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한 땀 한 땀, 시간에 따라 쌓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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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디세이하자 길잡이 교사 판돌 토리입니다.

 

오디세이학교는 열 일곱 청소년들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 1년 동안 항해하는 전환학교입니다. 저는 하자에서만 8년째 청소년을 만나고 있고, 올해로 3년째 열 일곱살 죽돌을 만나고 있어요.

얼마 전 학교 설명회와 체험의 날이 있었습니다. 3월부터 오디세이학교를 다닌 9기 죽돌들이 오디세이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예비 죽돌들에게 본인들의 경험을 나누며 오디세이학교에 대해 소개 하는 중요한 자리에요. 그런 자리에서는 준비한 말이나 글, 이미지 같은 것들보다 재학중인 죽돌들의 표정이나 움직임, 함께하는 모습과 태도, 분위기 같은 것이 유효합니다. 일상을 함께 보내는 애증의 관계인 죽돌들이 타인 앞에서는 얼마나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가끔은 길잡이로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또 참 예뻐요. 올해도 준비하며 서로 많이 다투고 길잡이들에게 혼나기도 했지만 9기들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중요한 경험과 배움을 남겼습니다. 각자의 몫을 할 수 있는 자리는 그래서 죽돌들에게 귀합니다.

 

저는 체험의 날에 예비 죽돌들과 바느질 수업을 했어요. 간단한 홈질과 박음질로 카드지갑을 만들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천을 고르고 어울리는 실 색깔을 찾아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집중하는 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한 땀씩 바느질을 하다보면 한 줄이 되고, 그게 또 다른 길처럼 열리는 모습이 저나 죽돌들의 1년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죽돌들에게 "오늘 하루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예비 죽돌들과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 박경리 소설가의 <바느질>이라는 시 한 편을 함께 읽었는데요. 저는 여행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쇼핑도 좋아합니다만 결국 시간에 따라 쌓이는 것은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이라는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바느질

박경리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자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 줄이나 실린 책이다

 

베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올해도 겨우 한 달이 남았네요. 우리는 남은 한 달 동안 또 얼마나 아득한 아직과 이미 사이를 살아가려나요. 아무튼, 그 아득한 시간이 따뜻한 길로 남길 바랍니다. 오디세이하자 9기들의 남은 항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고요!

 

노는 게 제일 좋은 판돌 토리 드림

 

▼ 하자마을통신 11월호 읽기

https://stib.ee/CLx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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