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반복되는 ‘보육대란’, 연일 CCTV를 통해 폭로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의 등장, 영유아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 키즈 존No Kids Zone’ 등,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변화하는 사회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부의 노력과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 및 교육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적지 않다. 무상보육 시대, 예전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결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육아 당사자들은 여전히 고립감을 내포한 ‘독박육아’라는 단어에 공감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깊은 불안과 막막함을 느낀다.
“‘헬조선’이다 뭐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고,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더 암담해요.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세상 같아요.”
“아들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내가 ‘남자아이’를 이해 못 하는 것인지, 너무 예민한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남들이 부럽다고들 할 만큼 남편이 양육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도 저는 순간순간 너무 화가 치밀어 미치겠어요.”
지난겨울 하자센터는 ‘독박육아’를 경험한 여성들과 당면한 문제를 함께 의논하며 공공의 방식으로 풀어낼 방법은 없는지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한 일하는 엄마들의 모임에서 <사회적 돌봄 조성을 위한 문화 허브>라는 이름의 사업을 제안하였고, 올 한해 하자마을에서 팟캐스트 ‘씽투육아’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밥상 ‘씽투다이닝’, 다세대 돌봄캠프 ‘사피엔스 캠프’가 펼쳐지기도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85년, 100여 명의 여성학자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또 하나의 문화]는 ‘자녀 양육은 우리 모두가 부모로서, 배우는 사람으로서 체험을 통하여 절실히 느끼는 문제로,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불평등 제도의 극복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풀어나가는 첫 실마리’라고 선언하며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라는 이름의 첫 동인지를 출간한다. ‘성별 분업은 자녀 양육에 순기능적인가?(조은)’, ‘부모는 저절로 되는 것인가?(조옥라)’, ‘어머니는 왜 자신 없어 하는가?(조형)’, ‘새로운 아버지상과 '아버지됨'(박성수)’, ‘미래를 향해 열린 어린이의 삶(정진경)’, ‘학교 교육 현장에 나타나는 성차별주의(최재성·강성혜)’,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타난 성차별주의(오애재·이미숙)’, ‘바쁜 부모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를(김영자)’, ‘억눌리지 않을 다음 세대를 위하여(최순영)’ 등 대략의 목차만 살펴보아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질문거리들이다.
[또 하나 문화]는 가부장적인 문화 논리에서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사랑과 성’, ‘돌봄’ 등의 주제를 여성의 목소리로 공론장에 등장시키는가 하면, 1990년대 ‘또문 어린이 캠프’를 비롯하여 2000년 초반 ‘소녀들의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성별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돌봄과 배움의 장을 열어왔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사회구조의 모순을 비판하고, ‘일상’을 성찰하면서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모색한 다각적인 활동은 현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토대가 된 ‘돌봄 사회’라는 구상을 가능케 하였다. 2005년 [또하나의문화]에서 출간한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에는 토건국가적 발전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붕괴하고 있는 ‘근대 핵가족’의 경계를 넘어 따뜻한 돌봄과 즐거운 소통이 가능한 다양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돌봄 사회’에 대한 밑그림과, 돌봄과 배움이 있는 공간으로 마을을 재구성 해나가는 활동들이 담겨 있다.
하자센터는 [또하나의문화]와 2001년부터 ‘소녀들의 페미니즘’, 올해로 6년째는 맞이하는 하자네트워크학교의 ‘고정희 추모기행’ 등 여러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하자허브의 엄마들의 모임에서 시작한 <사회적 돌봄 조성을 위한 문화 허브> 사업에서도 [또하나의문화]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올해 새롭게 시작한 다세대 돌봄 캠프 ‘사피엔스 캠프’는 세대간의 만남을 기대하며 "깨끗한 지구, 다정한 친구"라는 주제로 시작한 [또하나의문화]의 또문 어린이 캠프의 경험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으며, 팟캐스트 씽투육아와 씽투다이닝이 가부장적인 ‘모성 신화’에 갇히지 않는 ‘엄마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었다.
육아 당사자들 간의 만남은 ‘아이를 돌보는 일’이 세상의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기도 하였다. ‘나는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일까’라는 불안감, 매일매일 아이와의 실랑이, 좀체 가시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에서부터 친환경 급식, 자녀의 교우 관계, 학교폭력, 입시교육 등등 자녀가 커가면서 늘어나는 고민거리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미세먼지, 여성혐오, 인공지능과 같은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사회 현안까지, ‘아이를 돌보는 일’을 둘러싼 세상의 불의와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육아’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불안’이 ‘바람’으로, ‘독박육아’가 아닌 ‘공생육아’와 ‘돌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들만이 아니라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일상에서의 ‘돌봄’을 성찰하고, 함께 실천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