 글을 쓰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래진로’ 그룹은 ‘회복탄력성’을 주제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뒤 다시 일어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진로 여정 속에서 성장과 회복의 의미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세상읽기’ 그룹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새만금을 방문하였고, 신공항 건설과 관련된 현안에 대해 공부하며 환경과 개발, 평화와 삶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각 그룹은 자신만의 주제를 중심으로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고,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여행을 마친 뒤, 죽돌들은 5일 간의 여행에서 남긴 각자의 경험과 배움, 성찰을 에세이로 정리했습니다. 그중 오디세이하자 11기 자칭 ‘말하는 감자’ 이든과 타칭 ‘지요미(‘귀요미’+ ‘지우’)’ 지우의 에세이를 나눕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에 대하여 / 이든
가끔 그런 생각 해본적 없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뭐 신체구조적으로 과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야 있겠지만, 결국엔 전부 인간의 가설 아닌가? 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가?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함께 떠들어주는 이는 잘 없다. 보통 마지막 기억은 모르겠다며 가버리는 사람을 두고 홀로 고민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은 소멸하는가?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을 어떻게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가끔 생각한다.
중학교 3학년, 홀로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원체 남의 도움은 안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낳았으니 잘 키워야하는건 당연한 건데도, 부모님한테 받는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빚 같았다. 사람의 타고난 성질이 독립적이었던 나는 이 때부터 확실히 홀로서기를 준비하고자 했다.
왜 갑자기 홀로서기의 이야기를 하느냐, 묻는다면 인간과의 연결을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관계를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첫번째, 피곤하다. 나 혼자 하면 될 것을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두번째, 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간관계, 내 주변에 그리 좋은 사람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기대 쉬어가기에 인간관계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조금 더 기대며 살았다.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아 모르겠고 그냥 쓸모가 없다. 옆에 사람 둬서 뭐 할건데, 나는 사람한테는 영 안좋은 영향만 받는 것 같다. 혼자 못 사는것도 아니고, 말소리를 들을 바에는 혼자 노랫소리를 듣겠다. 요즘 SNS도 잘 되어 있어서 사람 없이도 잘 산다.
그래도 연대를 동경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무언가 따스함에 소속되고 싶어서 시위도 알아보고 후원도 해봤다. 나는 연대를 동경한다. 인간의 따스함을, 소속된 유대를, 괜한 오지랖을 동경한다. 동시에 미워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경만 하고 살기에 세상은 너무나 입체적이다.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이것 때문이었다. 5.18을 보고 정신이 어지러웠던건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이것 때문이다. 4.3을 공부할때는 참혹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더해서 권력 싸움이 얼마나 멍청한 싸움인지, 그 멍청함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게 역겨웠을 뿐이다. 남겨진 이들과 당시의 피해자들에게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보다는 가해자들에게 느끼는 분노가 더 컸다. 5.18도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4.3보다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았으니까, 그냥 그럴거라 생각했다. 기록관에서, 생각보다 더 많이 조명된 것은 광주 사람들의 연대였다. <소년이 온다> 도 그랬다. 당시의 연대가,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조명되었다. 기록관에서 본 “학생과 여성 여러분은 살아 나가서 역사의 증인이 되십시오” 라는 문구, 각종 식량을 시위대와 계엄군에게 나눠준 어머니, 그리고 <소년이 온다> 에 실려 있는 ‘죽은자가 산 자를 살린다’ 는 대목. 외에도 당시 시민들의 이야기와 지금 살아가는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읽을 때마다 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가 연대를 동경하기 때문이다.
5.18 기록관을 둘러보며 내가 인간관계를 싫어하는 첫번째 이유를 완벽하게 반박당했다. 두번째도, 세번째도, 네번째도, 다섯번째도. 결국 다 같은 이야기였다. 이들은 연대했다. 소속되었다.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계엄군에게 홀로 맞선게 아니었다. 이들은 함께여서 맞섰다. 27일 그 새벽에 그들은 시민들에게 도청 앞으로 모여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함께 죽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그 날 도청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존재한다. 남겨진 이들이 남았다. 살아남아버린게 아니라, 산 자가 산 자를 살렸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다. 그래서 남겨진 이들에게, 살아남은 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역사의 증인들이니까, 그래서 그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까, 그 역사가 당신들을 살렸으니까, 오늘 밤 남겨진 수백개의 꿈들이 요란하면 안된다고, 새카매야한다고.
2025년 5월 20일 화요일 나에게 남은건 연대 속에 숨어든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연대의 겉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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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고민들은 일상 속에 갑자기 찾아온다. 시간은 존재하나? 어쩐지 자주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었다. 시간은 존재하는지, 영혼은 존재하는지, 인간은 왜 자기중심적인 사고밖에는 하지 못하는지, 절대적 옳음은 존재하는지, 보이지 않는 것에 목을 매는 삶이란.
