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하자센터에서는 ‘공공진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함께했던 8명의 예술인의 ‘일문일답’입니다.
Q : “몽키씨몽키두” 기획으로 마무리한 지난 6개월 여정은?
A : 지난 6개월 동안 8명의 예술인이 하자에 모여, 서로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자에서 ‘공공 매주 한번 만나 생태, 복지, 노동,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의 일자리, 예술가의 기본소득, 지속가능성에 대해 토의하고, 각자의 작업을 공유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6월에는 개성이 뚜렷한 8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도 섞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를 알아가고 조금씩 배려하면서 새로운 예술 활동의 실험에 대한 합의가 생겨났고, 여러 가지 협업이 이루어졌다. 한쪽이 다른 쪽에게 부탁한 경우도 있었고, 우유부단할 것 같은 셋이 모여 얼렁뚱땅 프로젝트가 탄생하기도 했다. 하자의 공간에서 시작되어 각자의 공간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하자에서 합쳐져 완성되었고, 결과물들은 창의서밋이 열린 9월에 ‘923 예술인 장터’와 11월의 ‘몽키씨몽키두’를 통해 공연의 형태로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923 예술인 장터’에서는 작가로 ‘몽키씨몽키두’에서는 기획자로 활동을 했는데, 늘 구상만 하고 있었던 자연물을 이용한 장신구 작업을 실현하였고, 서로 다른 5개의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두 가지 행사를 통해 예술인들이 하자에 와서 활동하며 영향을 주기도 했겠지만, 예술가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상상하며 실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수평적인 문화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자의 문화에 물들어 지냈던 6개월, 나의 이름이었던 ‘짱짱’과 헤어지기가 아쉽다.
|짱짱(김지수)
Q : 퍼실리테이터에서 공연자로 나서기까지의 소감 한마디?
A : 하자에 처음 왔을 때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이 목공방, 자전거공방, 목화공방처럼 손으로 뭔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공방지기들과 뭔가 같이 해보고 싶다는 욕심과 몇 가지 아이디어들도 떠올랐는데, 퍼실리테이터로써 맡은 역할이 있다 보니 조금 참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프로젝트인 몽키씨몽키두의 기획을 '짱짱'이 맡아주신 덕분에 저도 작품을 만들 수 있었고, 소원성취 했죠! 그리고 '판돌 동녁'과 협업을 해 본 것도 수확 중의 하나입니다.
하자센터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사운드아트와 미디어아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접목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한번이라도 기회가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사업기간이 끝나서 많이 아쉽기도 해요.
지난 6개월간 하자센터에서 파견 예술인으로서 내가 얻은 경험은 다시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하자센터는 예술인 파견을 요청한 파견 기관 이전에 청소년을 위한 대안적인 교육과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로 채워진 곳이다. 이들과 함께한 파견 사업은 주제의 선정, 토론, 결과물의 도출 전 과정이 매우 교육적이었다. 여기서 교육적이라는 말은 교조적이라는 부정적 함의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그저 배울 것이 많다는 뜻이다.
나는 평소 좋은 교육은 빈 공간을 채워 나는 과정이 아닌 빈 공간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빈 공간은 학습자 스스로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가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특별히 하자센터는 그 끝없는 항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가’는 끝없이 변해가는 혹은 변해야 하는 이와 같은 우리 삶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일로써, 노동으로써 실행하는 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자센터는 예술인들을 위한 좋은 배움터이다.
A: 서로 간의 '약속' 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움' 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자에서 보낸 6개월 시간동안 공간에서 판돌, 죽돌, 그리고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들 모두에게 강제적이거나 억지로 어떤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더라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낼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느낌도 좋아요! 언제든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쉬이~ 찾아 갈 수 있을 만큼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덕(박성민)
Q: 리필극장, 드라멘터리 제작에서의 ‘협업’은?
