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의 글감은 “사실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짓기입니다. 어떤 사실과 거짓, 꿈과 망상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1월의 글감 아이디어를 지난해 읽었던 책에서 얻었어요. 얇디얇은 표지를 넘기면 <사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자전적인 에피소드 (그러나 허상도 묻어있는...) 글들이 나오는데 작가가 경험했던 것들이 제가 경험했던 상황, 공간과 닮거나 같은 점이 많아서 흠뻑 빠져든 기억이 있어요.
그 책을 읽으며 "사실 나는"이라는 작은 문장이 얼마나 몰입하게 할 수 있었는지를 경험했던지라 글방에 꼭 가져와 여러분의 문장을 엿보고 싶었답니다. 그럼, 글을 마치며 1월 글방 글감을 활용한 여러분의 문장들을 기다릴게요!
:: 글_ 예킨(하자글방 죽돌)
사실 나는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만나는 그 순간, 세상이 어떻게든 얼렁뚱땅 돌아가는 장면을 마주친 순간에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어느 날은 두 친구로부터 온 엽서를 받았다. 그러니까 이날은 참 신기한 날이었다. 12월이 시작할 무렵 지구 건너편에 있는 한 친구가 엽서를 보냈다고 했다. 그 후 바다 건너편 친구는 신년 맞이(일본은 전통이라고 한다!)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엽서를 받는 입장에서 혹은 엽서를 보내는 입장에서도 그 엽서가 주인을 잘 찾아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이 저 멀리서 하늘과 바다를 건너 한 사람 앞으로 온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테니.
매번 기대를 하며 우편함을 슬쩍 보며 지나쳤다. 1월이 되도록 오지 않았고 ‘음... 하늘에서 길을 잃었겠군’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빠의 부탁으로 직접 우편물을 수령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서류이길래 대면으로 전달받아야 하는지 사소한 불만을 가지며 아침에 겨우 일어나 문을 열었다. 우체부 아저씨께 이름을 말하니 아저씨는 “숲? 혹시 외국에서 주소를 잘못 쓴 우편물 두 개 있지 않아요?”라고 하셨다. 물론 나는 모른다. 주소를 쓴 것은 내가 아니니. 혹시나 싶어서 “아마 그럴 거예요”라고 했다. 아저씨께서는 본인이 두 가지 모두 보관하고 계신다며 지금 당장은 없고, 이틀 뒤인 목요일에 우편함에 넣어주겠다고 하셨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목요일에 들뜬 마음으로 우편함을 확인해 보니 우편물 두 개가 꽂혀있었다.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왔다. 하나는 캘리포니아 사진이 있는 엽서만 덜렁, 다른 하나는 푸른 겉봉투에 봉인되어 왔다. 하나는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뜨린 글이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이제 학업도 마치고 이제 일자리를 구하고 있으니 이 밝은 에너지를 함께 나누자는 짤막한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께 보내왔던 지난 시간들과 안부를 묻는 글이었다. 별 내용은 아니었지만 멀리서 날아온 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 수고로움을 해주었다는 친구에게 감사하며, 둘 다 참 글씨를 못 쓴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문득 주소를 어떻게 잘못 썼길래 나한테 오지 못했던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올해 초에 독일에 있었던 친구와 주고받은 엽서를 살펴보았다. 아! 동과 호수를 빼먹었지 뭐람! 우체부 아저씨는 어떻게 내 이름만 듣고 그 수많은 세대수를 가진 아파트에서 찾아낸 것일까.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우연이 만나 우리가 서로를 만난 것일까.
반대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편지가 내게는 많이 있다. 때를 놓쳐서, 편지를 마무리하지 못해서 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한 편지들은 내 새 편지지들과 편지함에 질서 없이 섞여 있다. 하루는 펜팔 행사를 진행을 위해 새 편지지들이 필요했었다. 집에 쉬고 있는 편지지들을 긁어모아 가져갔다. 행사는 원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저 2022년 숲이 지원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져왔는데…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요…?
행사에 2년 전에 썼던 편지를 새 편지지와 함께 들고 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 편지를 집어간 것이다. 익명의 상태에서 주고받아야 했던 편지에 명확한 발신인과 수신인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구체적인 일화가 적혀있었던 것이다. 마침 지원도 이 행사에 있었고 이 사실을 지원에게 알렸다. 언제 전달될지, 전달될지조차 몰랐던 편지가 그렇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얼렁뚱땅 흘러가는 것만 같은 삶을 지켜보는 것이 퍽이나 재미있다.
:: 글 · 사진_ 숲(하자글방 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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