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그들의 To do list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5년 두 번째 하고 싶은 일-기는 <공유작업실 OOEO> 멤버 '연우'입니다. 2024년 하자 뉴미디어 인턴 1기로 활동했던 연우는 올해 본관 3층에 위치한 공유작업실 이용을 위해 매주 하자를 오가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행복이나 삶의 태도, 방향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연우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03년생 김연우, 하자 이름 ‘연우’입니다. 넓을 연(衍)에 도울 우(佑)자를 써서 ‘세상을 넓히고 사람을 도우라’는 뜻이에요. 요즘은 글자를 그리고 있고 시각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연우의 To do list
불꽃놀이 보기
바느질 배우기
국내 기차여행 가기
소설 완성하기
워터파크 가기
밴드 콘서트 가보기
콜렉티브 팀 만들기
매주 책읽기
독일어 배우기
공인영어 시험 보기
원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뉴욕 MOMA에서 전시하기
활동가로서 활동하기
심층 생태학 공부하기
iDM 음악 만들기
스튜디오 차리기
디제잉 공연하기
연미한 활자 그리기
유럽 여행 가기
비행기 타기
-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고등학생 때 뭐든 조립하거나 만드는 걸 하고 싶었어요. 인터넷에서 디자인이나 건축을 찾아봤는데 가장 정보가 많은 분야가 시각 디자인이었고, 잘 모르다 보니 포스터라든지 시각적인 매력을 주는 게 눈에 띄잖아요. ‘이런 거 하면서 돈 벌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했어요.
- 실제로 해보니 어떤가요?
예상한 대로 재밌어요. 삶이 많이 달라진 게, 전에는 행복이라는 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디자인을 하고 나서는 혼자 있어도 재밌는 게 생긴 느낌이에요. 작업할 때 시간이 잘 가고 공부도 재밌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좋아요.
- 디자인의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시각디자인을 간단히 말하면 소통하는 건데요. 소통의 수단은 다양하잖아요. 전에는 (하고 싶은 말을) 글이나 말로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그래픽적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고민하고 그걸 달성했을 때 얻는 쾌감이 있어요. 작업이 멋있게 나왔을 때의 쾌감도 있고요.
- 그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작업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잘한 건 모르겠지만 디자인을 해보면서 느끼는 건 잘하는 것 이상의 것은 개념적인 것 같아요. 개념적으로 잘 접근했다, 예를 들면 제가 최근에 어떤 갤러리의 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을 했거든요. 그때 ‘어떻게 하면 보다 함께 쓸 수 있는 웹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빠르고 효율적인 기술 대신 돌봄과 협력 중심의 느린 기술, 함께 다룰 수 있는 구조를 상상했고요.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라 함께 돌보고 자라나는 공간을 그리고 싶어서 그렇게 작업했는데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연우가 제작한 '포에버✰ 갤러리'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느림, 돌봄, 공동체를 키워드로 한 밭이 조성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작업실*에 와서 할 것들을 하는 것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주말에도 똑같고, 계속 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자보다 가까운 카페에서 작업할 수도 있을 텐데요.) 카페에 가면 사람이 많을 때도 있잖아요. 환경을 바꿔가며 적응하는 게 불편하고 또 하자는 무료라 좋아요.
*공유작업실 OOEO: 시각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청소년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하자센터의 작업실
✔ To do list : 소설 완성하기
지금 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는 ‘엉킨’, ‘키뮤’랑 세 명이서 릴레이 소설을 쓰고 있어요. 셋이 나란히 붙어 있는 자리를 써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러다 '우리 글 한 번 써볼까?' 하게 됐죠.
공유작업실에서의 연우
- 취미나 좋아하는 일이 있나요?
취미가 딱히 없어서 보통 디자인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려고 하는 디자인은 기술을 많이 알아봐야 해서 디자인을 하다 지치면 기술을 보고, 기술을 보다 지치면 디자인을 합니다. (어떤 기술이에요?) 저는 외부에서 ‘무빙웹(movingweb)’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거의 웹이나 인터랙션 관련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거든요. 그와 관련된 기술을 보고 있어요.
-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업자가 있을까요?