한번은 학교 시계가 고장났을 때, 주변에 전자 시계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시간을 모른 채 자습시간이 끝나버린 기억이 있다. 이 때 처음으로 시간이 존재하는지 생각했던 것 같다. 고작 시계가 하나 고장났다고 시간이 언제인지 모른다면 시간은 애초부터 존재했던게 맞나? 해시계도 물시계도 아날로그 시계도 전자시계도 다 사람이 만든건데 왜 시간이 애초부터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종종 이런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면 다들 재미없는 반응이었다. 혼자 생각할 때는 이렇게 재밌는게 따로 없었는데, 남들한테 이게 그렇게 재밌는 주제가 아니었는지 ‘그래 니말이 다맞아’ 하고 넘어가거나 ‘뭔 소리야?’ 정도로 일축해 넘어가곤 했다. 이런 건 진짜 깊게 생각할때가 재밌는건데. 너무 너무너무 아쉬웠다.
그러던 때,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친구가 생겼다. 난 원래 사람이랑 오래 대화하는걸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날은 너무 좋았다. 목요일 밤, 나는 곁에 사람을 두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니다. 린이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3월 여행 에세이에 재은이 남겨둔 댓글도 기억에 남았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 곁에 남는 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전부터 한참 이야기 했듯이 나는 안맞으면 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을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신기했다.
그 날 새로운 시선을 알았다. 내가 더 배우고 세상을 이해해보기 위해서, 주변에서 나와 다른 시점을 이야기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에겐 연결이 필요하다. 연대가 필요하다. 타인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깨달았다. 맞다. 나는 ‘우리’ 속에서 나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연대는, 연결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이것들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연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980년 광주에서 아주머니들이 시위대에게 나눠준 빵과 주먹밥에서 알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대를, 연결을 알아채는 방법이란 이런게 아닐까?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날 깨달았다던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한다던가, 날이 섰던 말투 속에 숨어있는 걱정을 발견했다던가, 혹은 … 아, 아니다.
우리가 연대를, 연결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아서 증명할 수 없지만, 주먹밥과 같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 증명하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연결될 수 있는 것. 아름다움. 그 속에 숨어있는 고통만을 보지 않는 것. 입체적인 세상에서 그 아름다움을 믿는 것. 아름다움을 믿는 것, 언뜻 보면 자학같아 보일지라도 고통과 슬픔 속에서, 몇번을 넘어지던 그 모든게 연결이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내가 평소에 믿고 살아가지 않던 것. 우리가 그렇게 부르짖고 기대어 살아가던 우정과 환대, 뭐 그런 것 말이다. 보이지 않아서 증명할 수 없는 것. 그게 당연한 것.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즐겁지만, 그렇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는 것.
우리가 가야만 하는 이유를 / 지우
우리는 가야 한다.
다리를 움직이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차를 탈 수도 있고 기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가야 한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스스로 계획해서 가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둘러앉아 각자 관심 있는 사회 이슈에 대해 말했다.
그렇게 여러 대화를 통해 우리의 여행은 자연 쪽인 새만금을 주제로 계획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들어본 주제였다. 논란의 중점에 올라선 지 꽤 오래된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나는 여태 단 한 번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주제로 숙소도 찾고, 일정표도 계획하고, 여행을 준비하고, 새만금을 알아보고, 농성 현장을 찾아보며 새만금에 대해 찬찬히 알아갔다. 수라갯벌. 신공항 건설 찬성과 반대 입장. 정부 측의 발언과 문정현 신부님에 대해 찾아보며 세상은 생각보다 더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부 같은 종인데, 왜 이리 생각하는 방식이나 성향이 다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본성은 비슷하다는 것이 참, 의문스럽기만 하다.
2025년 5월 22일. 차에서 내려 수라갯벌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비도 오고, 하늘도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씨였던 탓인가. 아무튼 좋은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수라갯벌은 내 상상과 다르기도 했다. 영화 <수라>에 나온 갯벌의 모습과도 달랐다. 그리 대단한 곳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덥지는 않은 날씨가, 본 적 없던 종들의 새들이 보이자, 내가 진짜 수라갯벌에 왔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수라갯벌은 볼수록 매력 있는 장소다. 정확한 지점을 꼽지는 못하겠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과 장면에 홀려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새들은 자신의 공간이라는 것을 아는 듯 그 장소를 자유롭게 다녔고, 수라갯벌과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때마침 쌍안경을 받아서 새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정말로 신기했다. 즐거웠다.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어서,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새들을 바라봤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새는 저어새였다. 번식기가 되면 가슴팍에 노란색 깃털이 생기는데, 그 모습이 사람과는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고 번식기 때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기도 해서 멀리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것 같다.
