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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청년의 미래를 고민하다
<저성장 위험사회 전환도시와 청년연구: ‘각자도생’ 생존사회에서 공생/재생사회로> 연구팀의 일본 답사기
최근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청년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지옥이라는 것이지요.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지옥’에서 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탈조선’입니다. 물론 이는 이민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탈조선’ 해봤자 또 다른 인종차별과 소외,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미래를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소위 ‘금수저’를 물고 나오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옥과 같다는 과격한 표현에 현재의 청년들은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하자센터-서울연구원 공동연구 <저성장 위험사회 전환도시와 청년연구 : ‘각자도생’ 사회에서 공생/재생 사회로>라는 긴 제목의 연구팀 * 은 청년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회·정치적 맥락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과격화된 청년들의 마음 상태를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즉 청년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세대론, 일베, 헬조선, 여성혐오 등)에 대한 분석과 함께, 청년들과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과격화된 마음 상태를 불러일으킨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의 다양한 맥락들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 과정을 통해 현재 주로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청년정책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성을 제안하면서, 너무 많이 경험하여 소진되어 버린 채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그리고 사회적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불신하거나 혐오하는 과격한 청년들의 마음 상태를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공공성의 개념을 강조하려 합니다.
이러한 청년들의 과격화는 단지 한국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위험사회’라는 전 지구적 현상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에는 국가 차원에서의 노력과 함께 전 세계적인 공통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조한, 기호, 시스, 거품, 바른돌 이렇게 다섯 명의 연구팀은 6월 26일부터 7월 2일까지 일주일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현지조사를 다녀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사카 인권박물관에서 DMN 연구회의 주최로 진행되었던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빈곤과 과격화를 생각하다> 공개 세미나의 작은 스케치입니다.
우선 조한은 글로벌 위험사회의 맥락에서 전 세계 청년연구 관련 교류의 중요성에 대한 발표를 해 주셨습니다. 저출산 노령화, 급증하는 1인 가구라는 한국 인구 구조의 변동 아래에 놓인 청년 세대의 위기, 고용 없는 성장과 지속불가능성 아래 자신의 삶을 기획할 수 없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 압축적 근대화와 불균등발전의 맥락 아래 벌어진 청년 실망과 생존주의를 살아가는 전략으로서의 각자도생과 관련된 문제들을 차례로 언급하셨습니다. 이런 한국 청년문제들은 단지 한국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닌, 현대 자본주의의 불안과 위기라는 글로벌 차원에서의 위험사회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로벌 위험사회 아래에서 그 위험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존재가 바로 청년이기에, 청년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의 해법을 위한 움직임은 글로벌한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기호의 발표는 한국 청년들이 무엇을 포기했는지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했습니다. ‘3포 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면, ‘5포 세대’는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고, 이윽고 현재 회자되고 있는 ‘7포 세대’는 여기에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기호는 ‘관계’를 포기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맥락에서 청년들은 ‘연애와 사랑’을 포기하게 되며, 결국 이는 생애사적 기획의 불가능과 실패를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평균’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자포자기가 현재 청년들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지요. 근대적 생애 시나리오(고졸-대졸-취업-결혼-내 집 마련…)은 이미 붕괴되었지만 이러한 시나리오 자체가 삶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이러한 ‘평균적 삶’에 다다르지 못한 인생은 ‘실패’한 것이 됩니다. 또한 이 실패의 원인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 부족일 뿐입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생애사적 기획의 불가능성에 대해 네 가지 대응방식을 갖추게 되는데요, 이는 아래 그림과 같이 표현됩니다. **
마침 일본은 <에반게리온>의 남자 주인공 신지가 처음으로 에반게리온에 탑승한 날(극 중 2015년 6월 22일)의 분위기 때문에 기호의 발표는 일본의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신지가 에반게리온에 탑승한 그 순간을 ‘신세기(Neo-Genesis)’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 역시 모든 것을 ‘리셋’시켜 신화를 현실화화려는 과격화된 마음이 청년들 사이에서 일반화 되어버린 것입니다(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10년 전 일본은 이미 이러한 과격화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흥미로운 문화적 현상이었던 <에반게리온>이 10년 후 실제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도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의 연구자들 역시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기호의 발표 이후, 한국 과격화의 양상으로서 ‘일베’를 분석하는 바른돌(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입니다), 시스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 둘은 일베 안에서의 세대구조에 주목했습니다.
바른돌은 청년들이 가진 한국 386/486 세대 혐오 정서에 대한 사회경제적 맥락을 분석했습니다. 소위 ‘민주정부’ 시절에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청년들이, 실제 취업을 할 청년 세대가 되었을 때 맞닥뜨린 수많은 사회적 장벽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이러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낸 ‘87년 체제’의 주역, 386/486 세대들에게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분노는 단지 이들 세대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향하게 됩니다.
