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 숙제없는 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신입생들이었지만 스스로 과제를 부여하여 여름방학을 보낸 만세와 마나의 일지를 정리했습니다. 만세는 아프리카댄스 수업의 강사들인 쿨레칸의 여름을 따라다니며 쿨레칸의 다양한 활동을 따라 배우고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마나는 영상작업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매일 세컷 사진을 찍어보면서 화면의 구도와 연출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자 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더도덜도 아닌 세컷만 찍기로 정한 것은 매우 도전적이지만 그래도 참 보람있는 실험이었습니다. 벌써 추워진 날씨지만, 그 뜨거웠던 여름으로 잠깐 돌아가봐주세요!
만세의 뜨거웠던 여름방학 <쿨레칸 인턴일지>
저 만세는 7월 25일-8월 20일을 쿨레칸 인턴으로 지내면서, 이러했습니다.
월요일날 그냥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마지막(8월 8일)이라는 워크숍 때문에 멀게만 느껴졌던, 인턴십 마지막 날이 하나 둘 다가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펜타포트가 끝이 나고 수요일 워크숍도 끝이 났고, 목요일 ‘기쁨의 동네북’ 워크숍도 끝나버렸습니다.항상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더 빨리 끝이 찾아오는 느낌입니다. 이제 막 쿨레칸 사람들과 이야기가 트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겨났는데, 인턴 기간이 끝이 나버렸네요. 정말 뭐가 정말 빨리 지나간 느낌의 한 달이었어요.
수요일 쟝싸 워크숍이 끝이 나고, 밥을 먹으며 인턴 기간 어땠냐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답하면서 언제 다시 쿨레칸 멤버들과 또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그땐,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갈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요일 날도 이제 조금 저 친구는 어떤 친구인지 알 것 같고 정이 쌓여가고, 더 이상 다음 수업의 걱정이 아니라, 어떤 아이들의 몸짓을 다음 주엔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가득찰 때, 다시 끝이라는 게 찾아와버렸어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 투성이었지만, 한 달이라는 쿨레칸 인턴으로 자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춤을 깊숙이 마음껏 출 수 있었던 것도 저를 행복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 소중한 인연들이 쌓이고, 춤으로 가까워지고, 춤으로 이야기했던 날들도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개학을 하고 익숙한 학교 책상에 오랜만에 다시 앉으니, 몇 일 되지도 않았지만 보고 싶은 얼굴들이 생각났습니다. 한 달이라는 어떻게 보면 길고, 짧으면 짧은 그 시간이 누가 정말 빨리 공 던지듯 ‘훅-’하고 지나갔습니다.
근데 그냥 빠르게, 지나가버린 게 아니라 그 공에 사진처럼 추억들이 콕 박혀 있습니다. 아마 제가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서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시간들이었어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일기를 써서 그런 거 아닐까, 정말 다행입니다. 그저 지나가버린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방학 되기 전 학교에서 인턴십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신나서 마음대로 머릿속에 그려봤을 때, 너무 멋진 방학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멋진 방학이었는데,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고 지치기도 많이 지쳤습니다. 매일 녹초가 되어서 집에 들어왔고 그냥 그 상태로 안산의 집에서 서울로 가는 지하철에 다시 올랐습니다. 다음 일정이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춤을 추려고 몸을 풀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몸 구석구석 남아있던 힘들이 생겨났습니다. 한 달 동안 저를 움직이게 했던 건 춤이었나 봅니다.
