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게임은 20~30명이 8~10주에 걸쳐서 세계의 50가지 위기들을 해결하는 게임이다. 각자 나라를 정하고, UN, 세계은행, 무기상인 등의 역할도 정한다. 나라마다 자원과 인구상황이 다르다. 4개의 층(게임에서는 아크릴판)이 있고 우주, 하늘, 지상, 해저로 나뉜다. 모든 위기들을 해결하고, 모든 나라들의 경제 상태가 시작할 때보다 나아지는 것이 목표다. 누군가 소수의 병력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든지, 나라들을 서로 이간질하는 방해꾼도 있고, 우연적인 요소로 날씨의 여신이 존재하는 등 정말 복잡한 게임이다.
유일하게 여학생들로 구성된 ‘재아피스’가 사방에서 날아온 공격으로 초토화 된 상태에서 마무리 되었던 세계평화게임. 핵전쟁의 위기를 거치며 진행된 세계평화게임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그동안 학생들은 활발하게 협상을 진행하고 거침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지만 게임의 재미에만 푹 빠진 나머지, 오히려 게임의 목표인 위기 상황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점점 소홀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나라의 상태가 엉망이 된 재아피스 대통령과 내각 구성원들이 실의에 빠져 게임을 계속 할 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이었어요. 진행자를 포함한 외부인들의 개입을 최소로 하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지요. 우리는 이 상황을 세계평화게임의 창안자인 ‘존 헌터’에게 알리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는 게임의 진행을 잠시 멈추고 지금의 상황을 학생들과 함께 살피면서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전체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차분히 그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은 스스로 현재 상황과 그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비 불균형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협상이 잘 되어가던 국가 간에 협상 조건이 잘 조율되지 않았던 것, 그로 인해 서로에게 핵공격의 위협을 했던 것, 그 외에도 여러가지 오해들이 쌓여 서로 간의 신뢰가 깨져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단 2회의 수업만을 남긴 상태에서, 23개의 위기 상황 중 10개의 위기가 해결 과제로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토론이 끝난 후, 원래 게임의 목표에 집중하여 플레이 할 의향이 있는지 각 모둠 별로 모여 상의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재미만을 위해 전쟁을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밝힌 국가도 있었고, 신의를 져버린 산토니아 공화국에 복수를 하기 원했던 재아피스는 결국 마음을 모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거기에는 세계은행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선언과, 분한 감정을 내려놓고 오히려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을 제안한 재아피스의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모든 위기들이 해결 될 기미가 보이자 학생들은 어쩐지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마지막 한 가지 위기 상황만 남은 상태에서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하기까지 했으나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 학생들 덕분에 모든 위기 상황들은 간단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핵공격을 준비했던 몇몇 학생들의 노력은 다행스럽게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각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는 중요한 역할로 정의된 ‘교란자’는 정체를 들키는 것이 겁이 났던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재판과정에서 처벌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결국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교란자를 제압했다는 것은 큰 성과라며 만족해했습니다.
모든 위기가 해결 된 후, 날씨의 신이 승리 선언을 하고 시상식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였습니다. <인권상>에는 나라 간의 조율을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활동했던 국제연합의 사무총장이, <전략상>에는 게임판 전체를 꿰뚫고 자국의 대통령까지 깜박 속이며 모두를 놀라게 했던 녹서스의 국무총리가, <평화상>에는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문제해결에 이바지 했던 세계은행 부총장이 수상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소감문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거나 어려울 것 같았다는 말로 시작해, 이 복잡하고 많은 위기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점차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되었다는 생각들을 적어주었습니다. 또한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있지만 ‘대화를 통해 해결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서술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여타의 게임들처럼 정해진 규칙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생각, 또는 판단과 나의 말이 더욱 중요하고 또 거기에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학생들도 보였습니다. <인권상>을 수상한 국제연합 사무총장은 게임에 참여하다보니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같았다며, 실제 그 역할이 얼마나 바쁘고 힘들지 조금이라도 체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평화와 폭력이 공존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게임을 통해 두 개념이 서로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존 할 수 없다’는 답변 중에는 폭력이 가져오는 혐오와 적대감이 평화를 해치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고, 평화를 위해서 때로는 필요하다는 답변, 둘 중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변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평화에 대해 더 넓고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답변들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소감문을 통해 게임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고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세계평화게임에 처음 참여한 문래중학교 학생들은 수차례 닥친 위기의 순간에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가슴 졸이게 했지만, 결국 승리의 상황까지 이뤄냈습니다.
참가자들 서로의 깊은 유대 관계가 중요한 세계평화게임. 게임 끝까지 서로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고자 했던 노력, 원하는 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힘을 믿고 인내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만나는 일상속 선택의 순간에서도 잘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 새라(신주희, ‘파코루도’ 대표 ), 바다(김진옥, 교육협력팀 판돌)
*자유학기제로 문래중학교 학생들과 만난 세계평화게임의 진행 과정은 오는 11월 24일(금) 저녁 8시 30분, EBS ‘新 교실혁명 <자유학기제>’를 통해 방영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