시스는 이러한 일베 내에서의 세대감정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끌어낸 386/486세대 역시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빠르게 속물화되었으나, 이에 대한 반성 없이 아랫세대들에게 계속 ‘진정성’을 강조하는 위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특히 이는 일베뿐만 아니라, 386 이후 등장한 세대들이 느끼는 보편적 세대감정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발표가 이어지고 나서, 일본 연구자들은 사뭇 진지하게 경청하면서도 일본과의 차이점을 드러내려 노력했습니다. 이를테면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보다는 여전히 ‘정규직’이 많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여전히 기업에서 대학 졸업생들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최근 일본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점을 반영해서인 듯, 기업들의 일자리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에서의 문제는 이렇게 ‘정규직’으로 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자체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임금은 매우 적게 주지만, 노동시간과 업무의 강도는 매우 센 일본의 고용시장의 특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삶의 곤궁함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은 ‘아웃소싱’, 즉 직업을 구해주는 대행업체가 매우 활성화되어있기 때문에, 취업으로 이르는 길이 한국보다는 수월하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아웃소싱의 구조 역시 저임금을 정당화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기는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구조가 ‘사토리(달관) 세대’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관점의 차이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한국은 비정규직이 이미 일반화되어버렸기 때문에, ‘달관’하기 더욱 어렵고 불안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다면, 일본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규직의 가능성이 그나마 더 열려 있기 때문에, 저임금노동에 대해 훨씬 ‘달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일본의 발표자는 일본 ‘블랙기업’의 현황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저임금 착취노동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정규직으로 취직을 해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일본 청년들에 대한 사례 발표를 들으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제안된 정책/입법운동에 대해서 우리 연구진들은 몇 가지 추가 코멘트(?)를 해 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알바노조’와 ‘청년유니온’의 사례를 제안하며, 특히 최근 알바노조의 맥도날드 기습 점거 시위를 소개하면서, 실제적인 ‘직접 행동’이 때로는 정책을 바꾸는 현실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조금은 딱딱한 포럼 중심으로 글을 썼지만, 이후 이어진 일본 연구자들과의 교류활동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오사카와 도쿄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청년들의 공간들을 탐색하며, 또한 한국과는 또 다른 일본의 도시문화를 맛보면서 연구진은 한일 청년문제의 해법을 위한 심층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일본과의 비교연구는 향후에도 매우 중요한 참조 지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며, 가능하다면 2년차 연구에도 반영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앞으로의 연구의 진행 및 내용은 오는 9월 중 열릴 제7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에서도 소개가 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2013년 서울시 “비진학청소년 실태조사연구”를 시작으로 연구팀(조한, 기호, 올제, 바른돌, 거품, 이서, 한나)이 구성되었고, 이어서 청소년을 비롯하여 전사회적으로 과격화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청소년들의 미래인 청년연구를 새롭게 연구팀(조한, 기호, 거품, 바른돌, 시스, 아키, 은교)을 구성하여 시작하였습니다.
** 이 도표는 본 연구의 책임연구원인 기호가 트위터 유저 쓺(@ssuerm)님의 트윗에서 전체적인 구도를 가져온 것입니다. 출처 인용을 허락해주신 쓺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글_ 강정석(바른돌,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 전 하자센터 판돌)
<저성장 위험사회 전환도시와 청년연구 -‘ 각자도생’ 생존사회에서 공생/재생 사회로> 포럼 진행 경과
-1차 오프닝 포럼 <각자도생 사회의 감정의 구조> 2015년 4월 22일, 청년허브
발제: “저성장 위험사회 시대읽기”(조한혜정/공동연구책임자), “서바이벌, 생존주의와 마음의 과격화” (김홍중/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청년세대의 불안과 생존조건“ (서민정/청년허브 센터장), ”인구쇼크, 청년이 사라진다“ (이윤정/KBS PD)
-2차 오프닝 포럼 <한국청년들의 감정의 시공간 연구>
발제: “생존주의를 넘어서”(엄기호/공동연구책임자), “일베를 통해 본 청년들의 적대” (김학준/서울대)
-3차 오프닝 포럼 <저성장 사회의 청년 문화연구 Ⅰ> 2015년 5월 20일, 하자센터
발제: “잉여 청년 문화와 시간성의 문제” (모현주/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무중력 시대 시간성과 삶의 서사” (이충한/유유자적 살롱 대표)
-4차 오프닝 포럼 <저성장 사회의 청년 문화연구 Ⅱ> 2015년 5월 27일, 하자센터
발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와 어학연수를 떠난 청년들” (우승현/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인도요가 수련여행을 떠난 청년들” (이민영/서울대 문화인류학), “글로벌 빈곤의 퇴마사들”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