일지를 쓰려고 일기장을 들춰보고 기억을 들춰보니 틈틈이, 그리고 아주 사소하게 사람들의 도움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소영, 용일, 슬비는 워크숍 준비나 참가로 붙어있던 시간이 엠마 다음으로 많았는데 어떻게 보면 그저 한 달 잠깐 왔다가는 친구에게 너무 많은 애정을 주셔서 감사하단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감사합니다. 소영은 가끔 불쑥불쑥 이것저것 물어볼 때마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답해주셨습니다. 소영의 음소거 웃음과 ‘열라’ 혹은 ‘졸라’가 많이, 아주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용일은 정말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가끔 짓궂은 장난을 주고 받기도 했고 저희 친오빠보다 더 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용일의 “새깽~~”이 그립겠죠. 슬비는 처음 둔둔치는 것 보고 아주 잠깐 넋을 잃었는데, 그 뒤에도 발라폰이나 둔둔을 연주하는 슬비를 보려면 정신을 바짝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항상 뒤에서 혹은 앞에서 우리에게 음악을 주었죠. 전 슬비의 귀여운 배가 그리울 것 같습니다. 가끔 밥을 밖에서 함께 먹을 땐 채식하는 저 때문에 같이 메뉴를 고민해주어서 그때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엠마는 뭐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엠마에게 가지고 있는 감사함은 정말 어떤 단어로도 문장으로도 표현이 안 됩니다. 그 외에 소라, 중혜, 까르, 보섭, 진솔, 지선, 써니, 권금, 유리, 선영, 진나, 슬, 보름, 새날, 민아, 파영, 뉴미, 호석, 루이, 현수, 은민, 승목, 겨레, 성학, 가민, 태동 그리고 아미두와 복철 감사합니다.
종종 그렇게 항상 감사함에 벅차고, 춤을 추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보면 아주 살짝. 학교를 뒤로 한 채 쿨레칸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래 친구들이 있는 곳 그리고 책과 공부들과 만나고 싶단 생각들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조금 놀다가, 책도 보다가, 공부도 열심히 하다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낯설긴 하지만, ‘마지막 일정’, ‘마지막 일지’, ‘마지막 인사’들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ㅎㅎ 방학동안 쿨레칸 인턴십은 방학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늦잠을 뺐어서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밉긴 하지만, 춤을 추고 ‘춤’으로 이야기를 공유하고 ‘춤’으로 놀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1.
전에는 시골 다녀오면 우울했는데 이제 안 그런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더위에 집에만 박혀있는 게 답이 아니구나, 알았고. 내 주위에도 울창하고 경이롭고 공기 좋고 시원한 숲이 있다는 게 이제 놀랍지 않다. 우리동네 꽤 괜찮은 산도 있고 나무 울창한 곳 꽤 있었다. 내가 안 봤을 뿐. 나만 알기 아쉬운 곳들이 많았다. 아주 구석의 작은 자연부터 엄청 큰 자연까지. 많이 봤다. 내 생각보다는 많았다. 동물식물 등등. 그런데, 그렇게 자연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내가 그거에 만족하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다. 서울 숲에서 느낀 걸 우리 집 앞에서도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2.
시골에 가면 눈을 두는 곳마다 자연이여서 당황스러웠다. 숲은 전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통째로 감상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구체적으로 보는 게 힘들었다. 그나마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던 건 각각의 식물들? 그런데 식물에 대해 전혀 모르니 보이는 것도 없고. 고라니는 구체적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숲이 엄청 많은 곳에서 뭘 찍어야 할까 뭘 관찰하면 좋을까 진짜… 그랬는데 서울 숲에서 더운 날 숲 속에 평상에 사람들이 모인 걸 보고 저런 상황을 관찰하고 상황을 찍을 수 있겠구나 했다.
3.
집에 가만히 앉아있던 날이 하루도 없었다. 초반에는 어딜 쏘다니느라 우리 동네를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다. 막판에 동네 투어를 많이 했는데, 5년 동안 우리 동네를 이렇게까지 돌아다니긴 처음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다. 앞으로는 우리 동네를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 이렇게 자연을 찾아서 동네를 산책하는 건 처음이고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다. 수명산은 규모가 작아서 평소에 잘 살펴보지도 않고 무시를 했었는데, 작아도 그 안에 있는 나무, 숲, 풀, 벌레, 흙 등등은 규모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뭐 하나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작게 느껴졌던 그 산도 크게 느껴졌다. 동네의 작았던 것들이 크게 느껴졌다.
