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은 나에겐 ‘마무리’이자 ‘성장’이다. 그렇기에 매듭은 지금 나에게 제일 의미 있고 중요하다. 난 끝이 좋으면 지난 모든 일들이 좋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에세이로 나의 마무리를 더 잘 해내고 싶다. 나의 1년을 긴 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면, 굴곡도 있고 꼬임도 있고 가끔은 작은 매듭을 지어 나갈 때도 있었다. 이 과정들이 내가 두 학기의 매듭을 잘 짓게 만들어줬다. 이번 학기(2020년 가을)는 나도 주변 환경도 친구들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들이 정말 소중하다. 이젠 내 주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바뀐 모습들이 잘 보인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정작 ‘내’가 성장한 부분은 또렷하게 보이진 않는다. 나는 이번 1년을 살아내며 뭘 얻어 왔을까?
실마리
#내가_알아간_것
“나는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는가?” 학기를 매듭지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고 끝까지 잘 풀리지 않았던 질문이다. 그래서 차근차근 내가 처음과 바뀐 생각들을 짚어보며 실마리를 찾아갔다. 그 끝에 내가 이번 학기에서 얻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싫어도 무작정 한 번 더 해보는 것의 중요함” 내가 제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수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질리면 금세 포기해 버렸다. 이런 나의 모습이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의 시작에 다짐을 했다. ‘내가 힘들어 하거나 싫어하는 것일지라도 일단 열심히 해보자!’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한 번 더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한 뒤에 ‘이만하면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하나만 더,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 전신을 하나 그리고 ‘그만 그릴까?’라고 생각 될 때 끝내지 말고 손이라도, 손가락이라도 하나 더 그려보는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난 가을을 이렇게 보냈고 이 다짐이 정말 중요했다. 또 ‘한 번 더’는 나에게 열정을 주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도 한 번 더 시도해 보니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하기 싫다”에서 “조금만 더”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또 힘들고 싫어도 한 번 더 함으로서 그 순간 조금씩 성장했다.
한 번 더 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다. 난 작업장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마무리를 흐리게 하면 내가 이제껏 해온 것들이 전부 흐려진다는 것을 알았다. 열심히 한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말이 쉽지 사실 제일 어려운 것이다. 끝에 가면 ‘이제 좀 있으면 끝난다!’라는 설렘에 마냥 빨리 끝내고 싶다. 하지만 이 설렘을 잠시 내려놓고 진지하게 마무리한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매듭을 짓는 일이다.
‘한 번 더’하며 마무리를 잘 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이것을 항상 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무리 매듭을 경험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고 있다. 난 이제 포기하고 싶을 때나 빨리 끝내고 싶을 때 한 번 더, 끝까지 해 보려 한다. 이 실마리에 1년 동안 살아가며 얻어가는 것들이 함께 뭉쳐 있다. 함께한 사람들, 여러 수업들 그 모든 시간들이 나의 실이 되었고 매듭이 되었다. 실마리도 찾았고, 이제 실도 있고 바늘도 있다. 이제 나만의 매듭을 다시 하나 지어본다.
바늘
#나의_원동력
실은 바늘이 있어야 자신의 쓸모를 다 하고 마지막 매듭을 짓는다. 지난 1년간 나에게 이런 바늘과 같은 힘과 열정을 준 것은 글과 그림이다. 말이라는 표현 수단 말고도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힘이 되었고 열정이 생겼다. 수업에서도 글을 쓰거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활동들에 더 관심이 갔다. 글을 쓰는 책 읽기와 글쓰기 수업은 물론이고 시 읽기가 특히 그랬다. 사실 이전에는 시를 쓰거나 글을 쓰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두려움은 ‘부끄러움’에서 나왔다. 오글거리거나 오만하게 보일 것 같은 마음에 두렵고 괜히 내 글이 부끄러워졌다. 또 내 생각을 정확히 풀어내지 못해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 같은 글이 나왔다. 그래서 항상 형식적인 이야기를 글에 채웠던 것 같다. 또 어느 정도 적당하다고 느껴지면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그 글, 시에서 손을 놔버렸다.
난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호칭에 대해 쓴 글이다. 항상 고민이었던 장애인이라는 호칭, 더 나아가 지금 사회에서 불리고 있는 이름들에 대해서 적었다. 짧지만 내 생각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도 봄학기 마무리로 쓴 <고등어>라는 나의 한 학기를 담은 시도 나의 감정과 생각을 담을 수 있었다. 이 두 글을 쓰며 ‘아 이렇게 내 생각과 감정을 적어 가는 거구나’ 하고 알았던 것 같다.
