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2월의 글감은 ‘영감과 힘’입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추천사를 보고 떠올리게 된 글감입니다. 글을 쓰게 만드는 만남.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의 글에도 그러한 만남이 있을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제가 헤매이던 책장 속 책들 역시 수많은 만남이었다는 걸요. 사람과의 만남뿐 아니라 어떤 순간과의, 어떤 물건과의 만남일 수도 있겠죠. 이상하게 평소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 만남일 수도 있겠네요. 글방 동료들을 움직이는 것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해낼 영감과 힘을 받는 순간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 하자글방 죽돌 물고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버스를 탔다. 그날따라 너무 피곤해서 언제나 어디서 내려야 할지 신경을 곤두세워 두리번거리던 버스 안에서 쪽잠에 들을 정도였다. 버스에 내려 내 눌린 볼자국과는 달리 매끈한 친구의 얼굴을 보며 왠지 모를 민망함에 “이따 볼 공연에서 잠들면 어쩌지- 그럼 가 꼭 깨워줘-" 하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눈은 감기고 들어간 공연장은 따뜻하고 마음이 풀리는 친구가 옆에 있다. 심지어 이 공연에는 긴 암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암전이 있던 공연마다 어김없이 정신을 잃었던 나는 진심으로 잠들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빈 객석이 하나 둘 채워지고 나 역시 몸을 감아오는 푹신한 의자에 기댔다. 적당함. 잠에 들기 딱 좋은 적당함이었다.
쿵, 쿵, 쿵, 쿵. 극장의 불이 꺼지고 크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건지, 아주 설레고 있는 건지 모를 빠른 심장소리가.. 그 박동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 잠에 취한 심장마저 조이듯 크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리는 파도.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알 수 없는 암전 속에서 심장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두근거리는 나의 심장을 다시 알아차렸다. 평소에는 존재를 실감할 수 없는 나의 심장이 어떻게 뛰고 생명을 움직이고 있는지.. 어떻게 삶이 지속되는지..
어둠 속 한 줄기 핀 라이트가 떨어지고 그곳에는 텅 빈 무대에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 그리고 한 여자가 서 있었다.
…
막이 내려가고 극장이 떠나가라 울리는 박수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헐떡이는 밭은 숨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그건 마치 일종의 상실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와의 연결이 끊어진 것을 알고 온 힘을 다해 우는 울음 같았다. 공연 내내 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도당하는 에너지에 두 손을 하얗게 질리도록 꼭 부여잡고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어쩐지 힘이 쭉 빠져서 다른 이들이 모두 물밀듯 나가는 극장에 앉아 내가 방금 목격한 믿기지 않은 시공간을 곱씹었다. 할 말을 잃고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꼭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
극장을 빠져나와 길을 걸으며 생명을-인생을-삶을 생각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멈추지 않는 물방울들은 물길을 만들며 떨어진다. 삶과 죽음, 생명과 인생, 타인과 나. 이 세상과 내가 분리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새로이 태어나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은 이 충격을 이 글을 읽은 분들 또한 온전히 경험하길 바라기 때문에 극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은 예술은 정말 인생을 바꾼다는 것… 아직도 이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언제나 이런 눈물 나게 멋진 것들이 나를 또다시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랑하게 만든다. 나의 힘 나의 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