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마을 성년식에서 성년자들은 애써 증명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 누리며 스무 살 전환의 시기를 축하받았습니다. 성년자뿐만 아니라 십 대부터 성년을 훌쩍 넘긴 어른까지 모두가 각자의 스무 살을 품고 한자리에 모여 ‘어른 됨’과 ‘한 사람의 몫’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설렘과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성년자들의 ✨진솔한 다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두다 박소담
저에게 성년은 멀고도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성년이 된 지도 어느덧 4개월이 지나왔습니다.
성년이 되니 해야 할 일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 가끔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직 앞으로의 성년의 시간이 낯설고 두려울 것 같지만, 이 시간조차 제가 성년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무 살이 되었다고 갑자기 저의 모든 것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천천히 제 속도에 맞춰 저에게 걸맞은 성년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리사 한예림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보낸 편지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기나긴 답장을 읽으며, 일기장에 적은 어떤 날의 환희와 분노, 약속과 좌절이 더는 저를 사로잡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며, 희미하게 지나감을 이해합니다.
많은 일이 시작되고 또 끝난 장소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강변의 넓은 공터입니다. 오래전 자동차 극장과 임시주차장으로 사용되었다가 버려진 곳입니다. 심야에 악기 연습을 하는 사람과 캐치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유령처럼 머물던, 대체로 비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찾은 공터는 변해 있었습니다. 밤새 앉아 있던 계단은 공사로 인해 파헤쳐졌고, 더러운 콘크리트 바닥 대신 정비된 자전거 도로가 생겼습니다.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은 모조리 뽑혀 있고, 공터의 시간만큼 오래된 쓰레기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 그곳은 더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벽에 새겨진 그래피티와 연필로 그린 낙서. 다리 아래 거대한 그늘과 오후 다섯 시의 태양. 순간 저는 다시 공터에서 보낸 시간 -계절, 감정, 상태 혹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것-으로 돌아갔습니다. 기억되지 않은 하루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감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일의 반복임을. 기억은 감각으로 남고 그리하여 결코 멀어지지 않음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질주하겠습니다.
모래 김찬희
스무 살이 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저는 하나도 새로워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과거의 시간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제 모습이 그대로라는 생각에 발버둥 쳐 봐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의 산증인이 되었다는 사실만 되새겨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강압적이고 열등감과 악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남과 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 모습을 돌아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모든 행동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직시한 순간부터 변하려 발버둥 쳤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조금씩, 조금씩 변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요.
스무 살이 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겠지만, 저만의 속도로 조금씩 변해 보려 합니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사람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빈 김예지
저에게 스무 살이 된 소감을 묻는다면 제 대답은 이러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비 오는 날 맨홀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돈을 벌면서도 반창고 값 2,100원이 아까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스무 살이 되었다는 가슴 뜨거운 벅참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찰나뿐이었고, 곧이어 진한 숙취로 인해 짧은 벅참은 금세 막을 내렸습니다.
저에게 성년으로서 다짐을 묻는다면 제가 하고픈 대답은 이러합니다. 즐기며 살겠습니다. 화창한 날엔 쏟아지는 햇살을 만끽하며 걷고, 비 오는 날엔 서늘한 바람과 빗방울을 맞이하겠습니다. 아지랑이 피는 여름엔 아이스크림 하나에 더위를 물리고, 하얀 입김이 피는 겨울엔 붕어빵 하나에 추위를 물리겠습니다. 소소한 행복들을 지나치지 않고 살겠습니다. 끝으로 성년이 된 나를, 우리 모두를 응원하겠습니다.
수민 김민수
3지망이던, 적당히 원하던 대학에 왔습니다. 1지망은 말도 안 되게 높았고, 2지망은 지금 제가 다니는 학교의 다른 학과인 걸 생각하면 솔직히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감사한데…. 재미가 없습니다. 노잼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어딘가 어렵습니다. 대학은 외진 곳에 있어서 자취를 합니다. 처음으로 혼자 살아보니 어머니 품이 그리워집니다. 이곳은 술집 말곤 뭐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허구한 날 술을 마십니다. 사실 요즘은 그것도 크게 재미없습니다. 술만 보면 힘듭니다.
