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우리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를 찾아주신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을책방의 책모임 ‘조용한 혁명’입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조용한 혁명’은 한 달에 한 권을 목표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왔습니다. 이번 4월에 함께 읽은 책은 세월호 형제자매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입니다.
그동안은 구간을 나눠 각자 읽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번 책은 다 같이 모여 낭독을 하였습니다. 책 한쪽, 한쪽에 가슴이 매여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든 먹먹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여서 세월호 이후 가려져 있던 형제자매 분들, 생존자분들의 삶을 소리 내 읽었습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나의 형제자매와도 같은 이들이 악몽을 꾸며 잠을 설치고, 철이 들어 세상의 부조리를 알았습니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을 상황을 마주하니 저절로 몸이 경직되다가도,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고 입을 떼기가 어려운 것은 저희뿐만이 아닐 겁니다. 침묵 끝에 입을 열어 내 슬픔을 말하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이들과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슬픔을 나눈다는 것은 ‘나눈다’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누며 위로하고, 힘을 얻고 변화를 이끕니다. 우리는 함께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고, 세월호 기억전을 열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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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세월호 기억전을 준비한 '조용한 혁명'이 세월호를 기억하며 책을 읽고 써내려간 글입니다.
나무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햇수로 4년이 되어간다. 아프고 더뎠던 시간들. 근 1년 새에 바뀐 것은 많았지만, 변화를 이끌기 위해 흘린 눈물을 헤아리기 어렵다. 유가족 분들에겐 더욱 더 그러했으리라.
어디선가 세월호는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라고 했다. 내게도 그렇다. 어린 시절, 신문에 하루가 다르게 거대한 사건이 터져도 그들만의 일이겠거니 생각했고 한편으론 막연히 국가는 내 편 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그 날 이후 유년의 세계를 탈피한 지 오래이다. 사건 당일 저녁 티브이에서 본 화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늘어가는 사망자 수와 정체된 생존자 수, 손 놓고 앉아있던 책임자들. 세월호는 단지 그들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었으며 국가의 무능과 방임을 제대로 자각한 첫 순간이다. 당연히 구해져야 할 사람들이 구해지지 못했고 국가의 손길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선 한 척만이 그 몫을 할 뿐이었다.
책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철이 들었다고, 성숙해졌다고 말하는 형제자매 분들이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감당하려다보니 생겨난 변화이다. 나도 느리지만 그 변화를 따라가고자 했다. 세월호의 흔적을 찾아서 나도 감당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광화문집회에서 받았던 세월호 리본을 보다 안산에 갔다. 안산분향소에서 헌화할 동안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멈추지 않던 눈물을 모아서 올해 진도에 갔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 사이를 거센 바람이 굴러다녔다. 리본과 종이 마구 흔들렸다.
편지를 썼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바람이 셉니다. 단숨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파도가 너울집니다. 사회가 구하지 못한 304명의 영혼들이 부디 평온하길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흘린 눈물에 거짓은 없었건만 나는 이제야 와버렸습니다. 미안해요... 나는 앞으로 당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좋은 나라를 만들 거 에요. 꿋꿋이 살아갈 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에요 ····· (중략)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언니오빠들의 나이를 넘겼네요. 나는 스무 살이 되었어요. 내가 나이를 먹어서 허리가 굽어도 나는 세월호를, 그 당시 어른들이 만들었던 사회를 잊지 않을 거예요. 미안해요, 쉬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햇수로 4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유가족 분들이 짊어졌던 짐을 같이 나누어 보자. 비상식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이 앞은 달라야 한다고 말하자.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고 슬퍼하자.
‘슬픔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것이다. 책임은 모두의 것이지만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416프로젝트<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찌루
"우리가 말한다. 너희는 들어라"
여기 또렷한 목소리가 있다. 언론의 거짓말과 정부의 잡음이 섞이지 않은, 어떤 것으로도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이다. 그 날 세월호에 있던 사람, 가족을 잃은 형제 자매가 말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한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껏 우리는 잡음에 둘러 쌓여있었다.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잠기던 순간에도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거짓말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후로 정부는 배/보상금, 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등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를 덮어 버렸다. 가족들은 2014년 4월 16일부터 나의 자식이, 나의 언니 오빠 형 동생이 도대체 왜 죽었는 지 알려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들에게 대답을 해주긴 커녕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 소음을 만들어 가족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세월호 사건 이야기의 주체는 언제나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세월호에 있던 사람들, 유가족, 생존학생, 세월호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이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도저히 혼자서 책의 첫 장을 넘기기 힘든 책이었다. 다행히(?) 조용한 혁명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모여 앉아 각자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만큼 낭독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 나가기로 했다.
