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변화가 이끄는 공간의 변화 움직이는 창의클래스@삼양초 : 학교공간 '이행' 프로젝트의 세 가지 질문
지난 5월부터 삼양초 6학년 5반 어린이들과 함께 달려온 긴 여정, '움직이는 창의클래스@삼양초'가 끝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2학기를 지나며 본격화된 건축가와의 협업 속에 어린이들이 바꿀 장소와 디자인이 확정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하면서 생겨난 몇 가지 질문을 나눕니다.
풍경은 누구의 것인가?
1학기 과정부터 어린이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줄기차게 나왔던 쉼, 그리고 풍경.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일, 풍경을 보며 잠시 멍 때리고 바람을 맞는 시간은 이들에게 양질의 쉼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지요. 그래서인지 학교 안팎의 ‘풍경 보기 좋은 장소’는 굉장한 증언담으로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 의해 이어졌답니다. 여름방학 때 민준이의 제안으로 학교가 위치한 삼양동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산을 깎아 만든 동네의 좁다란 골목,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을 살펴보며, 동네에 사는 어린이들이 너른 풍경을 볼 곳이 사실상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어요. 길고 높은 골목과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만 도착하는 삼양초등학교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풍경이란 집 근처에서 보기 힘든 아주 멋진 장면이란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풍경은 누구의 것일까요? 고층 건물일수록 프리미엄이 붙는, 풍경에도 돈을 내는 시대, 삼양초등학교의 풍경은 모두에게 쉼과 안식을 제공하는 공공재였던 것이죠. 누가 알려주지 않지만 이러한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어린이들은, 학교 안에서 멋진 풍경의 장소이자 쉼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곳들의 목록을 만들어, 공간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최종적으로 몇 가지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성인들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맵핑을 통해 삼양동의 풍경 지도를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곧 완성될 삼양초 안팎의 경치 좋은 핫플레이스 지도, 기대해주세요.
우리의 추억도 역사가 될 수 있을까?
또 다른 팀은 2학기 내내 우리의 추억이 과연 역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학교 곳곳에 남겨진 낙서의 흔적들을 보며, 다른 친구들이 남긴 우정과 사랑의 기억, 일탈하고 싶은 마음, 덕질과 팬심 등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궁금해 했지만, 과연 성인들이 터부시하는 초등학생의 낙서란 것이 존중받을 만한 것인지, 왠지 거대해 보이는 ‘역사’라고 불릴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팀 안에서 열띤 토론이 벌이지기도 했지요.
노은:왜 어른들은 낙서나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우진: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어른들은 낙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면은 옛날에 부모님한테 혼났을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이어받아서 자녀한테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자영: 아, 낙서를 하면 안 된다는 그 생각들이 계속계속 내려오고 있다?
민규: 아니면 더럽게 보여 가지고!
우진: 낙서를 한다고 문화유적까지는 너무 오바라고 생각해요..
자영: 왜 오바라고 생각이 들었어?
우진:낙서잖아요., 낙서는 낙서일 뿐이에요.
민규 : 낙서를 벽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거 아냐?
우진 : 그건 낙서랑 벽화는 다른 거잖아요. 낙서랑 예술품은 다른 거잖아요.
자영: 근데 지금 낙서들이 왜 문화유적으로 남겨졌는지를 돌아봤을 때 단순히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남겨진 건지 생각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우진 : 그 역사적 낙서를 통해서 그 시대를 살펴 볼 수 있어요.
자영: 맞아. 낙서를 통해서 그 시대를 살펴볼 수 있지. 그럼 우리의 낙서도 그런가?
민규: 네. “오늘은 지각을 하였다”
우진: 아뇨!!
자영: 왜 알 수 없다고 생각해?
우진 : 어차피 미래도 이 시대랑 똑같은데 걍 발전되어서 생활만 다를 뿐이잖아요.
민규 : 그 때는 지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우진: 맞아요. 화상으로 할 수도 있고…. 어? 그러네요?
여러 토론들을 거친 끝에, 조금씩 의견의 차이는 있지만 ‘낙서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는 동의를 하며, 아카이빙을 통해 자신들의 낙서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삼양초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 추억(우정)/ 하고 싶은 말 / 재미 / 감정(화남, 짜증) 등”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졸업을 앞둔 6학년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의견을 주었고, 게릴라 낙서장을 통해 임시로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학교는 삶이 담긴 공간인가?
팀을 나누어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여러 가지 질문, 논의들 속에서 쉼과 풍경, 그리고 추억, 소통 등은 6학년 5반 어린이들의 공동의 키워드가 되어갑니다. 11월에는, 그 속에서 추려진 세 장소(텃밭 주변, 뒤뜰, 옥상 앞 공간)를 선정해 건축가와 함께 콜라주로 나타내어 보고, 모델링도 해보면서 공간에 대한 상상을 구체화해나갔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기자단 팀이 꾸려져 교장실에 찾아가 최종적으로 선정된 공간 디자인안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답니다.
학교공간을 어린이의 욕구와 삶이 담긴 공간으로 단번에 전환하기는 힘든 일입니다만,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한다면, 그리고 그 주체로서 ‘어린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학교는 이미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는 이행의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2월 20일, 마지막 수업에는 관심있는 삼양초 내외의 어른들을 모시고 어린이들의 현장 설명회가 오픈 클래스로 진행됩니다. 시공 과정과 변화된 공간의 모습은 천천히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