그 외에는 하나도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못난 것 같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었는데 미치도록 어린아이 같습니다. 내가 제일 부족해 보이고 못나 보입니다. 어머니가 이러라고 자취방을 구해주신 건 아닐 텐데….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요즘 군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너무 어리게 느껴져서 그렇기도 합니다. 거기 가면 조금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냥 술을 살 수 있다고 어른이 되는 것 같진 않은데요…. 여전히 어른이 아닌 나를 자꾸 마주치는 요즘입니다.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수민의 어른 인생은 어찌 될까요?
To be continued….
우유 진현엽
어릴 적 저는 늘 성인이 되길 바라며 ‘언제쯤 성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한껏 기대에 부푼 어린아이였어요.
하지만 성인이 된 직후 실망하며 ‘오랜 시간을 기대했던 만큼 나에게 바라는 게 많았던 걸까?’,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하며 혼자 푸념을 놓았죠.
그렇게 19년 동안 쌓여온 기대를 다 치워내고 현실을 바라보니 실망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나의 기대가 충족되는 면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기대’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쌓이는 먼지 같은 것이라서, 한 번은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 치워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대’를 한껏 쌓고 나면, 쌓아 온 ‘기대’를 치워낼 때 ‘실망’이라는 수고가 필요하죠. 그래도 ‘기대’를 치우고 난 후에 기대했던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실망’이 전혀 헛된 수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그런 큰 실망을 감수하더라도 앞으로도 수없이 기대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윤 전하윤
오지 않을 것 같던 스무 살에 어느새 닿아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지난날을 돌아보니 저는 아주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던 것 같습니다. 그 흔한 장 보기, 세탁기 돌리기, 설거지 하기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혼자서 온전히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저는 여전히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해주던 것들을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만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 홀로서기를 연습해 보려고 합니다.
은빛 전유성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라고 생각하며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것처럼 느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성인이 되어 있네요. 오랜만에 ‘하자 수료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그때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고,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대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막연한 미래를 고민만 하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실망하더라도 희망을 품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만의 색깔과 모양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다양한 세상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살겠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실수도 하고 넘어지는 일도 있겠지만,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인우 정인우
비에도 지지 않고 살겠습니다.
한 어른 생, 무지와 무식을 타개하며 살겠습니다. 고통과 두려움에 쉬어갈지라도, 스스로 알고자 하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한 어른 생, 성취에 천착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더 나은 나로 이끌리는 감각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 어른 생, 큰 곤경에 무기력해졌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의지하고 다시 그들을 너끈히 지탱하며 살겠습니다.
한 어른 생, 심지를 찾아 굳건히 세우며 살겠습니다.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당당하겠습니다.
한 어른 생, 때를 가릴 줄 알며 살겠습니다. 무한한 매 순간의 궤적 속에서 의미 있는 날들을 짚어가며 생을 향유하겠습니다.
한 어른 생, 솔직하겠습니다. 남과 나를 해치지 않는 선까지 언제나 나와 세상에 있어 솔직하겠습니다.
한 어른 생, 겸손을 깨치겠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이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한 어른 생, 비에도 지지 않고 살겠습니다.
전공 과제가 어려워도 살겠습니다. 우산이 없는데 비가 굵어도 살겠습니다. 매일매일 하던 영어 공부, 하루 깜빡해서 10주 연속 신기록을 날리더라도 살겠습니다. 문득 본 저 앞이 전처럼 선명하지 않아도,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도 살겠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에 욕심을 부렸다가 지쳐버려도, 잠시 스스로를 놓쳐도 지지 않고 살겠습니다.
저는 비에도 지지 않고 살겠습니다.
재은 백재은
올해 3월 오사카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겨우내 이곳저곳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모은 돈, 실상 학비를 내면 얼마 남는 것도 없지만, 무작정 떠났습니다. 막상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만 해도 불안했습니다. 더 이상 스무 살이라는 사회적 그레이존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것도 없고, 복학은 해야 하는데…. 객관적으로는 많은 나이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스무 살이 지나갔다는 점이 어쩌면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여행 이튿날,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 호텔로 돌아가려던 밤이었습니다.
“여권 보여주시겠어요?(パスポートを見せてください)”
패스포트? 아뿔싸! 저는 국제적으로 아직 열아홉 살일 뿐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합법적으로 살 수 없는, 열아홉 살이요. 그 짧은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제가 처음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습니다. 압박감, 열등감, 초조함, 질투, 그 모든 것이 어쩌면 허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게 다 뭐라고!
