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때 모두 함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어쩌다가 이처럼 소비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소비 이외의 다른 삶의 방식을 떠올려 보아도 대안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웠던, 자급자족 같은 이야기 밖에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여 패스트패션, 스파브랜드에 대한 발표(페차쿠차)를 하게 되었다. 그 후에 히옥스에게 되살림 가게 운영을 제안 받게 되었는데, 함께 할 동료들을 모았다. 마야와 CI디자인 같은 것을 의논하면서, 하루, 정, 자베, 인다와는 되살림 가게의 오픈을 준비했다. 시작할 때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많았고 자꾸 틀에 갇히지 말고 해보자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실행하는 힘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점은 운영하는 동안 의미보다는 수익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던 것이다. 실은 수익보다는 물건에 담긴 이야기나 삶의 방식을 생각해보고 나누고 싶었던 것인데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은 더 없는 것 같고 그에 비해 할 일은 너무 많고 가게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운영에 지쳐갔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텐데 말이다. 학교가 이전한 다음에도 나우노아가 계속된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해보면 어떨까 한다.
좋았던 점은 생각보다 나우노아의 의미와 태그를 보고 물건에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부분이었다. 태그를 읽으면서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어 누구 물건이네 하면서 이야기 해주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우노아가 아무 때나 들리거나 급할 때 들려서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던 것 같다. 오가다가 들려주는 사람도 많았고 정말 급하게 노트할 일이 있거나 공연할 때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 그냥 추워서와 같은 이유들로 가게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보면 기뻤다. 이 공간이 부담 없이 들려서 이야기도 하고 쉬었다 갈 수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간이었으면 했는데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우노아를 운영하면서 결국 이것도 소비하는 것이니까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산다는 것, 물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나는 사실 자잘한 물건, 필기도구 같은 것은 내 돈 주고 사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잘 사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잘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게를 운영하면서 소중한 물건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우노아 매니저 해나
나우노아를 운영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일도 많았다. 매일 아침 가게를 들려 문을 열어놓고 시간이 있으면 간단한 청소를 하는 일도 돌아가면서 했다. 일주일에 2번 점심, 저녁시간에 문을 열었고, 그 시간 외에도 틈틈이 모여 물건을 분류하고, 태그를 붙이고, 기록하고, 가격을 매기고 하는 등의 작업을 해야 했다. 손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다 해야 했는데,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작업하는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꼼꼼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우노아를 여는 일은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당번제를 했는데, 내가 일이 생길 때가 많고 정도 바빠서 하루가 주로 담당하게 되기도 했다.
나우노아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한테는 학교 안에서 제일 편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가게 안 구석구석 커튼, 행거 등등 우리의 손길이 닿은 곳이 많은 것 같다. 또 하루와 정과 일하면서 동료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 것 같고. 셋이 있는 시간이 많고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손발도 잘 맞고 서로의 사정도 잘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서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배려해가며 일할 줄 알게 되면서, 나우노아 바깥의 학교생활에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우노아를 이용해주시고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마무리 단계에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함께 하지 못했던 때에도 나우노아를 잘 운영해준 하루와 정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역시,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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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들 (정, 진현수)
해나의 제안으로 나우노아 멤버가 된지 1년이 지났다. 처음엔 “나우노아? 응, 해보고 싶어” 단순한 응답으로 시작됐다. 3학기 때 하루, 해나, 마야가 하는 작업과 얘기, 디자인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었다. 4학기 때 제안을 받았지만 탈핵상영관 준비로 하루와 나는 많은 일을 도와주지 못했다. 그러다 12월 15일 오픈 날을 위해 청년과정의 자베와 인다를 도와 바삐 준비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공간세팅을 맡았다. 되살림 가게 자체보다는 그저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하며 공간을 갖고 같이 작업 할 수 있던 게 좋았다. 옷에 관심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던 나는 화려한 것이나 귀여운 것, 해나, 하루가 좋아하는 것을 거의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이 가까워서 자주 나올 수 있었고 아침 일찍 나와 나우노아의 시작을 준비했다. 그땐 ‘내가 집이 가깝고 다들 힘든데 내가 일찍 나오고 늦게 가야지’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날은 정말 허겁지겁, 시작이 되었다.
