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말하기의 시간은 그러므로 일종의 비평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인의 내밀한 글을 읽어내는 것은 평가가 아니라 독해였다. 독해를 위해서는 기존의 ‘잘 쓴 글’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생략된 맥락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에 ‘우정’이라는 이름을 감히 붙여도 될까? 기꺼이 오해를 감수하고 글을 내놓는 것, 부끄러운 글도 성심성의껏 품을 들여 읽는 것, 헐거운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주는 이 지지부진하고도 기진맥진 넋이 나가는 일을 감히 ‘우정’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서로의 글을 돌보고 모르는 채로 함께하기를 택한 그 비평의 시간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우정’을 나눴다고 말하고 싶다.
- 가을 하자글방 죽돌 ‘사라’ <쓰기의 (불)가능성 - 글방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중 일부
여러분은 토요일 오후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께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는 뺏기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빴던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주말의 첫 오후이기 때문이지요. 이때는 친구들을 만나 놀거나, 밀려 있던 청소를 하고 낮잠을 자거나, 몰입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세계를 발견하고 나를 돌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지죠. 이러한 소중한 시간에 매주 하자센터로 오겠다고 약속한 죽돌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을 하자글방 죽돌들인데요. 9월 9일부터 11월 11일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성실히 글을 쓰고 읽고 합평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우정’이라 부릅니다.
가을 하자글방에서 작성한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습니다. 글방이 진행될 수록 불씨가 붙는 것처럼 대화가 더욱 풍성해지는 모습을 담아 문집 제목은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의 발화>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회차에는 동명의 쇼하자(활동공유회)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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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하자에서는 그동안 하자글방에서 작성한 글 중 하나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에게로 향하는 글에는 생생함이 가득했는데요. 아래에 죽돌 ‘물고기’가 낭독한 글을 남겨봅니다. 내년에도 하자글방에서 자유롭고 다채로운 쓰기가 이어지기를, 우정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때에는 그저 이야기만이 존재했다. 아름다움을 목격했을 때, 안온함을 만끽할 때, 혹은 침대에 붙어 햇살을 느끼며 누워있을 때면 나는 없고 장면만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느꼈다.
글을 쓸 때는 달랐다. 나의 몸 하나하나를 들여보고 곳곳에 붙어있는 감각을 찾아야 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은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글에 녹아 나오고 있는 게 불안해서... 나의 이야기, 그니까 ‘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려워서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 본 일은 거의 없었다. 관계도 똑같았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그 무엇도 자세히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나를 드러내는 것은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순간과 이야기를 나 혼자 감당하려고 했었다.
글방에서 글을 쓰고 같이 읽으며,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왜 쓰는지, 왜 사랑하는지, 어떤 것을, 어떤 표정을 사랑하는지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순간들을 세어보며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이와 나눴던 달콤한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에는 시간이 겹겹이 쌓여 빛을 잃었지만, 이야기는 아직 남아 빛나고 있었다.
문득 사랑과 글 쓰는 것이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문을 열어 나의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가장 추악한 마음까지 드러나게 쓰는 것. 그 두 개 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 둘을 모두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아직도 좋은 글을, 좋은 사랑을 하는 법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각자 자신만의 사랑법이, 자신만의 쓰는 방식이 있는 것을 배운다.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마음과 목소리를 나누며 보낸 모든 시간들에 감사하며 아직 문을 다 열지 못한 나의 미숙한 사랑 방식을 견뎌준 모든 이들과, 여물지 않은 글들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 준 글방 동료들, 푸른, 이끼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