사고 당시 세월호 선내에 있던 생존학생의 구술을 낭독하고 있을 때였다. 쓰러지는 캐비닛에 친구들이 휩쓸려 갔다거나 신발을 챙겨 신을 새도 없이 발 밑으로 물이 차올랐다거나 바닥이 벽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빙빙 돌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무서웠다.
한 시간 동안 낭독을 하고 나면 우리는 늘 말이 없었고 가끔은 탈진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유는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은 이 상황 속에서 오직 그들의 목소리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아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진실을 모르는 채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 바에는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
“진정한 위로는 연민이 아닌 상실의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온다. 이들이 경험한 상실은 단지 어린 나이에 친구와 형제자매를 잃은 안타까운 경험이 아니라, 세월호참사라는 큰 그림 안에서 조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 상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위로는 ‘말’이 아니라 ‘간절히 원했던 답을 함께 찾아 나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p.347)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가 바라는 것은 안타까워하기만 하는 동정과 연민이 아니다. 가로막힌 벽을 함께 넘을 동료이다. 나도 그들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진실을 함께 찾아가는 든든한 동료가 되고 싶다.
p.s 리뷰의 제목은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린 페미퍼레이드에서 외친 구호를 인용했다.
르네
나이를 먹는 게 너무 무서워요. 나도 변할까봐… 기득권, 어른의 때가 묻을까봐.-p.235’
그들은 어른들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온갖 오보와 자극적인 문구로 제목을 쓰는 기자들이나,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희생자들을 욕하는 이들이나, 혹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이들. 노란 리본 배지만 달아도 당장 떼라고 하는 말이나, ‘아직도 세월호냐’라는 식의 반응들.
지난 3월, 희망의 촛불에 달린 수많은 노란 리본들은 일부 집회 참가자에 의해 처참하게 땅에 떨어져 짓밟혔다. 누군가는 자식을, 형제자매를, 선생님을, 친구를 영영 잃은 것인데, 심지어 그 원인조차 불분명하게, 아무 대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데’ 라고 생각했던 것에 씻지 못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데,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정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노골적으로-부끄러워해야 할 만큼-보여주고 있다. 4주기가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적 재난 앞에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과,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희생자와 남은 유가족들을 마구 힐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세월호 세대로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어른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한다. 어른이 됨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세월호 참사 이후 ‘평범한 삶’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할까?
준비된 도서들
푸른
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뱃머리를 똑똑히 본 그날을 기억합니다. 삼 일 내내 우중충했던 날씨와 뉴스 속보만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리고 도망치기 바빴던 TV 속의 어른들을 기억합니다.
제게는 처참한 상황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어이없음과 함께, 고통받는 유가족분들을 마주하기 두려운 마음이 오래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겪어보지 못한 경험 앞에서 몸이 얼어버리는 것처럼.. 남들보다 오랜 시간 동안 얼어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가방에 노란리본을 처음 달았던 날, 저는 '진상규명'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직시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재발을 막겠다는 다짐. 한 사회의 시민이자 어른으로서 그들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책을 보다가도 잠시 차를 마시며 가만히 있어야 하기도 했고, 눈물을 참지 못한 날도, 심장이 빠르게 뛴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함께 모여앉아, 서로의 목소리를 빌려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모임을 하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조용한 혁명’과 함께했기 때문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무너질 대로 무너진 이 사회의 안전망을 마주하고 매년 바다로 이어질 검은 행렬을 바라본다는 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참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 같아요. 아무리 인터넷을 보고 책을 찾아봐도 모르겠는 참사의 이유를 밝혀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겠지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세월호 세대'라 불리게 된 사람들이 가진 힘은,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려 노력한다는 것이지 않을까요?
후쿠시마도 그렇고 봄이 오면 반가운 봄바람 사이로 아픈 생각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