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하자의 일일직업체험 프로젝트가 청소년 진로역량 강화 프로젝트로 바뀌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새로운 버전의 프로젝트 이름은 “비커밍 프로젝트”입니다. 비커밍 프로젝트의 프로그램들을 쭉 살펴보면 눈치 채시겠지만, 특정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수업이 많습니다.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제작물 또는 완성품의 형태로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결과물은 수업에 집중하기보다 결과를 내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자의 파트너 강사와 비커밍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청소년의 만남 자체가 프로젝트의 큰 의미이기 때문에 결과물에 집중하기보다는 만남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일직업체험을 비커밍 프로젝트로 바꿔나가면서 신경 써서 고민했던 것은 어떤 매체를 만날 수 있는지, 어떤 기술을 배울 수 있는지 보다 “청소년과 파트너 강사가 어떤 소통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함께하는 시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지”였던 것 같아요.
비커밍 프로젝트에는 ‘동물 없는 동물 수업’이 있었습니다. 함께 살기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동물과 함께 살기 <생명 talk>’ 수업입니다. 이 수업을 맡아 하반기 내내 청소년을 만났던 강사 ’소진‘의 이야기를 이번 뉴스레터에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4년 전, 겨울에 길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손바닥만큼 작아서 처음에는 쥐인 줄 알았어요. 추운데 괜찮을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어려운데 무슨 참견이야. 라고 생각하며 못 본 척 가던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아기 고양이가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곧장 저에게로 걸어와 힘차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날 그 고양이를 저희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한라산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동물과 함께 살게 되며 가장 난감했던 것은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에 ‘고양이 언어’ 같은 것들을 검색해보았지만 꼬리나 귀의 위치로 설명하는 감정의 규칙들은 실용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다르듯이, 동물들 역시 하나하나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듣는 몸’이 준비되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은 편리하지만 참 무디기도 한 것 같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듣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동물과 관계를 맺는 것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비언어적 소통 방식을 연습하다보면 훨씬 더 많은 존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오래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엄마와 말이 아닌 몸으로 대화했을 때가 있으니까요.
이 수업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대화의 방법들을 나누려고 했습니다. 언어 이전의 목소리, 제스처 이전의 몸짓들을 다시 생각해보며 각자의 몸이 어떤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존재에게 전하는지 살펴보고요, 생명을 가진 존재로써 다른 생명들과 함께 가지고 가야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 했습니다.
비커밍 프로젝트 '생명 talk' 수업 중
2. 수업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어땠나요?
처음 놀랐던 것은 제가 만난 청소년들이 몸을 정말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에요. 팔로 땅바닥을 짚는 움직임을 했을 때 무게 중심을 잘 옮기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학교 체육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체형도 상당히 비슷했는데 대부분 어께와 목이 굽어있고 다리가 X나 O의 형태, 그리고 발의 아치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청소년이 80%이상이라는 것에서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피로를 호소하는 청소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반대로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청소년들 사이에 엄청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속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다가, 일단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활동을 정말 신기한 놀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너무 신이 나서 멈추지 않으려고 하는 것..... ㅎㅎ;;
몸의 움직임, 몸의 놀이를 이색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신기했고, 그 체험에 대한 친구들의 리뷰와 평가도 상당히 낯선 언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들 촉각적인 체험에 목말라있는 것 같아요. 스킨십을 너무나 좋아하고, 무언가를 만지거나 접촉하는 활동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비커밍 프로젝트 '생명 talk' 수업 중
3. 청소년들을 통해서 배우거나 힌트를 얻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솔직하다는 것, 정말 온 몸으로 말한다는 것이에요. 몸으로 말하기는 제가 청소년들에게 가르칠 부분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저에게 알려줄 부분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혼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더 놀고 싶을 땐 끝까지 놀고, 싫으면 표정에 드러나고, 화가 나니까 화를 내는 그 다양한 표현들이 단점 보다는 훌륭한 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가상공간에 익숙해져있다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들보다는 훨씬 더 몸 적인 소통방식에 있어 자유롭고 타인과의 교감에 있어 훨씬 더 직관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청소년들이 훨씬 더 예민하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비커밍 프로젝트 '생명 talk' 수업 중
4.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에게 어떤 지원(교육시스템, 사회분위기, 자원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청소년들의 폭력성, 잔인함, 성적 욕구, 움직이고 싶은 욕구들이 쉽게 가치판단 되거나 금기시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어떤 폭력성들은 몸의 활동을 통해 쉽게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업 초반에는 중학생들과, 학교의 분위기가 궁금해서 오리엔테이션에 자주 참석했었는데요. 청소년끼리 손장난을 하거나 바닥을 두드리거나, 크게 소리를 내거나, 친구의 손을 잡았을 때 선생님이 엄격하게 혼내는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무언가를 갈기갈기 찢고 싶거나, 내 목소리를 내고 싶거나, 타인과의 접촉을 원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본능들인데, 그것이 금기되는 순간 더 폭력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 같아요.
살아있다는 것은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고, 맛보고, 체험하는 일인데 그런 욕구가 가장 충만한 청소년기에 어떤 감각을 끊임없이 죽이고, 숨겨야 한다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요. 실제로 그들이 요구받는 만큼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있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욕구와 감각을 말 그대로 ‘죽여야’하기 때문에, 감각에 둔해지고, 스스로의 생명성에도 무뎌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 고통을 예민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정, 고통에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학교의 분위기가 좋고,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가 수평적일수록 청소년들이 남녀 상관없이 손을 잡거나 등을 맞대고, 혹은 서로의 무게를 견뎌보는 활동들을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어요. 자신의 생명과 감각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교의 분위기가 엄격하거나, 선생님이 앉아있는 아이들을 발로 치며 혼내는 학교에서는 청소년끼리도 ‘나대지 말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요. 뛰고 싶고, 말하고 싶고, 타인에게 호기심을 갖는 자신의 욕구를 투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신다면?
한 학기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저에게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매주 청소년들에게 좋은 에너지 받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