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모두에게 익숙치 않은 줌 수업과 확신할 수 없는 일정은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반비례하게 만들었다. 쪼그라든 에너지로 넘치는 시간을 수습하기 위해 이래저래 노력했는데 이때는 코로나 짬이 덜 찼을 때라 매우 힘들었다. 뒤집어지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후에야 일상의 중심을 찾는 방법을 진심으로 원했다는 점이 재밌을 뿐이었다. 이때의 나는 넘치는 시간에 무력해져가는 나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찍고, 읽었다. 물론 자주 고꾸라졌고 이 방법이 맞나 의심했으며 나와의 싸움에 매번 실패했지만.. 천성이 늘어지게 생각하고 금방 잊는 사람인지라 자아도취와 자기혐오 사이를 아주 부지런히 옮겨다닌 것 같다.
1학기의 목표는 학교를 졸업할지 자퇴할지 결정하기였다. 학교에 대한 고민은 입학한 순간부터 있던 것인데 학교와 내가 지향하는 바가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고, 1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둘 사이에 타협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만약 자퇴를 한다면 어떤 일을 할지, 졸업하기로 한다면 그래야하는 이유는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했다. 혼자만의 치열한 고민과 가족과의 회의 끝에 "온라인 수업이 더 길어진다면 그만 두겠습니다!"를 선언하러 학교에 갔는데 마침 그 주에 오프라인 개학을 했다. 나는 이렇게 얼레벌레 1학기의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꿈이룸학교 졸업 루트를 타게 된 것이다.
2020년 2학기: 와 여름방학!
비록 어영부영 졸업 루트를 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을 해보자!'였다. 그래서 2학기의 목표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다 한 것 같다. 인턴십, 검정고시 공부, 개인 프로젝트, 팀 프로젝트, 학교밖센터에서 하는 학습비 지원, 인디자인 수업, 외부 전시준비, 철학공부 어쩌고저쩌고... 1학기 때 골 깨지도록 뭉쳐놓은 존재에 대한 불안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요상하게도 바쁜 몸이 안정감을 선사하는 마법...
2학기 때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을 뽑으라면 인턴십이다. 얼레벌레 공주님의 첫 사회생활... 페미니즘 북카페에서 3개월간 인턴을 했는데, 하고 싶었던 강의기획 혹은 보조일이 코로나로 인해 불가능해 지면서 근무시간 7시간 중 5시간 정도를 멍 때리며 보내야했다. 처음에는 이 시간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근무 날 마다 책을 한권씩 완독하기 시작했다. 방해되는 것 없이 몰입해서 책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돌아보면 두잉지기 분들과 더 친해지지 못한 것, 제대로 일해보지 못한 것 등등의 아쉬운 점들이 많지만 코로나 시기여서 가능했던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0년 3학기
3학기는 기억이 정말 없다.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 같다. 3학기 초반에는 외부연계학습과 2학기 때 마무리하지 못한 사진집을 마무리하기 위해 바빴던 것 같은데, 독립출판 워크숍을 들으며 사진집 편집, 인쇄소 컨택, 가제본 발주 등등을 했고 홀로 미학공부와 언어공부를 하겠다며 의지에 불탔던 기억이 있다. 3학기의 아쉬운 점은 뉴미디어 수업을 거의 버렸다는 점. 아직도 지오쌤께 죄송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대놓고 '나는 스터디할 의지 없소'를 피력한 듯하여... 보실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3학기도 나름 열심히 달렸다. 인턴십을 마무리하고, 디지털 가내수공업도 하고, 독서동아리를 드디어 활성화 시켜 진행했다. 와... 나 뭐 진짜 많이 했네... 대박이당.
3학기를 보내면서 그간 조금씩 느껴오던 내 문제를 크게 받아버린 것 같다. 언제부턴가 불안을 쌓아 그것을 연료로 사용하는 패턴으로 살게 되었는데 (그래서 상반기엔 늘어져 있고 하반기엔 꽁무니 빠지게 바쁘다...) 그게 전혀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바쁘지 않을 때는 불안하고 바쁠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벌리게 만들었다. 이런 상태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인지하는 순간 슬라임이 되어버렸는데 10월 말부터 흐물텅 인간 상태로 어째 여기까지 왔다 싶네. 모두 지오쌤과 진희쌤과 졸작 도와준 3기 친구들 덕분이다.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내 자존심 덕도 있는 듯. 그래도 최근에 많이 회복했다. 좋은 영상과 텍스트와 운동의 힘을 빌려 반 인간상태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2021년
이 글을 쓰는 동안 2월이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올해 뭐하지? 를 고민한다. 사실 뭐하지를 고민한다기보다는 이미 설계한 계획은 거창한데 누구 말마따나 그 미래가 절실하지 않아서 도전하는 것을 겁내는 중이다. 근 시일의 목표는 인간되는 것. 다시 중심을 잘 잡고 계속 읽고 보고 움직이는 것 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2년간 누구보다 치열한 마음으로 게으르게 흘려보낸 시간 못 잊을 것 같다. 불안 가져다 뗄감으로 쓰는 버릇을 고칠 방법 강구하며 2021년 잘 살아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