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칼럼] ‘포스트 386 세대’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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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들도 이제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디테일에 대한 감각으로 정교한 작업을 해낼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고 그 아래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와 협업 가능한 세대도 바로 이들이다. 이 세대가 자리를 잡으면 386세대와 아랫세대도 삼각형의 꼭지로 자리를 잡고 상생 시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참모진과 격의 없이 산책하는 새 대통령의 모습이나 청와대 ‘재벌 맥주파티’ 장면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별로 그렇지 않다. 최근 신고리 원전 5, 6호기 관련 공론화 위원회 기사를 보면서 실은 많이 우울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에 공론화 위원회가 3개월간 무엇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핵발전소 문제는 핵폐기물 논의를 포함하여 대대손손의 영위가 달린 문제로 온 국민이 대대적인 학습을 시작해야 할 사안이다. ‘386세대’가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 공론화 영역이 아닌가? ‘성숙해진 실세, 386 전성시대’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대론’은 압축적 시대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유용한 분석 틀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넘어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부터 거대 권력과 맞서 싸워야 했던 ‘386세대’는 목표를 세우고 조직적으로 추진해가는 일에 능하다. 반면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를 스스로 탐사해야 했던 90년대 학번들은 개인성과 소통, 문화적 영역을 개척했다. 90년대 중반에 대학 총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했던 A씨는(나는 마침 지금 90년대 학번을 연구 중이다) 확고한 이념과 좌표를 상실한 상황에서 자신들은 선배들과는 달리 일상과 사회변혁을 연결시키며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고 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신기류 안에서 시민적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는데 1996년 한총련 사태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큰 진전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고 했다.

 

대신 막 열리기 시작한 인터넷과 문화산업 그리고 시민사회 영역으로 진입해서 중추적 구실을 했다. 이들은 직장에서 민주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했으며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촉각을 세우고 살았다.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촉발된 효순·미선 촛불시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올린 한 네티즌의 글에서 시작되었고, ‘광화문 시민혁명’도 이들 ‘포스트 386 세대’가 구조와 개인을 연결시키며 평화로운 시위를 이끌어냈기에 이루어진 기적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자수성가한 베이비붐 세대가 오로지 ‘집단적 개인’만 볼 수 있는 세대였고, 386세대는 ‘구조(적 모순)’를 볼 수 있는 세대였다면, 90년대 학번 세대는 ‘구조’와 ‘개인’을 연결하며 자발성과 자치의 시대를 열고자 한 세대였던 것이다.

 

진부하고 권위주의적인 것에 거부감이 강한 이 세대는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존재이다. 이들은 ‘차이’를 바탕으로 한 개인성과 다양성, 자아성찰과 자기표현이 바탕이 되는 공론화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386세대와 매우 대조적인, 그래서 상호보완적인 세대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시민적 소통과 공론화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면 이 세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선배 세대를 촌스럽고 후지거나 과도하게 권력적이라고 느껴서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일전에 후배가 “386세대는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왜 더 가지고 싶어 하냐?”고 물었을 때 선배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천하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막상 보면 가진 것이 별로 없다. 자녀 학비는 여전히 벌어야 하고 할 일은 태산같이 많다.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여기서 혼신을 다해 달려온 386세대를 탓할 생각은 없다. 어쨌건 ‘후지거나’ ‘배고픈’ 선배들 등쌀에 회사를 떠나거나 나라를 떠나는 후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숙한 386’이 모여 숙의할 것은 어떻게 이 후배들을 초대하여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어갈 것인지일 것이다. 선심 쓰듯 기존의 공직이나 직장 구조에 들어가라거나 자신들이 잘 못하는 이벤트 기획을 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90년대 학번들도 이제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디테일에 대한 감각으로 정교한 작업을 해낼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고 그 아래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와 협업 가능한 세대도 바로 이들이다. 이 세대가 자리를 잡으면 386세대와 아랫세대도 삼각형의 꼭지로 자리를 잡고 상생 시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신고리 공론화 위원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 참여를 끌어내고 다층적 다각적 공론의 자리를 마련해낼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비롯한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하는 첫 모델을 만들어내기 바란다. 시민의 시대에 시민 소통에 대한 감각을 가진 이들이 협력해서 새판을 짜보자.

2017.08.01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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