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교육과 학습이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는 점에 대해서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장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학교 공간을 생각해 본다면, 교육공간을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기회를 열어준다. 학교는 학생들이 하루 중 가정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이자 일상의 공간이다. 친구들이 있으며, 가끔 자기도 하고,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운동장을 뛰어놀기도 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의 다양한 장소들을 살펴보면, 뛰면 안 되는 이동통로 복도는 친구를 때리고 도망가기도 하고 레이스를 펼치는 경주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친한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산책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계단은 또 어떨까?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혼잡스러우면 안 되고, 넘어지면 안 되기에 절대 뛰지 말아야 할 이곳은, 자신의 몸이 계단 몇 개에서 뛸 수 있는 몸인지 실험해 보는 체력 테스트의 장이 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말 그대로 하루의 삶을 이곳에서 보낸다. 친구들이 있기에 또 선생님이 있기에 이 공간은 일상적이며 매우 정치적이고 또한 사회적인 공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확인하고 성장시켜 가는 곳이 된다. 추억은 덤으로서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속에 켜켜이 쌓이면서 말이다.
어린이에 대한 시각 : 시민으로서 어린이
학교 사회에서 ‘어린이가 매우 중요한 존재’이며, ‘학교의 주인’이다 라는 이야기를 다양한 표현으로 하고 있다면, ‘2016 움직이는 창의클래스’에서는 보다 확대해서 어린이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은 어린이들을 시민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시도였다. 누군가는 ‘왜 어린이가 시민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시민이라 함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한 의구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본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로서 태어남과 동시에, 중요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인식되고 실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어린이는 시민’이라는 철학을 갖고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린이는 시민으로서, 중요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본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어린이는 시민이다’라고 말을 하면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것일까?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이 참여할 판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시작된 ‘움직이는 창의클래스’는, 초기 기획과 로드맵 설계과정에서 몇 가지 가설을 설정했고, 기록작업(Documentation)을 진행하고 분석하면서 어린이들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맥락 철학 : 초기 기획의 핵심인 ‘맥락’
어린이들이 유연하게 프로젝트의 과정에 참여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기획 초기 가장 논의를 많이 했던 내용은, 어떤 맥락에서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였다. 이 프로젝트가 어린이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될 수 있을지, 공간을 바꾸자는 직접적인 말을 건네기 전에 이들의 입장에서 본 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는 맥락의 시작을 갖기 위해 몇 가지 가설을 설정했다.
학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자 전문가 | 졸업을 앞둔 사람들 초등학교의 최고 학년인 6학년 어린이들과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면, 이 어린이들은 이미 5년의 시간을 삼양 초등학교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학교 공간의 활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공간전문가들’이 아닐까 하는 가설이었다. 또한, 곧 졸업하는 마지막 학년이기에 공간을 만들어도 스스로 사용할 시간은 부족할 터. 과정의 설계가 섬세해야지만 어린이들의 몰입도가 높아질 수 있겠다는 가설들을 세울 수 있었다.
프로젝트 운영 원리 : 기록(Documentation)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수업으로서 다가가기 위해 고정된 교육과정은 선택하지 않았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어린이들에게 이 경험이 어떠한 의미가 될 것인지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중심으로 모든 수업 과정은 기록을 통해 정리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함께 수업하는 교사들 간의 주 1~2회 온/오프라인 협의 과정을 통해 지난 수업으로 이해된 지점과 다음 수업에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사안들을 정리하였다.
기록작업 내용과 기록작업을 통해 발견된 지점들을 어린이들과 공유하고 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과정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움직이는 창의클래스’ 역시 하나의 경험이자 삶의 일부분으로서 생각을 회상하고, 되돌아보고, 재검토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다음을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기록물은 새로운 논의의 기반을 함께 세우고, 서로의 생각을 섞어, ‘공동의 아이디어’를 마련하는 초석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참여 교사들의 협의 과정
‘민주주의’가 가장 기본이 되는 운영원리이자 철학으로서 기록작업이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어린이들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하고, 서로 다른 지점들에 대해 발견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는 ‘교사들 간의 협의 과정’에 있다. 협의는 주 1~2회의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협의 과정이 중요했던 또 다른 이유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는 우리가 모두 프로세스를 공동으로 만든다는 과정적 민주주의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프로젝트를 마치며 : 어린이, 어른들의 거울
하반기, 어린이들에게 어디를 바꾸고 싶은지 처음 질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대번에 나온 대답은 ‘위험한 곳’, ‘노후화된 곳’을 찾아서 없애자는 말이었다. 절망스러운 마음과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 동안 어린이들과 학교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학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의 시간을 가졌는데, 교육청의 시설관리과 공무원이 할 법한 대답을 듣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금 지난 한 학기 동안의 경험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이들이 했던 말들’을 되돌려 주자 점차 작업과 자신들의 일상을 연결 짓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종종 뭔가 되었다 싶으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기분들을 지속적으로 느끼면서 9개월간의 시간을 보내었던 것 같다. ‘학교 안과 밖은 이렇게 다른 것일까?’,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장소인 것일까?’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며 만약 다음 프로젝트는 어때야 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답은 2017년 1월 방문한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만난 어느 교육자(아뜰리에리스타)의 말에서 찾아본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생각을 알고 있지, 5살만 되어도 성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 마치 거울처럼 성인들의 생각을 반영해서 행동하기도 하지. 하지만, 거울은 반대잖아?”
이 말은 마치 어린이들의 속마음과 숨은 의도들을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말처럼 다가왔다. 너무나 유능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어린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성인이 만들어 놓은 사회 안에서) 중요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성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동하며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 ‘다른 사회’로서 다가가야 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2017년, 어린이들에게 보다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민주적인 환경’ 만들어 보자는 다짐을 하며, 많은 사람과의 추억과 즐거움이 담겨 있는 ‘2016 움직이는 창의 클래스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