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최애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직원이 자리에 앉으려는데 남는 테이블이 없었다며 환불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런 건 진작 말해줬어야죠.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는 말을 삼키고 포장할게요, 대답했다.
루꼴라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양손에 들고나와 걸었다. 오다가다 보았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먹을 생각이었다. 정오를 막 지난 오월의 볕은 그야말로 따사로웠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보사노바풍 재즈를 들으면 정말이지 완벽할 것 같았다. 점퍼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이어폰을 찾기 위해 커피를 팔 안쪽에 끼고 주머니를 뒤졌다. 이어폰은 없었다. 챙겨 나올걸. 플라스틱 용기가 기울며 커피가 샜다. 얼룩진 옷에서 커피 향이 솔솔 났다.
조금씩 어긋나는 지점 중 무엇에서, 아니 대체 어디에서부터 쌓인 화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북적이는 가게 안을 돌아보다가 바닥에 침을 툭 뱉었다. 길바닥에 침을 뱉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다음 달에는 작업실 짐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을 만드는 일 따위 지겨웠다. 작업 공간 좀 마련하겠다고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는 대신 알바를 전전하는 것 역시 그랬다. 미미한 인정이나 그보다 더 미미한 관심을 갈구하다가 완전히 말라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사니까 바닥에 침이나 뱉지. 즐겁지가 않으니까 침을 뱉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행운인 것은 우중충한 빗속이 아니라 햇볕 아래에서 포기를 결심했다는 점일지도 몰랐다.
공원은 크지 않았다. 양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서면 얼추 맞아떨어지는 간격의 좁은 길목에 좌우로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벤치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놀이터와 가장 가까운 안쪽 벤치에는 할아버지 둘이 앉아 뭘 들여다보고 있었다. 장기판이었다. 나는 입구 가까이 바깥 벤치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루꼴라 샌드위치 속에는 치즈 한 장이 얇은 햄 위로 녹아 있었다. 침이 고였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셔 입을 적셨다. 샌드위치를 베어 물자 통밀빵이 바삭바삭 부서졌다. 빵은 질깃하고 고소했다. 루꼴라와 햄을 씹으며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벤치에 뭔가가 하나씩 툭툭 떨어지는가 싶더니 새들이 나무 위에서 퍼덕이고 있었다. 그제야 포르르거리는 날갯짓과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열매꼭지 같기도, 나무껍질 같기도 한 것이 자꾸만 떨어졌다. 샌드위치 위로 앉을까 봐 그는 나무가 드리우는 자리로부터 먼 벤치 끝에 바싹 붙어 앉았다.
한 할머니가 저 멀리서부터 보라색 조끼를 입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너무 이쪽을 보면서 다가와서 그는 할머니가 공원으로 들어와 자신의 바로 앞 벤치에 앉는 과정을 의식하게 되었다. 공원에서 샌드위치 먹는 게 이상해 보일 일은 아니었지만, 마주 본 벤치 사이의 간격이 더 넓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떨어져 먹을 다른 자리는 없나, 놀이터를 힐끔 둘러보는데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렸다. 너어는 알리라-
어허- 내 마음 벼얼과 같이- 저 하늘 벼얼이 되어-
할머니가 무릎을 타악- 타악-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목청이 워낙 커서 안쪽 벤치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들도 이쪽을 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 할머니를 보다가 할아버지들을 보았다. 할아버지들은 노래를 시작한 할머니를 보다가 뭐라고 말하고는 허허, 웃었다. 그때 저쪽에서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또 공원으로 들어왔다. 중절모 할아버지가 다가와도 할머니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노래를 계속 이어 나갔다.
감기 다 나았는갑서. 할아버지가 할머니 목청만큼 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이.
할머니는 노래를 잠깐 끊고 노래 부르던 성량 그대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황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공원에 있는 모두가 갑자기 시작된 노래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모른 체 하지 않았다. 시끄럽다며 중단시킬 분위기 또한 전혀 아니었다. 할머니는 트로트로 추정되는 노래를 몇 곡 더 불렀다. 그는 절절히 울리는 바이브레이션을 들으며 질긴 빵을 앞니로 콱콱 뜯어먹고 어금니로 꼭꼭 씹었다. 빵 부스러기가 입가와 무릎에 떨어져 계속 털어야 냈다. 보사노바··· 아까까지만 해도 햇볕에서 보사노바가 흐를 것 같았는데 지금은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싹 씻겨 내려간 뒤였다. 이어폰을 가져왔다면 귀에 흘렀을 노래는 할머니가 라이브로 뽑아내는 가락에 맥없이 밀려났다.
어, 날이 좋네. 중절모 할아버지는 내내 웃는 얼굴로 보라 조끼 할머니가 곡을 바꿀 때마다 한 마디씩 옆에서 말을 걸었다. 어쩐지 뮤지컬 같기도 했다.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두 주인공의 뮤지컬. 그런데 할머니는 중절모 할아버지의 말에 정말 대충 대꾸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짝사랑의 현장인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주목할 관객이 필요하고 할아버지는 말을 걸 상대가 필요한 거라면 저 둘은 저대로 충분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마지막으로 가게에서 끼워준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샌드위치 포장 상자에 쓰레기를 넣고 한 손에는 절반 남아 찰랑이는 아메리카노를 들었다. 플라스틱 컵에 맺힌 결로가 몇 방울 떨어졌다. 샌드위치는 평소처럼 맛있었다. 처음 작업실을 구하고 근처에서 먹은 첫 음식도 저 샌드위치 가게에서 파는 루꼴라 샌드위치였다.
다음 주에 뮤지컬 볼까. 그는 조금 전 결심한 포기를 잠시 잊고 다시 오월의 볕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글_ 운(하자글방 죽돌)
디자인_ 물고기(하자글방 죽돌)
2023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은는이가〉는 구성원의 변화를 앞두고 그간의 활동을 기념하고자 진(zine)을 쓰고 엮었습니다. 『닿은 마음이 쓰는 우리가』(줄여서 은는이가)라는 제목처럼, 독자의 두 손에 닿기까지 〈은는이가〉의 우정 어린 글쓰기의 여정이 담긴 진은 손수 한 땀 한 땀 제작되었습니다. 글쓰기 공동체로서 죽돌이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리며 만든 작지만 큰 세계입니다. ‘From. 하자글방’에서는 진에 실린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