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물레와 베틀을 만들고, 실잣기와 직조를 배워 온 목화학교. 지금은 졸업식 준비에 한창인데요. 지난 해, 학기를 마무리하며 쇼케이스에 목화전시를 열었습니다. 농사부터 천짜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도구들과 작업결과물을 잘 모아놓고, 한 땀 한 땀 손수 제작한 목화작업 안내서도 가져다 놓았지요.
이 전시는 지난학기 공간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강사판돌 고나와 함께 준비한 것인데요. 이런저런 결과물만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물레와 베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서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살려,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완성한 세 권의 안내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수확한 토종목화부터 씨아, 물레, 베틀과 안내서가 전시되어있는 하자 본관 쇼케이스의 모습. 사이사이에 목화 재배 방법을 소개하는 포스터와 달력, 목화학교의 해외교류파트너인 일본 이와키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무명실타래와 책자 등을 볼 수 있게 해두었다.
목화작업을 위한 세 권의 안내서
| 첫 번째- 물빛의 <글로 만든 실> “제가 만든 책의 제목은 <글로 만든 실> 인데요. 고나가 물레질 하는 과정을 글로 써보라고 하셔서 도화지에 쭉 적었는데, 길게 이어진 글씨들이 멀리서 보기에 마치 실 같다고 하셔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물빛의 <글로 만든 실>에는 목화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사람 손을 탄 뒤에 천천히 실이 되어가는 솜의 여정이 실처럼 가지런히 연결되어 이어집니다.
“이 책을 우연히 펴들게 된 당신에게 작은 글씨로 조잘거리듯 풀어진 이 가느다란 실을 꼼꼼하게 따라가 보기를 권한다.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실이 툭, 하고 끊어지는 때도 생기고, 꼬였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며 저자가 숨겨온 재기발랄함을 만나는 예상치 못한 수확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밝혀졌다. 그의 중얼거림 속에 담겨진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올이 넘는 이야기 꾸러미가 물레질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이 책의 독자에게 드리는 추천의 글 (목화학교 강사, 고나) 中
| 두 번째- 랑의 <직조도구백과>
‘직조를 하는데 필요한 도구를 설명하는 백과사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랑의 <직조도구백과>는 입체적으로 도구를 묘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밭으로 와다다 달려가서 손으로 목화를 토도독” 딴 뒤에는 씨아로 “끼기긱 끼기긱” 씨앗과 솜을 분리하지요.
처음엔 그림 그리기가 익숙하지 않아 걱정했지만, ‘못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준 고나와의 연습 덕분에 평소 성격대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분명한 설명과 섬세한 그림이 곁들여진 책을 만들었습니다.
“도구를 매개로 목화열매의 여정을 기록한 직조도구백과는 도구를 직접 사용해 본 사람만이 설명할 수 있는 자세함을 지니고 있는 책이다. 목화 솜과 씨앗을 분리하는 기능을 가진 씨아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팝업북 형식을 빌려오기도 하고, 물레에 실이 간기는 모양새, 베틀에 실을 거는 모양새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실을 붙인 부분이 도구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씨아를 돌리는 소리가 왜 “끼기긱 끼기긱”이어야 했는지, 카딩기를 사용하면 왜 “사사삭 사사삭”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는지, 베틀에 실을 걸며 왜 “낑낑” 댈 수밖에 없는지를 상상하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의 독자에게 드리는 추천의 글 (목화학교 강사, 고나) 中
| 세 번째- 담의 <직조수순>
직조순서를 말하는 수순(手順)에는 ‘손 수(手)’자가 쓰입니다. 이 책은 직조의 순서를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손의 감각을 느껴보고 기억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페이지를 ‘만져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목화솜을 따고, 씨앗을 발라준 뒤에는 솜을 곱게 켜서 고치상태로 말아줍니다. 이것을 물레에 달아 덜거덕 덜거덕 돌리고, 그렇게 만든 실을 끓는 물에 삶고, 말려, 직조를 할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직조수순은 백 마디 말보다는 손끝으로 직접 만져보고, 냄새맡고, 눈으로 느껴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목화솜의 풍성하고 흐뭇한 풍경을, 선선하게 목화솜 위로 부는 바람의 무게를, 부숭부숭한 솜을 손으로 ‘쭈욱 쭈욱’ 뽑을 때 손끝에 머무는 은근한 힘의 감각을 설명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각각의 페이지가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책을 쭈욱 펴게 되면 결국 모든 페이지가 이어진 한 장이 되는 직조수순. 페이지를 넘기면서 ‘땅 속의 작은 씨앗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저자가 경험했을 느리고도 바지런한 호흡을 느끼며 ‘만져’ 보시길 권한다.”
이 책의 독자에게 드리는 추천의 글 (목화학교 강사, 고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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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학교는 오는 2월 18일(토)에 첫 번째 졸업식을 엽니다. 그곳에서 물빛, 랑, 담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의미에서 ‘전환’의 시간으로 가져갈 목화학교에서의 경험들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세 사람이 졸업하더라도 이들의 경험은 책으로 남아 새로 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글로 만든 실처럼 간질간질하게, 직조수순을 밟아가듯 차례차례, 직조도구백과 속 입체도구들처럼 친절하게요. 손으로 느끼고 몸으로 기억하는 1년의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나가는 목화학교의 첫 졸업생들에게 격려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