4.
초반에는 시골 그리움에 눈이 가려져 있는 나의 시선을 바꾸기 위함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사진에 대해 뭘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근데 히옥스 코멘트를 듣고, 카메라 루시다를 읽으면서 내가 전에는 지나쳤던 생각들을 잡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어떤 생각이 드는지. 예쁜 것, 평소에 보기 힘든 상황이나 대상, 동물, 곤충. 찍지 않고 못 배긴다 하는 대상들이 있다. 그 대상들을 보면 들었던 생각은 ‘나만 보기 아까운 이 걸 다른 사람도 보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이 장면을 곱씹기 위해.’ 근데 그걸 담기가 힘들었다. 찍으면서 색감을 비슷하게 맞추면 그 분위기가 좀 산다는 걸 알아서 색감을 맞추면서 찍었다. 또 그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는 어떤 ‘상황’을 포착해서 찍는 것. (서울 숲에서 평상에서 더위를 피하는 할머니들이나 강아지랑 아이들 등). 또 분위기가 가장 잘 살만한 최선의 구도를 인내심을 가지고 찾을 수 있게 됐다. 찍으면서 사람들 눈총을 많이 받았다. 내가 스토커가 된 기분이었다.
_ 나는 성질이 급했다. 얼른 세 장을 찍고 싶고, 세 장을 다 찍으면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한 시간 동안 느긋하게 관찰하는 것도 힘들었다. 여러 구도를 잡아보지 않고 얼른 얼른 찍어버렸었는데 최선의 구도를 잡으려는 여유가 생겼고, 이걸 찍을까 말까 하는 판단의 여유도 생겼다.
_ 하루에 세 컷만 찍는 게 제일 어려웠다. 초반에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으니까.. 사진을 세 컷만 찍으니까 한 컷 찍을 때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어떻게 해야 잘 찍힐까? 어느 순간 찰칵 했을 때 이상하면 진짜 속상하다. 초반에는 거의 한 대상을 두 번 이상 찍었다. 이젠 안 그러는데 대신 찍을 때 너무 신중해져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사진 찍을 때 마음이 느긋해진 게 좋았다.
_ 나무, 풀, 산, 숲 이런 걸 찍는 게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찍으면서 절대 식상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특이하고 그런 것도 좋지만 진부하다고 생각됐던 숲, 풀, 화분, 나무를 관찰하면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고 그것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흔하디 흔해빠진 화분이나 작은 화단을 찍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물이 몰려드는지 알았다. 작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큰 지도 알았고 우리 동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가꾸는 지도 알았고…
5.
처음에는 생각이 별로 없었고 그냥 너무 기대됐다. 아 뭘 발견할까 내가 뭘 찍을까? 찍으면 찍을수록 서울 속 자연 얘기에 집중하게 됐다. 페이스북에 올리다 보니까 좀 있어 보이는 말을 하려 의식한 것도 있었다. 페이스북에 괜히 올리겠다 그랬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근데 내가 본 것들을 다른 사람도 본다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게 되니까.. 내가 너무 숲 나무 풀 이런 것만 찍나? 이래도 될까? 할 때도 있었는데, 그건 내가 산을 너무 대충 봤기 때문이란 생각이 이제 든다. 그 이후로 산을 계속 집중해서 봤더니 안 보였던 게 자꾸자꾸 보였다.
아쉬운 점은 모든 내용들이 잘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루 찍고 페이스북에 올리고 끝이었으니까. 예를 들면 지난 번에 서울 속 자연 사진 찍을 때 화분에 대해 뭔가 느꼈는데 그 이후로 생각이 진전된 건 없고 새로운 다른 생각들이 잔뜩… 그게 아쉬워서, 화분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을 해볼까? 했는데 그것도 실패했다.
다음 방학 때는 하루 한 그림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