디자이너 중에 슬기와 민, 이용제 디자이너, 김기창 디자이너를 좋아해요. 모두 제가 배움을 받았던 교수님들이시고 그분들의 작업 이야기가 재밌어요. 특히 슬기와 민의 디자인은 개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놀라울 정도로 재밌어서 많은 영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 삶의 모토가 있다면요?
방금 그 세 분처럼 인생을 살자. 그분들을 보면 디자인이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런 삶을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해요.
- 재밌네요. 그동안의 작업 중에 가장 연우와 닮은 작업은 무엇일까요?
작업은 저의 일부를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인물을 그리면 (그린 사람을) 닮는다고 하잖아요. 지금 그리고 있는 활자가 저랑 닮아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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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인 활자
보통 활자를 디자인할 때는 글씨를 잘 쓴 사람의 형태를 본받아서 만들어요. 그래서 이 활자는 최정호의 ‘삼화인쇄소’라는 활자의 뼈대를 쓰고 있어요. 뼈대가 있으면 살을 붙여야 하잖아요, 살은 <동국정운>*이라는 옛 책에 나오는 모양을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고요. 한자의 형태를 붙인다기보다는 제가 한자를 어떻게 해석했고 또 어떻게 붙일 것인가에 대한 포착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갑인자’(<동국정운>에 나오는 한자)의 부드러움을 최대한 포착하려고 했고, 획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약간의 예리함을 보려 하고 있어요. 부드러운 인상을 띄려고, 연미해*지려고 해요. 그게 저와 닮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사람들과 최대한 부드럽게 지내려고 하고, 연미함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동국정운: 1448년 세종의 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행된 운서(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미하다: 부드럽고 아리땁다(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 To do list : 연미한 활자 그리기
‘연미하다’는 건 무엇인지 찾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활자를 그리고 있어요. 어떤 글이 아름다워 보일 때 왜 아름다울까를 생각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 연우의 삶에 중요한 것을 세 가지만 꼽아보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가족이에요. 제가 가족 안에서 태어났으니까 가족은 저를 기반하는 것 같거든요. 큰 이유는 없어도 내가 행복할 때 옆에 누가 있어야 한다면 가족이 떠올라서 중요한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디자인이요. 제가 디자인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시작하고 바뀐 게 많아요. 가치관도 생겼고 무언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이전 사람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했다고 느껴요.
마지막은 ‘잘 사는 법’이에요. 최근에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공통된 테마가 잘 사는 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우리가 지속가능하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모두의 관점으로 살 것인가. 그런 걸 읽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해방감을 얻기도 해요. 기술의 빠른 발전이나 돈, 이런 것 외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저항’이라는 말이 비슷하다고 느끼는데요. 고등학생 때나 스무 살 무렵에는 ‘사람들은 왜 세상에 불만이 많을까?’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저항은 단순히 무언가를 싫어한다기보다 잘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 To do list : 활동가로서 활동하기
최근에 난민 인권 운동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이게 디자인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디자이너가 소통하는 사람이라면 꼭 시각적일 필요는 없고 활동으로 소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요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어떻게 시각 디자이너로서 존재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제가 하는 작업은 상업 디자인과는 멀어지려고 하는 방향성이 있는 것 같아서요. 대량으로 찍어내고 버려지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그러면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연우의 작업
- 그럼 올해 계획이나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더 먼 미래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올해는 제가 그리고 있는 글자의 버전 1을 완성하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하자는 목표도 있어요. 디지털 매체 작업을 하다 보면 계속 새로운 게 생기고 전에 있던 것도 많아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 To do list : 뉴욕 MOMA에서 전시하기
그 정도로 큰 곳에서 한 번 전시해 보고 싶어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요?’라고 질문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이 질문이 가장 맞을 것 같아서요. (연우는 어떻게 살고 싶어요?)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 차려서 살고 싶어요.
✔ To do list : 스튜디오 차리기
이것도 꿈인데. 마흔 정도 되었을 때 작은 스튜디오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디자인과 예술 둘 다 하는 스튜디오면 좋겠고요. (지금이 아니라 마흔쯤에 차리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요즘 끊임없이 배우는 게 젊게 사는 방법이라고 느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배움을 얻을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고요.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개인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일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회사, 오래 유지된 회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그곳의 환경을 배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