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본격적으로 쌀쌀해지던 지난 10월 말, 하자에서는 <페미니즘 청소년극> 공연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연극은 극장 안 무대에서 이뤄지지만 이번 공연은 극장이 아닌 하자센터 본관 1층의 영셰프스쿨 식당과 마을서당, 그리고 목화학교를 무대로 이뤄졌습니다. 공간도 색다르지만 주제도 색다른 <페미니즘 청소년극>의 작가 ‘호랑이기운’에게 이번 공연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김) 저희는 대학로에서 극작을 하던 사람들이고, 공교롭게도 나이가 모두 86년 호랑이띠라서 ‘호랑이 기운’이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호랑이띠 여자는 기가 세서 남자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희는 페미니스트로서 그런 풍조를 풍자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 페미니스트 극작가모임 ‘호랑이 기운’으로 저희를 부르고 있어요.
페미니즘 청소년극, '체인지 드럭' 중
Q2. 청소년극, 그 중에서도 페미니즘과 성을 주제로 다룬 계기가 있을까요.
김) 저희는 청소년극을 주로 써오던 작가들인데,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성차별이나 여성혐오와 같은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건강하고 유용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성교육 지침서가 아닌 공연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이) 성교육이라는 말에서 저희는 교훈적이거나 교조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실제로 청소년들이 공교육 현장에서 받고 있는 ‘성교육’이라는 것도 사실은 생물학적 성교육에 그치거나 청소년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생물학적 성교육을 넘어서 성과 사랑과 자기 정체성과 나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성교육이 진정한 성교육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페미니즘 청소년극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청소년극, '중학생들' 중
Q3. 다루기 쉬운 주제가 아닌 만큼 작가로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임) 저는 극을 쓰면서 ‘내가 생각하는 학생’을 대상화하거나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답을 내려놓고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많았고 또 아무래도 청소년극인 만큼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생을 좀 했습니다.
김) 청소년극을 쓰려고 할 때 저의 청소년 시절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먼저 여학생들이 통제를 받는 방식과 남학생들이 통제를 받는 방식이 제가 청소년이었을 때와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하는 것이 있었고 임정민 작가의 말처럼 제가 청소년극을 쓰면서 청소년을 타자화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아직까지도 두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페미니즘 청소년극'이라는 말이 기존의 사전적 단어는 아니고 저희가 조합을 해서 극의 제목으로 쓰게 되었는데요, 저희는 이번 극이 페미니즘과 청소년극을 결합했을 때의 새로은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러 오신 분들이 페미니즘과 청소년극에 대해서 어떠한 인상을 가져가실지 걱정스러웠고, 이번 극이 그 두 가지를 잘 대표할 만한 좋은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Q4. 이번 공연을 소개해주세요.
이) 이번 공연은 하자센터의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보는 ‘장소 특정형 공연’입니다. 그래서 하자센터의 세 공간을 돌아다니고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다른 곳에 모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일상의 공간에서 관객들과 감각을 같이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연입니다.
임) 하자센터에서 학생들이 항상 쓰던, 자연스럽게 지내던 공간에 갑자기 배우가 들어오고 거기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을 때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인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아 이 연극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는데’ 기억날 수 있다면 더 기쁠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 청소년극, 'Go Back' 중
Q5. 3개의 공연이 끝난 후에 있을 토론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요?
김) 보통의 관객과의 대화에는 관객들이 제작진 혹은 배우에게 질문하는 형식이라면 저희는 저희가 관객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마련했어요.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나오는 답변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수다 혹은 토론처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하려 했습니다.
이) 보통 공연이라는 것이 공연자들이 무언가를 보여주면 관객들은 집에 가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관객의 주 대상층이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공연이 쌍방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발생하는 질문을 함께 나누고, 정답은 없더라도 그 토론을 통해서 조금 더 질문이 나아가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Q6. 이번 공연이 어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한국사회 안에 제대로 된 성교육이 존재했나,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들이 이번 극을 통해 본인이 가진 성 가치관이나 본인의 청소년기를 반추하면서 내가 청소년기를 지나며 어떤 사람이 되었나를 느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저는 청소년극을 성인들도 꼭 봐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꼭 10대만이 청소년이 아니고, 나이는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 이행기'를 20대 중반까지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 마음은 청소년기에 머물러 그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도 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Q7.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 저희는 청소년들이 보통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가면 200명씩 극장에 들어가서 한꺼번에 지정되어 있는 공연을 보는 식으로 일방적인 관계 안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이번 <페미니즘 청소년극>으로 대안학교, 혁신학교를 포함한 모든 일반 중/고등학교 공교육 현장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다음 작품은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라는 제목의 성교육극으로 서울시립청소년건강센터와 함께 작업하고 있기도 하고요, 내년에는 대학로에서 페미니즘 연극제가 있는데 저희 호랑이기운이 그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예민한 감수성과 다양한 고민을 들여다보는 연극. <페미니즘 청소년극>과 같은 시도가 하자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고 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공연의 마지막 토론시간, 청소년들은 많은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공연과 공연 후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지금 청소년으로서 갖고 있는 성, 젠더, 자아정체성 등 자신에 관한 물음을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