난 이것의 시작으로 이번 가을학기에 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시를 적을 때는 나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설명을 하기보다는 비유를 했다.
예를 들어서 ‘친구와 사이가 벌어졌을 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를 ‘서로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을 서걱서걱 잘라냈을 때의 소름이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시를 쓸 때 그때의 나의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와 비유하면 시가 한층 더 풍성해 짐을 느꼈다. 이렇게 나는 시로 내 감정을 표현했다. 나중에 시 수업은 시 읽기로 대체 되었다. 쓰는 것도 좋지만 듣는 것도 의미 있다. 다른 작가의 시를 읽으며 더 다양한 표현과 여러 감정을 느꼈다. 또 인생의 중요한 열쇠 같은 현명함을 배우기도 했다.
글쓰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난 그 중 소설과 독후감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 글을 사람들이 읽어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또 피드백을 해줄 때면 더 좋게 고치고 싶었고 짧게 끝내기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전부 적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소설을 쓸 때는 캐릭터가 말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좀 더 리얼하게 만들고 싶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상황을 많이 넣었다. 또 소설 속 캐릭터의 성격을 정할 때 나의 감정을 부각해 넣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감정을 캐릭터로 만들어 표현할 수 있었다. 독후감은 내 시점에서 보는 책에 대해 적을 때 들었던 생각들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랑이 무엇인가?”의 대한 질문을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책과 엮었던 경험은 내 일상 속 질문을 풀어내는 경험이 되었다.
글 이상으로 그림도 나에게 정말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만큼 그림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자작업장학교에 와서 그림을 그릴 때 일이라고 생각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난 그림을 그려가며 알게 되었다. 내가 열정 있게 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이 그림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직업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라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되어 피곤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이쯤이면 “나는 왜 이렇게까지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는가?” 질문이 생긴다.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즐겁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이 질문은 차차 풀어갈 것이다. 글쓰기와 그림만이 이번 학기의 원동력이 되어준 것은 아니다. 사실 수업이 하나하나 쌓여 나의 일상을 채워 준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수업이 의미 있다. “일상을 채운다”는 것은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실
#반복되는_일상의_행복
내 하나하나의 일상이 한 올씩 모여 하나의 실이 되었다. 그 중 단단히 나를 움켜쥐고 있던 것이 학교에서의 수업이었다. 먼저, 글로비쉬와 파쿠르는 내가 봄학기를 끝내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한 수업이다. 내가 글을 쓸 때 형식적인 내용만 채워 나가고 손을 놔 버렸던 것처럼 너무 힘들거나 부담스러운 활동을 할 때는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기합을 넣고 들어갔다”고 할 정도로 정말 굳게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처음엔 열심히 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잘되지 않았고 “너무 무리하지 말자”라는 쪽으로 가버렸다. 그래도 나중에 다시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계기가 생겼고 파쿠르와 글로비쉬 안에서 찾아갈 수 있었던 의미가 생겼다.
“저는 글로비쉬의 수업방식이 반복되는 게 안정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떤 것이 소월에게 안정감을 줬어?”
이번 학기 글로비쉬*를 종강 때 리뷰를 하며 떠비가 나한테 했던 질문이다. 글로비쉬는 화요일의 수업방식과 목요일의 수업방식을 2가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화요일은 목요일에 했던 청소년 연설의 인상 깊었던 부분을 외워서 발표했다. 또 일주일간 인상 깊었던 단어, 문장을 써오면 같이 나누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뽑는다. 그 후 오픈 사전(네이버 오픈 사전 프로: 챌린지/ 2020 HPS GLOBISH)에 예문을 작성해 등록한다.