그런가 봅니다. 스무 살이 되고, 성인이 된다고 하여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가 봅니다. 그럼에도 무의식적으로 나를 찌르는 일상에 둥그스름한 태도로 스스로를 안아주는 법을 배우게 되나 봅니다. 제가 스무 살을 앞두고 배운 첫 마음가짐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짐합니다. 날 세운 마음에 열심히 기름칠하고, 담금질하며, 충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지유 김지유
그래, 어쩌면 이제 시간이 되었어.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제법 멀리 왔어.
너는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으로 있었지? 너는 어디에서든 무엇으로든 있었어.
너는 외로움, 그리움, 괴로움의 시간들이 지나가기를 오랫동안 빌었지만,
끝내는 그것들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겹쳐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어.
너는 드높고 굳건한 지성의 말뚝 아래에서 가랑비를 피하다가,
이내는 그 옆구리를 간질이며 함께 호탕한 장난도 치게 되었어.
너는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날 불쑥 들이닥쳤을 때,
그것의 무람함을 재촉 않고 어여삐 여기며 스스로 자라날 수 있게 두는 법을 배우게도 되었어.
너는 좋아하는 마음과 동시에 미워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함께 얻었고,
오직 혼란한 탓으로 그래 조금 더 말을 골라 뱉어내기 시작했고,
꼭 해야 할 말을 꼭 해야 하는 순간에 하는 법을 훈련했어, 치열하게.
그래도 여전히 실수를 해. 그래도 여전히 후회를 하고, 그래도 아직은 더 많은 용서를 받았네.
미운 것과 부끄러운 것의, 어려운 것과 낯선 것의, 아둔한 것과 불우한 것의 닮음과 다름을 보게 되었을 무렵에
너는 너도 모르게 성년이 되었대.
얘, 너는 긴 여행을, 외로운 여행을, 극복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여행을 앞두고 있어.
그곳에서는 약속해. 결단코, 성실해야 해, 그러나 조급함 없이.
얘, 넌 너의 편을 골랐고, 그들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너는 네가 갈 곳을 알아, 아무도 모르게, 너는 이미 그곳의 사람이란다.
지훈 김솔
저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저는 ‘솔’에서 유리되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입니다. 겨우 이름 하나로 새 삶을 산다니 허무맹랑하기도 합니다만, 세상에는 수많은 내가 있습니다.
저를 ‘솔’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지훈’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보는 저는 얼마나 같은 사람일까요. 저를 ‘312846’이라고 부르는 사람, ‘또리’라고 부르는 사람, ‘귤’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지나가는 행인 1’로 부르는 사람들에게 저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지난 1년, 제가 스스로를 성인이라 여겼던 시간은, 끊임없는 ‘나’의 재발견과 확장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연구자처럼 수많은 ‘나’를 개념 짓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주가 확장하듯 나는 계속하여 분열해 왔고…. 정답이 있을까요? 하루의 변덕으로 오늘은 지훈이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늘은 근사한 성년식입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말은 저에게는 독립된 인격으로서 누구든 될 수 있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더 넓어진 그리고 넓어질 세상에서 만날 새로운 내가 기대됩니다. ‘솔’이라는 이름은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이름 한가운데에는 태양 같은 사람으로 있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체리 이윤주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흩날리는 벚꽃은 체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단단한 체리의 과육처럼
누군가 꽉 쥐어도 물러터지지 않는
‘체리시(cherish)’라는 영단어처럼
나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내는
체리씨라고 불리는 사회적인 만남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고 탐스럽게
열리는 체리 열매처럼
벚꽃은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왜 약하고 떨어지기 쉬울까.
하소연하던 벚꽃은
어느새 체리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린 벚꽃잎이 하나둘씩
흐드러지게 길 위로 떨어집니다.
체리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다시 찬란하게 떨어지는
어린 시절을 잡아보려 하지만
역시나 잡힐 듯 말 듯
꽃잎은 손아귀를 스쳐 갑니다.
오월입니다.
가장 흐드러지고 찬란한 순간인
내 인생의 오월입니다.
벚꽃이 마구 흩날리고
새로운 체리 열매를 맺기 위해
푸르른 잎사귀가 돋아나는
오월입니다.
