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파티를 하기 위해 서른 명의 떠별들이 999홀에 모였습니다. 시작파티는 일 년 동안 함께 여행할 떠별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피아노 연주, PPT발표, 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밖은 겨울이었지만 999홀은 봄이 온 듯 따뜻했습니다. 1년 동안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여행자 MAP만들기 │여행 전 준비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바로 여행브리핑인데요. 목포는 한반도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목포’라는 항구도시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있는지 이야기 들었습니다. 목포에 한 발짝 더 다가 가볼 수 있었습니다.
전우용 선생님의 강의도 들었습니다. 주말 4기가 처음으로 듣는 초대길별의 강의였습니다. 떠별들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전우용 선생님은 근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시간과 물건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강의했습니다. 저는 질문하지 않은 것에 질문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의 머리에 조여진 나사를 풀고 고정관념을 깨보는 일. 전환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말이 아닐까요.
떠별들의 웃음소리가 교실 밖을 넘어갑니다. 목포 지도와 가이드북을 펴고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인데요, 바로 여행기획 수업입니다. 서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떠별들은 여행기획 시간만 되면 부쩍 말이 많아집니다.
목포여행
유달산 난간에 몸을 기대어 목포의 탁 트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목포의 거리를 오목조목 살피고 옛 건물을 찾아내는 것도 꽤 재미납니다. 백여 년 전 목포는 일본의 근대와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던 곳이었습니다. 늘 북적거리는 항구 도시인데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흥행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조선의 곡식과 면화가 수탈되고 징용·징병 되는 조선인들이 헤어짐을 고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인들의 설움과 아픔이 담겨있는 도시가 바로 목포입니다.
목포의 사람들은 낡고 오래된 옛것을 허물지 않고 보존합니다. 과거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사용되던 건물은 현재 목포 근대 역사관(1관, 2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근대역사관에 올라서 쭉 뻗은 도로를 보면 일제가 왜 이곳에 영사관을 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근대역사관 1관에서는 일본식 근대 문화를, 2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참혹했던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는 <목원동 이야기>의 저자이신 최성환 선생님께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조선인들이 살았던 목원동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목포의 사람들은 이어갑니다. 옛것에 담긴 아픔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도시를 꾸려나갑니다. 이를 조금은 딱딱한 말로 ‘도시재생사업’ 이라 하지요. 그 중 하나는 목원동의 ‘옥단이 길’입니다. 차범석 선생님의 작품 ‘옥단어!’에서 이름을 따온 이 길은 목원동의 이곳저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든 여행길입니다. 옥단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박화성도, 김우진도, 이매방도 만날 수 있습니다.
목포의 사람들이 목포를 기억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목포가 담고 있는 시간을 기억하려는 그들의 자세는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떠별들은 한 걸음 한 걸음에 궁금증을 가득 담아 목포를 여행했습니다.
목포 근대 역사관의 해설사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주문이 있습니다. “일낙지 이홍어 삼민어 사갈치 오꽃게...” 싱싱한 해산물과 맛난 음식들로 유명한 목포에서 떠별들은 함박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허벌나게 맛있었거든요.
익히지 않은 게살을 먹지 못했던 떠별들은 게살비빔밥을 맛보곤 게살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야들야들한 게살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어찌나 맛있던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쫄깃한 산 낙지와 연포탕의 시원한 국물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합니다.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준 해장국, 레츠피스 단원들과 공연 후 먹었던 백반과 매운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포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중깐은 얇은 면과 잘게 다져진 채소들이 골고루 어우러져 그 어떤 짜장면보다 맛있었습니다. 목포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코롬방제과’의 크림 바게트는 양팔 가득히 안고 집에 가서 먹고 싶은 맛이었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상상을 할 때마다 팀원 중 한 명은 꼭 코롬방제과를 외치곤 했지요. 쑥굴레는 또 어떻고요. 쑥굴레는 쑥떡에 고소한 앙금을 넣고 얇게 튀겨 조청에 버무린 음식입니다. 한 번 먹으면 새로운 맛에 놀라고, 두 번 먹으면 그 맛에 중독되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이 나갑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아침은 떠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에너지였습니다. 집밥처럼 익숙하고 포근했던 그 온기는 두고두고 생각이 납니다.
떠별들이 수저를 들기 전 항상 말하는 ‘콩내반내지내’의 마지막 ‘내’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입니다. 떠별들은 낙지가 되고 짜장면이 되고 쑥굴레가 되었네요. 목포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가 되었던가요.
“사~공에 뱃노~래 가~물 거리며~“
목포에 왔으니 ‘목포의 눈물’을 안부를 수 없겠지요. ‘목포의 눈물’은 1935년에 나온 이난영의 히트곡입니다. 축음기라는 것이 처음 생겨나고 전국의 사람들은 이난영의 목소리를 똑같이 들을 수 있었지요. 히트곡과 유명가수는 근대가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노래에는 나라를 빼앗긴 심정이 적혀 있어서 많은 조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숙소에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쟁반노래방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팀은 시작부터 쟁반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지만 마지막에 실수하여 아쉬움을 자아냈던 팀도 있었습니다. 노래를 틀리지 않고 부르려고 노력하는 떠별들의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여러분은 서울역이 국제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20년대 서울역에서는 기차를 타고 파리까지도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가 반으로 나뉘면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올해 주말로드스꼴라는 레츠피스와 함께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서울역이 되고 유라시아가 연결된다면 한반도는 육상실크로드의 기착지이자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츠피스는 남미의 리듬을 연마하고 호흡을 맞추어 행진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지구생명과의 상생을 꿈꾸고 실천하는 퍼커션 팀입니다. 올 한 해 동안 함께 여행하며 기차역마다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서울역을 국제역으로>의 첫 번째 시작이었던 목포역에서 떠별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고, 브라질 타악기 바투카다를 연주했습니다. 즐거운 공연으로 떠별들과 관객들은 활짝 웃었습니다. 자세한 공연 영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월 목포역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공연 스케치 영상
https://youtu.be/_RnQPeDlJAM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플래시몹 영상
https://youtu.be/aNBttcsRPLU
포틀럭 파티
기적의 밥상이 차려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떠별들이 손수 만들어온 음식들을 테이블에 하나하나 올려 커다란 밥상 하나를 차렸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끼 맛있는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여행자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겠지요. 떠별들은 조금씩 연습하고 있습니다.
합평회
주말로드스꼴라에서는 여행을 다녀오면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글을 씁니다. 마지막 주에는 자신이 쓴 글을 가지고 와서 합평회를 합니다. 다른 떠별은 여행을 어떻게 느꼈는지, 한 달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글을 통해 알아보는 자리입니다. 상대방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키워나갔습니다.
3월에는 기찻길의 종착역이자 시작점인 목포에 다녀왔습니다. 다들 첫 여행이라 긴장도 하고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모두 웃으며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3월처럼, 기찻길의 시작점인 목포처럼, 주말 4기들도 앞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