처음 맡았던 것이 공간세팅이어서 그랬던 건지 나의 역할은 공간 데코레이션이나, 행거제작, 큰 키를 이용한 청소 같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됐다. 사실 처음 난 “이 세 명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었는데, 지내면서 보니 각자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부분이 있었다. 청소 같은 일 말고도 알고 보면 내가 제일 꼼꼼한 성격이라 옷의 상태를 체크를 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손기술이 좋은 해나와 하루는 바느질과 재봉질을 했다. 두 명이서 고민하고 있으면 세 명이라 결정이 가능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하며 세 명의 역할이 뚜렷하지 않지만 뚜렷하게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좋았던 점은 소통의 공간이 하나 만들어졌던 거 같다. 나와 하루, 해나는 나우노아에서 강의가 어땠는지, 오늘 어땠는지, 서로가 어떤 상태인지 자주 얘기할 수 있었다. 또 네트워크학교 학생들이 드나들게 되면서 짧지만 그렇다고 너무 얕지는 않은 얘기도 자주 나누게 되었다. 그것이 나우노아의 이야기 태그 덕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바꿔줬다. 나우노아를 시작하면서 되살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업사이클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리사이클이라는 것,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하고, 줄이고 아끼는(reduce) 습관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우노아는 단순한 되살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우노아의 다섯 가지 약속 중 하나였던 ‘옷은 해질 때까지 입는다’를 떠올리면, 물품을 받을 때 함께 받았던 이야기들에는 ‘쓸모가 없어져서’, ‘너무 많아서’라는 말이 많았던 것과 대조된다는 생각이다.
아쉬운 점은 많은 걸 해보지 못했다는 거다. 사실 내가 말하는 ‘많은’ 것이 뚜렷하진 않지만 나우노아란 공간이 생기고 나서 많은 걸 여유나 시간, 체력 때문에 못 했다는 것이 아쉽다. 또 값을 매기는 일도 문제였다. 처음의 가격은 5000원부터 10000원이었지만, ‘중고’라는 생각 때문에 싸게 팔아야할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지하상가의 가격과 비교하며 가격을 매겼다. 나우노아 매니저들로서 우리는 가격을 매길 때 이 물건들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나 아쉽기만 하다. 다만 우리가 물건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과정이 존재하였고 고민을 나눴던 과정을 생각하면 좋게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내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위한 숍인지 같은 질문을 잊지 않으려 했다.
하루와 해나와 같이 손발만이 아닌 머리도, 몸을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선택수업이 적어 저녁시간이 비었던 하루는 나우노아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일도 더 하게 되었는데, 하루가 정말 고생했다고 생각한다. 나우노아를 마무리하기 전 2달 동안은 해나가 없이 지내야 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바빴던 탓에 청소와 정리만 하는 정도였다. 해나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나우노아 사진_정
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던 때랑 겹쳐지면서 나우노아의 모습이 변하는 걸 담고 싶어 한 달의 한 번 혹은 일주일의 한 번은 꼭 똑같은 구도에서 나우노아를 찍었다. 이번 학기는 거의 못 찍었지만 사실 이 사진들을 나우노아 1주년에 전시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공연음악팀을 초대해서 나우노아의 개관 1주년을 축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나우노아는 이전하게 되었고, 학기말에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해 지나간 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1년 동안 수고 많았다. 함께 했던 해나와 하루, 그리고 자베, 인다, 마야, 히옥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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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노아를 떠나며 (하루, 임산하)
하자에서 되살림 가게를 하고 싶다는 히옥스의 제안을 듣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2학기 때 소비에 대해 고민한 해나의 페차쿠차를 보면서 일부분 공감했었다. 불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값싼 옷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그런 옷들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해나의 페차쿠차를 듣고, 히옥스가 제안한 되살림 가게 이야기를 듣고 그럼 저기서 그런 대안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하자센터라는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 안에서 되살림 가게를 한다는 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우노아를 오픈하기 전에도 이런 저런 논의를 하면서 바빴지만, 내게 기억이 남는 건 오픈 한 뒤 어떻게 나우노아를 자리 잡을지 이야기를 나눴던 것들이다. 나우노아를 운영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기증받은 물건들의 값과 가치를 어떻게 매길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우노아를 이용할 수 있을지, 하자센터 안에서 잘 자리 잡은 찾아올 수 있는 가게를 만들 수 있을 지였다.
