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진행된 사피엔스 어린이 부족 캠프는 ‘사피’라는 로봇이 살고 있다는 ‘서서울예술교육센터’ 행성에 어린이들이 모이게 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랜 시간, 외롭게 별을 지키고 가꾸고 돌보아온 사피가 어린이들을 자신의 별로 초대해, 함께 놀며 별을 가꾸는 일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지요. 이 초대장에 응답한 30명의 어린이들의 2박 3일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피별에 초대받다>
물, 불, 빛, 바람, 흙, 소리
어린이들은 2박3일의 캠프 동안에, 여섯 가지 자연의 재료들로 사피의 별을 가꾸고 또 즐겁게 놀며 작업하는 부족 생활을 하였습니다. 헤어질 때 사피에게 남기고 갈 부족별 선물을 남기는 것을 고민하면서요.
‘손과 발로 빚어내는 흙 건축가’ 흙부족은 황토를 가지고 놀며 흙의 감촉을 느껴보며 옷을 염색해보기도 하고, 흙을 가지고 벽돌을 만들어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빛을 모으고 퍼뜨리는 빛 예술가’ 빛부족은 내내 흐린 날씨에도 인공의 빛을 만들고 빛에 둘러싸여 춤추고 노래하였습니다. ‘노는 법을 탐구하는 물 과학자’ 였던 물부족은 비가 자주 오는 바람에 ‘물의 날’을 맞이하며 즐겁게 놀았는데요, 그 과정에서도 사피에게 남길 점적식 농법과 빗물 정수시스템을 고안하였다고 합니다. ‘화덕을 지키는 불 마술사’였던 불부족은 불을 피울 장작을 패고, 화덕에 불을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준비하는 등 노동 강도로 치면 ‘하드캐리’ 부족으로 꼽혔는데요, 쥐불놀이나 달고나 만들기를 하기도 하며, 다른 부족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요. ‘바람의 길을 찾는 탐험가’ 바람부족은, 함께 만든 바람춤을 추며 바람을 실컷 느끼기도 하고 파란 바람집 아지트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리를 선물하는 악사들’이었던 소리부족은 사피의 별에 찾아온 모든 부족들의 소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로 만나게 하는 연주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쇼하자 소리부족의 공연>
사피도 부족이 필요해
모든 어린이들에게 부족이 있는데, 사피는 홀로 있는 상황. 사피의 부족친구들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제안하며, 사피의 친구를 만드는 워크숍이 캠프 중간에 열렸습니다. 각 부족은 부족별 정체성이 담긴 로봇 친구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처음 해보는 어린이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물을 찾고, 빛을 쏘고, 드럼을 두드리는 멋진 친구들을 만들었답니다!
한여름 밤, 사피와 노닥노닥
올해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서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하자의 창의교육팀과 작업장학교 청년과정이 힘을 합쳐 꾸린 사피엔스 캠프는, 어린이들이 낯선 존재를 만나 친구가 되고, 또 나와 나의 부족을 넘어 하나의 별을 가꾸는 마음을 길러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사피라는 로봇을 어린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부족활동의 자연 매체와의 괴리가 느껴져 의아해하면 어떡할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요, ‘사피의 별에 찾아온 우리’라는 이야기와 맥락 안에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어린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술의 분리는 어쩌면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기술을 사용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겠지요. 낯선 친구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마음, 돌봄의 현장에 손을 보태는 마음, 그 과정에 즐거운 놀이가 끊이지 않는 여유가 캠프의 기억조각들로 어린이들에게 오래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날, 부모님들을 초대해 펼친 쇼하자에서, 사피에게 줄 선물을 진지하게 전달하던 어린이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다음 여름에 건강히 또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