앞으로 더 단단한 체리를 맺는
여름의 계절이 와도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져
낙엽이 되어 떨어져도
눈송이 사이로 파묻히는
십이월이 되어도
체리의 인생은 모든 순간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커브 명찬영
열여덟, 저는 원동기 면허를 땄습니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면허증으로 작은 스쿠터를 타게 되었지요. 복잡한 서울시의 도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기도 하고, 뒤차는 빵빵대고, 만나는 커브 길마다 겁먹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운전을 이어갔습니다.
스쿠터 덕분에 많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하자센터에도 발이 닿게 되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하자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때의 기억은 저를 다시 이곳의 성년식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로도 커브 많은 인생에 이리저리 치였지만, 끝내 스물, 어쩌면 의미 있을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커브 길을 만나도 지레 겁먹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운전이 조금은 익숙해졌나 봅니다. 아직 어린 것 같지만 뭐가 됐든 지금은 여기까지 온 저를 축하해주려 합니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주민등록증을 들고 뛰어든 어른의 세상, 이번에도 왠지 쉽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제 곁의 고마운 사람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미워하기보단 사랑하면서 값지게 살아가겠습니다. 새로운 길에서 이번에도 재미있게 커브 길을 즐겨보겠습니다. 언젠가 이날을 돌아볼 우리가 그때도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총총 마칩니다.
할포 박늘찬
저는 거친 비바람을 부모님께서 막아주실 때는 몰랐습니다.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무섭고, 신기하고, 대단한 것을 어쩌면 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라며, 매일 밤 꿈을 꾸었습니다.
눈물로 지새운 날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헌신 아래, 저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인도해야 비로소 걷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아직도 서툴고 부족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죠. 힘들고 지치고 눈물이 나더라도,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 걸어가겠죠.
제가 바라는 것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겠죠.
그게 삶인가 봐요.
어느샌가 제 통장에 용돈이 아니라, 제가 번 돈이 생겼습니다.
가족에게 주고, 나에게 투자하는 소중한 돈. 내가 직접 벌어서 쓰는 값진 돈.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것들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겠죠.
눈물이 많고 사랑이 많아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사랑하는 아이 마냥, 아이 같은 저는 그래도 사람이 좋은가 봅니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저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느리지만,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우당탕탕 하겠지만, 잘 살아갈래요.
호두 박주현
어렸을 적에 저는 줄곧 미래의 어른이 된 제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항상 미래에 제가 멋진 어른이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애송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어른 중에는 가장 애송이인 나이가 되었습니다. 조금 이르지만 그래도 어릴 적 저에게 해주고픈 말이 생겼습니다.
“멋진 어른? 어림도 없지.”
반이 바뀌면 자연스레 친구가 말을 걸어주는 줄 알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레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하면 번듯한 직장이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길래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냥 모두가 악착같이 노력하며 살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어른은 되어 버렸는데, 난 그대로였으니까 무서웠습니다. 전 남들처럼 노력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뭐 어쩌겠습니까? 바뀌는 거는 없고 나는 성인이라는데, 떼쓸 수도 없고.
요즘 날씨가 너무 오락가락하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엄청 춥다가 다시 날이 맑아지면 또 더워지고 적당한 두께의 옷을 고르는 게 고비인 것 같습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추웠던 거 같은데, 너무 빠르게 변해 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도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물론 항상 멋진 어른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호야 서진희
인생이란 수많은 찰나의 연속에서 어느새 저는 20년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껏 저의 찰나들은 때론 찬란하고 반짝였으며, 때론 마구 흔들리고 아팠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항상 찬란할 수는 없기에 있는 아픔의 시간들은 아마도 제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위한 성장의 밑거름이었겠죠? 이 밑거름들을 양분 삼아 자란 저는 단단하기보단 유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구 부러지고 꺾이다 보니 단단함만이 정답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올곧음보단 부드러움을 선택한 저는 앞으로 마주칠 찰나들과 또 그 찰나를 함께하게 될 인연들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지만, 저의 부드러움이 찰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다가올 인연들에 다정이 되어 다가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애정하는 사람이 해줬던 말이 있는데요, “항상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행복의 연속이 지속돼서 힘든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찰나의 연속 속에서 많은 행복들이 지속되길, 그래서 조금 덜 아프고 더 기쁜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길 기도해 봅니다. 모두 행복한 오늘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