나우노아를 오픈한 다음 가장 처음 모여 회의했던 것이 가격에 대해서였다. 청소년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가격대는 어느 정도일까? 나우노아에서 구입한 물건을 단순히 소비재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 물건이라든가 누가 기증한 옷이라든가, 돈이 아닌 다른 가치로 생각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우노아를 운영하는 취지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우선 부담스럽다고 느끼거나 살까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돈이 아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논의를 하면서 우리가 이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지하상가나 다른 옷가게들에서 판매해오는 가격을 기준으로 두고 옷의 가치를 매기게 되지는 않았는지 또 만약에 내가 기증한 옷인데 너무 싸게 팔고 있으면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까, 우리라면 어느 정도면 돈을 신경 쓰지 않고 옷의 이야기를 보고 사게 될까 고민하며 나우노아에 들어오는 물건들의 가격 기준을 정하게 됐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나우노아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운영방침 같은 것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나우노아의 운영시간 같은 것도 네트워크 학교 모든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인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문을 여는 것으로 정하게 됐다. 어떻게 운영할지 틀이 잡혀가자 다음엔 어떤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접혀져 있는 옷보단 옷걸이에 걸린 것이 한결 보기 편했고 이야기가 들어있는 태그도 눈에 띄는 곳에 달아둬야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봐주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직 사람들이 나우노아가 있는지도 모를 테니 “하자에 나우노아가 생겼어요!”하고 알리고도 싶었다. 또 나우노아에 들어섰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손길과 흔적이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천을 가져와 직접 커튼을 만들고, 아침마다 나와서 당번제로 돌아가며 청소를 하고, 점심시간 마다 문을 열고 노래를 틀어뒀다.
나우노아에 옷을 기증하기 위해 한 아름 물건을 가지고 와준 사람들이 많았는데 와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반가웠다. 일일이 태그를 작성해야한다는 것이 번거로워서 그냥 가야겠다는 사람, 이야기가 없는데 안 쓰면 안 되냐는 사람, 딱 한 문장만 남기고 가는 사람, 시간이 없어서 후다닥 물건들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태그작성을 맡긴 후 간 사람, 그 중에도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고심해서 써준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태그를 쓰고 기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들었다.
다들 너무 바쁜데 옷을 좀 기증하러 왔더니 다른 일(태그작성)까지 하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안한 기분이 들어 하나만 이야기를 남겨주고 가라고 하기도 했는데, 나우노아는 그런 이야기를 모아 나누고 파는 곳이니, 조금 번거롭더라도 이런 과정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이렇게 바쁜 사람들이 나우노아에 와서 조금 여유롭게, 내가 지금 기증하려 가져온 물건들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되돌아보며 숨 돌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나우노아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아쉬움이다. 처음 시작할 때 로고디자인, 간판을 디자인해보기로 했는데 이걸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나우노아의 로고는 마야가 디자인하게 됐다. 로고디자인을 내가 잘 하지 못했던 점도 아쉽고, 운영을 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태그를 제작할 때 도장을 만들어 찍자고 한 것도 인다가 수정을 안 해주고 히옥스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계속해서 직접 태그를 만들면서 투덜거렸다. 사실 우리끼리 돈을 모아 도장을 파면 금방 해결될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태그를 만들면서 우리끼리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정과 해나가 바빠서 나 혼자 태그를 만들게 됐을 때가 생기면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우노아를 시작하며 크게 정해둔 것 없이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었다. 기증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보답을 하면 좋을까, 나우노아에 기증한 물건 중 우리가 생각하는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뽑아보자, 나눔행사(crossing and sharing)을 정기적으로 해보자, 카페그냥이 생겼을 때는 그냥과 나우노아가 함께할 수는 없을까? 달시장에 나우노아가 참여해보면 좋겠다. 같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이것들을 아이디어로만 남겨뒀던 게 큰 아쉬움이다.