A: 올해 초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있어서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Refill)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예술인으로서의 ‘역량’이었고, 조금 더 솔직하게는 내 삶에 예술을 선택하면서부터 늘 부족했던 ‘돈’이었습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채워야겠다는 욕망으로 시작한 본 사업은 허기를 달래듯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느덧 사업은 종료되었고, 돌아보니 채워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돈’이라는 건 있으나 없으나, 많거나 적거나 부족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역량’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할 터인데 전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몇 달간의 일정한 소득에 길들여졌을 뿐입니다. 내일의 걱정이 다시 오늘로 돌아온 셈이죠.
하지만 ‘불행’ 가운데에서도 ‘다행’은 존재했습니다. 채우는 법이 아닌 비우는 법을 알았다는 것, 늘 하던 걱정의 형태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 정말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하자센터에서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 때 두 번 모두 협업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비움’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 시작되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래서 시작이 두려웠던 <예술과 일>에 대한 회의를 통해 나 자신과 예술의 간극이 조금씩 헐거워졌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의 무기를 앞세웠고 그 끝에서 어떤 방어책 없이 무방비상태가 된 나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른 예술인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짱짱, 용용과 함께했던 <리필극장>은 초기에 Re(다시)Feel(느끼다)이라는 취지로 기획되었지만 ‘무한리필가게’에서 영감을 얻은 저는 거기에 Refill(다시 채우다)라는 의미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이 빈 무대를 채웠고, 대사를 통해 잃어버린 감정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 무한리필가게가 괜히 제 눈에 보인 건 아닐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협업에 자신감이 붙었고, 다음 행사 때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성연, 용용에게 협업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낭떠러지를 맛봤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없습니다. 쉽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함께하는 작업보다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아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계획한 것들을 모두 뒤엎고 다시 모든 걸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각자의 Pre한 이야기를 빈 테이블에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Pre-러브레터>가 탄생되었고, 연극(드라마) 그 이전의 이야기를 영상(다큐멘터리)으로 담아 함께 진행하는 ‘드라멘터리’라는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두 번이나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세 번째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무엇으로 날 채울지에 대한 걱정에서 형태가 조금 바뀐 셈이죠.
근10년 간 연극을 해오면서 예술이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디선가 동아줄이 내려왔고 썩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잡으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하자센터에서의 6개월 역시 제게 내려온 동아줄이었습니다. 단지 돈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얻었다는 생각을 하니 썩은 동아줄은 아닌가봅니다.
|고니(이성권)
Q: 탈조선이 꿈인 ‘여성’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번 파견 사업의 경험은?
A: 아무리 생각해도 민망한 답변이네요, 하하.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탈조선’이라는 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는 것이요. 하지만 제가 한국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 불평등과 차별, 경쟁과 고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6개월간 하자에 머무르면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쓸데없다고 말할지 모를 우리의 지지부진한 회의에서 저는 적어도 외롭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나이와 경험이 가장 적었고 채식을 하는 페미니스트인 제게 모든 순간이 유쾌하지만은 않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저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의 고민을 저의 작업에 녹여내면서요. 이로써 하자 덕분에 저의 탈조선 프로젝트는 잠시 미뤄두렵니다!
6개월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성연(전성연)
Q: 다른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추천사
A: 안녕? 나는 용용이야. 나는 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어. 그러다 보니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너무나 당연시했었기에 하자에서의 시간이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 같아.
사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조금 어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냥 갑자기 별명을 만들어야 하고, 모두들 나를 낯설게 바라보지 않으니까 오히려 부끄러움이 많은 나에게는 좀 멋쩍은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아. 이제는 시간이 지나고 날 스스로 용용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열린 공간, 열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편해진 것 같아. 이런 과정에서 작업을 ‘내’가 아닌 ‘우리’가 진행하게 되었고 점점 내가 열리고 확장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실 진행할 때는 고민이 많았는데 되돌아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 뭐, 결과적으로 나는 상당히 만족스럽고 사실 더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다양하고 재미난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건 또 내가 하기 나름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