목요일에는 인권, 자연 등등을 지키기 위해 청소년들이 연설한 영상을 시청한다. 연설문을 떠비가 주시면 파트를 나눠서 팀별로(또는 각자) 연설문을 해석하고 읽어 본다. 수업 방식이 나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졌다. 반복된다는 것이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준 이유는 ‘친근함’ 때문이다. 계속해서 새롭고 낯선 것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가끔은 기분전환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있으면 부담이 된다. 이번 1년에 새로운 곳에 들어와 새로운 것에 적응하며 지친 나는 항시 비슷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수업 방식이 정해져 있는 글로비쉬가 좋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글로비쉬 수업내용에서도 배운 것이 많다. 특히 난 사전에 단어를 채워 넣었던 게 생각난다. 자신과 친구들에게 인상 깊었던 단어를 골라서 예문을 적으며 그 단어에 대해서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전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 개의 단어가 외우지도 않았는데 기억이 난다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 글로비쉬: 비영어권 사람들이 쉽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만든 영어로, '글로벌(Global)'과 '영어(English)'를 합성한 말
파쿠르는 사실 나의 열정에 비해 잘 되지 않은 수업이었다. 파쿠르에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첫 시작’이다. 토마가 파쿠르 시범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그 동작을 따라 할 때가 많았는데 “자 시작!”이라는 말과 동시에 내 몸이 얼어붙었다. 아마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실패’할 것 같다는 느낌에 그런 것 같다. 항상 토마는 ‘맞고 틀리고는 없다.’라고 말씀 해 주셨지만, 나의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몇 번 해 보고 잘 된다고 생각되는 동작들은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 중 기억에 남았던 시간은 월런을 했을 때다. 벽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걸 반복하는 것일 뿐인데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 시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정말 즐겁게 열정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활활 타오르는 캠프파이어 같은 글로비쉬와 파쿠르의 반대로 따스한 햇볕 같은 수업은 현미 네 홉 과 무지개 테이블인 것 같다. 이 두 개의 수업에서는 “함께” 해 나아갔던 시간이 정말 좋았다. 가을 학기 현미 네 홉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흙 포대를 옮기는 것이다. 정말 힘들었지만, 이 흙으로 사막 같던 밭을 작물을 심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질이 좋게 만들 수 있었다. 이때 뿌듯함이 나를 꽉 채워줬다. 그래도 역시 나는 먼저 흙을 만지는 재미와 키워나가는 즐거움보다는 모두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즐거움을 더 크게 느낀 것 같다. 그렇기에 모두와 함께하기에 농사가 재미있었고 흙을 푸고 작물을 심었던 게 좋아졌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무지개 테이블은 비건으로 만들어보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주방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가 있었다. 난 이 시간이 정말 좋았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재료를 씻고 준비하고 있으면 조금 지각한 사람이 하나, 둘 모여서 음식을 함께 만들어나갔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나에겐 좋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또 편의점 음식을 직접 만들었던 게 정말 의미 있었다. 심지어 비건으로 만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이번 학기 무지개테이블 수업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은 음식은 바로
‘비건 마요네즈’이다. 시중에 팔고 있는 마요네즈보다 훨씬 맛있어서 놀랐다. 담백하고 짭조름하며 부드러움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심어준 수업은 역사와 공동 인문학, 내면의 지도이다. “역사의 글쓰기는 문학과 다르기에 더 정확 해야 한다.”라고 윤슬이 말씀 해 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정말 처음 생각해 봤던 관점이었기에 그렇다. 윤슬이 말했듯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또 감상을 길게 적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정확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짧은 과거가 아니기에 더 정확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역사에 관해 글을 쓰려면 지식이 필요하다. 난 이 지식이 정말 부족하기에 역사를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래도 윤슬(담임이자 역사 선생님)이 ‘자신의 역사를 그려보기’, ‘역사 개인발표’ 등등의 수업으로 나의 관심을 끌어 주셨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지도는 자신의 내면을 보고 다독여가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가서 ‘심리학’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새로웠다. 설명하기에 어려운 심리적 상황들을 ‘정확히’ 수학처럼 풀어놓은 느낌이었다. 나의 꼬여버린 상황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심리를, 나의 마음을 인간의 내면 ‘심리학’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면에 지도에서 배웠던 것을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부분적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함께 부르기에서는 자연스럽게 난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정말 부담스러워한다. 내가 이 부담스러움을 이겨 낼 수 있었던 노래가 자우림의 <Hola!>였다. 봄학기와 가을 학기 모두 함께 노래를 불렀던 게 많았는데, 저 노래만 각자를 나눠 불렀다. 각자의 파트가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부담스러웠지만 계속해서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아직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어느 정도 함께 부르며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반복되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은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 이 9개의 수업이 일주일, 한 달, 한 학기 반복되면서 나에게 편안함을 줬다. 또 반복되면 무언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것이 ‘친근감’이다. 그 반복되는 일상의 행복이 ‘친근함’으로 엮어 나의 실을 더 단단하게 하기도 부드럽게 하기도 했다. 정말 돌아보니 모든 한 올 한 올이 의미 있었다.
매듭
이렇게 나의 한 학기의 큰 매듭을 짓게 되었다. 다 표현할 순 없었지만 많은 매듭 중에는 사소하지만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꼬임들도 있다. 또 정말 행복하고 마냥 사랑스러운 일도 있었다. 이제 다시 천천히 그 매듭을 살펴본다. 이 매듭들은 또 내가 다음에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일들을 엮고 있다. 이런 매듭들을 삶의 실에 더 묶을 것이다. 또 매듭들을 잘 기억해서 나의 삶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