또한 수라갯벌을 보며 왜 사람들이 그토록 신공항 건설에 반대했는지, 미군 기지를 비난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동떨어진 것이 나에게 다가온 것, 내 앞에 서 있던 벽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결국 그 현장에 직접 가보았으니. 그 현장을 느끼고, 관찰하고, 알았으니, 그것이 온 게 아니라 내가 그것에 다가간 것이다. 아직 그것이 뭔지 잘 모르지만, 천천히 알아 가볼까 한다. 한 걸음씩 다가가 볼까 한다.
아무튼 이날은 하루 닫기 때 수라갯벌의 이야기에 대해 잔뜩 써놓은 하루였다. 얻을 것이 많은 장소를 폐기한다는 사람들은 수라갯벌을 숫자로밖에 치환하지 못하나 보다.
2025년 5월 21일. 새만금 농성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농성장에 계셨던 분들은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시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계셨다. 우리는 그 더운 거리에서, 환경청 옆에 있는 농성장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문정현 신부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문정현 신부님은 많은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시고 선한 행동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일까, 신부님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찾아갈수록 신부님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셨다.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버리기 쉬운 세상에서 신부님은 많은 사람들의 확성기가 되어주셨다.
문정현 신부님과는 30분간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평화란 무엇인가. 전날 광주에서 지냈을 때 받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에 여러 답변들을 써보았지만, 결국엔 공백인 상태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평화란 것을 단정 짓기 아직 이른 것처럼, 평화란 것을 아직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친구들도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변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 우리는 평화를 아직 느끼지 못한 걸까?
신부님은 초반에 본인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고, 그 뒤 질문을 받으셨다. 인터뷰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길진 않아 아쉽긴 했지만 그럼에도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변을 받아 만족한다.
문정현 신부님은 평화라는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식지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장애인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함에 잊혀 오히려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이 세상에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라, 오히려 망각한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인터뷰하던 30분, 농성장에 참여한 1시간. 정말 가치 있던 시간이었다.
2025년 5월 19일. 광주에 방문했던 때를 기억한다.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 보자. 무더위 같던 온도와 비가 올 듯 말 듯 흐릿한 하늘에 꿉꿉한 습기. 불쾌지수가 꽤 올라갔던 날씨였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도 그만큼 더웠다고 한다. 그 더운 날씨를 함께 느끼고 있자니, 나 같으면 그런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뇌 한쪽을 차지했다. 밖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계엄군에게 저항하고, 시위에 참여하고, 잘못된 정부에 맞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내 기념관에 들어가며 대단하다는 감정 대신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한 짓이 아닌 것 같은 끔찍한 일들이 적힌 내용들을 두 눈에 담았다. 속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일수록 오히려 두 눈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잊지 않도록, 놓치지 않도록 머릿속에 하나하나 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천천히, 자세히, 뜯어보듯이 기념관을 둘러봤다. 하나도 놓치기가 싫어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봤다. 잊으면 안 될 것들을 이제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높으신 분들은 이 사실에 침묵하고, 계엄군들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죽이고, 보호받아야 할 시민들은 직접 거리로 나왔다. 끔찍하다.
아, 대한민국 정부는 태극기를 들 자격이 없구나,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죄지은 것들이 많은 사람들은 죽음으로도 회피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 죄들을 책임졌으면 좋겠다. 평생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광주 5·18 기념관을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이자, 하나의 결심이었다. 무엇을 결심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냥,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
마지막 밤에 한 하루 닫기도 인상 깊었다. 서로에게 질문하며 본인이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 배운 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나도 받은 질문 중 인상 깊은 것이 있었다. 본인들을 데리고 같이 여행한 것이 보람 있었냐, 가치 있었냐 같은 질문이었다.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들을, 그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난 정말로, 혼자서 한 여행보다 다 같이 한 여행이 많은 것들을 안겨준 것 같다.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며 알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혼자가 아닌 다 같이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얼마나 든든했는지, 지치긴 했지만 함께여서 얼마나 좋았는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느낀 것 중 노트에 여러 번 쓴 문구도 있었다. ‘내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까?’
말 그대로이다. 오디세이에 오지 않았다면,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다 같이 가지 않았다면, 나는 알 수 있는 것들이 극히 제한적으로 좁아질 것이다. 함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가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니, 많은 것을 배워야 하겠다는 결심이 든다. 그렇게 다 같이 한 여행이 배움으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 배움을 놓치지 않게 꼭 안았다.
이번 여행, 가보길 참 잘한 것 같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며 왜 사람들이 직접 그 현장에 방문해야만 하는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가보지 않고선 모른다. 느끼지 않고선 모른다. 보지 않고선 모른다. 듣지 않고선 모른다. 그렇지 않고선 모른다. 꽤 값진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내가 바랬던 것이 배움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 그런 값진 경험을 했다. 수라갯벌을 단순히 숫자로만 보는 그 사람들은 모른다. 가보지 않고선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이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의 차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