네트워크 학교를 돌아다니며 나우노아를 소개하자는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하자고 정하고 했으면 됐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도 후회가 남는다. 처음 시작하다보니 망설임도 컸고,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게 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더 넉넉한 시간이 있었다면, 프로젝트 시간이 있었다면 해볼 수 있었을까? 늘 운영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다 느끼며 이런 아이디어들을 아이디어로만 남겨두고 마무리하는 것이 아쉽다.
또 나우노아를 시작하며 논의했던 것이 있었는데 나우노아를 운영할수록 매상에 집중을 하게 됐다. 문래동에서 진행된 환경대전에 참가해 높은 금액을 벌었던 것에 현혹돼서 하자에서도 높은 매상을 낼 수는 없을까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반성한다. 분명 이야기할 때는 돈이나 상품으로서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봐주기를 바랐는데 매니저인 내가 1년 동안 계속 있는 물건들을 보며 팔리지 않는 상품으로 여겨버리고 어떻게 하면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는 게 되돌아보며 부끄럽다.
앞으로 새로운 나우노아에서는 나우노아에 들어온 물건들을 단순한 상품으로 여기지 않고, 수익보다는 우리가 무얼 위해서 이런 가게를 운영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꾸려 가면 좋겠다. 또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꼭 했으면. 하자센터에서 이렇게 마무리되는 나우노아를 크리킨디센터에서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힘들고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나우노아 매니저 하루(좌), 정(우)
나우노아를 하면서 정과 해나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고 느꼈다. 함께 나우노아를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살피게 됐다. 통학거리가 길어 아침에 일찍 나오기 힘든 해나를 대신해서 집이 가까운 정이 더 자주 아침에 나와서 청소를 했고, 선택수업을 정하지 않아 저녁시간이 남는 나는 그 시간에 태그를 만들고 물건정리를 하게 됐다. 운영하면서 두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 순간이 많았다. 나는 빨리 후다닥 끝내려한 가격 매김이나 물건 등록을 해나와 정이 보다 꼼꼼하게 해냈다. 옷이 상한 곳은 없는지, 태그의 소중한 정도는 어느 정도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를 확인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 정과 나는 디자인팀에서부터 사소한 말다툼을 자주 했었는데, 그런 우리 둘 사이에 공연 팀인 해나가 있게 되면서 잘 중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과 해나라면 같이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게 동료고 서로에 대한 신뢰일까? 나우노아를 함께하면서 나우노아뿐 아니라 다른 것을 함께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나우노아를 떠나면서 기억에 남는 얼굴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주로 나우노아 옆 계단을 이용하기에 오고가며 들려줬던 로드스꼴라의 떠별들, 이런 가게가 있다는 걸 신기해하며 서로에게 옷을 입어보라 권하던 오디세이 죽돌들, 들어가도 되나 문 너머로 살펴보면서 서성거리던 옆방의 영셰프, 목화학교의 죽돌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한 물건들을 기증해준 두부를 비롯한 하자판돌들, 나우노아보다 나우노아 안에 있는 침대를 더 자주 만나러 온 우리학교의 죽돌들.
나우노아를 1년간 운영하는 동안, 나우노아에 들러 물건을 기증하고 이용해준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보러오고, 필요 없는 물건이 생기면 바로 생각나는 공간이 되었을까? 그랬다면 참 기쁘지만, 꼭 볼 일이 없어도 지나가다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면 그 또한 참 기쁜 일이다. 히옥스와 인다, 자베 그리고 나우노아를 함께 운영한 매니저 정과 해나에게 많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