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첫 째는, 하자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빛이 나고 있었다는 것. 하자에서의 첫 날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센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앞마당에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세워져있었고, 식당에서는 영셰프들이 분주히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1층의 홀 같은 곳에서는 색종이를 접고 자르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2충에 올라가니 사무공간들이 있었고, 이전에는 여기에 사회적 기업들이 함께 했었다고 한다. 3층 옥상으로 나가보니 지붕에 누어 일광욕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함께 나란히 누어 낮잠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니, 옥상 텃밭에서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다. 하자에는 다양한 일상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니, 복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뭐야, 이곳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제 각각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그것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아닌, 서로를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 누구도 싫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 모두가 웃는 얼굴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서밋 개막식에서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보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빛나는 모습에 매료되어 버렸다. 첫날부터 하자 사람들의 파워에 압도되었다. 공연 후, 정말 연주가 좋았어요 라고 말을 건넸지만 돌아온 반응은 미묘했다. 아무래도 만족스러운 연주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들뿐 아니라 개막식에 참석한 모두가 즐기는 공연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것이 나를 감동시킨 한 가지이다. 내가 즐거우면 된다가 아닌,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했을 때에 비로소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이 안고 있는 작은 앙금과 삶의 힘듦을 서로 공감하고 공유를 통해 전체화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에 호소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되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사람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것들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함,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여기는 것의 중요함을 배웠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창의서밋 마지막 날 진행되었던 씨앗행동이다. 행진 전날 밤, 하자의 청소년들이 기획하는 행진에 두근거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개막식 공연 때와 같은 활기차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일이 되었다. 모두가 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999클럽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전날 밤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대했던 그런 분위기가 아님을 감지했다. 모두가 묵묵히 작업에 몰두해 있었고, 행진에 강한 의지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도 씨앗에 대한 생각을 피켓에 쓰라는 요청을 받았다. 솔직히 "에? 도대체 무엇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GMO에 관한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엇을 주장해야 할지, 왜 주장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쓰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우뚝 서있었다. 물론, 쓰는 것 자체는 간단한 일이지만 자신이 주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없이 주장하는 것에 위화감이 들었다. 하자의 청소년들은 기획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을지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곳에 모인 모두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다. 하자의 청소년들 중에 정말 주체적으로 임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단지 주위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교육이라기보다는 조종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전날까지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던, 활기찬 광경을 목격했기에 그 모습이 더욱 대조적으로 비쳐져버렸다. 그러나 씨앗행진에 참여했던 것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참가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TV나 미디어에서 가끔씩 다뤄지는 데모 관련한 뉴스, 지금까지 의식하지 않았던 씨앗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마주하며 생각하게 되었다. 미디어를 통해서 느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이번에 하자를 방문해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달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막막함,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던지는 의문 등은 공통적인 것 같다. 우리들이 하자센터를 알게 되고 이해하는 것처럼, 하자의 친구들도 노게를 알고 이해해 준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감하는 동료관계를 만들고, 그것이 앞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넓혀져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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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헌 연세대학교
이번에 처음 ‘창의서밋’에 참여해본 것은 아니었다. 1학년 때, 하자와 창의서밋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놀러간 적이 있다. 공간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부족했던 만큼, 당시 큰 울림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서밋은 내게 너무나도 특별했다. 내가 서밋의 주최자이기도, 동시에 참여자이기도 했다.
#개별성을 가진 존재로
시험을 앞두고 오픈챗의 패널로 참가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다. 갭이어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 <노오력의 배신>이라는 책에서였고, 나의 지난 경험이, 그리고 하자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재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공유될 정도로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로 다시 돌아온 이번 학기가 이전 어느 학기보다도 무기력한 상태였고, 스스로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모르는 타인들 앞에 ‘개별성’을 지닌 존재로서 주목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고, 특정 집단에 소속된 내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떨리기도 하면서 설레기도 했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유하고 있다고만 느껴졌던 나의 삶의 파편들을 하나의 '서사’로 정리해나가며, 스스로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남들에게 나누는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라고 하나? 나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맥락화될 수 있을지 좀 더 낯설게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일례로 조한 샘의 말씀 통해 ‘사회적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뿐만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회에, 혹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 자아에 대한 탐색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자아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작업이 이번학기에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의 주인, 행사의 주인
내가 일을 하니까,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였고, 누군가는 즐길 때, 누군가는 일을 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이 즐길 수 있게 판을 까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의, 우리의 즐거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운영자와 참여자, 이 이분법적 분리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발생하는 순간이 포착되면 ‘이게 하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시장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직접 거미줄 치며 놀이 공간에 생기를 더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공간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 의식을 갖게 한다. 공간에 직접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통해 그저 공간을 즐기는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을 같이 꾸려 나가는 주체가 되고,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 '준' 곳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놀이터를 정리할 때가 되면 자신이 거미줄을 쳤던 것을 어른들과 함께 치우며, 공간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비빌기지에서 가래떡을 구워먹는 행위도 참여자가 운영자가 되고, 운영자가 참여자가 되기도 하는, 그 두 위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자의 판돌이 가래떡을 구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워먹고 또 다른 이들에게도 구워주기도 하며, 함께 판을 만들고 함께 만든 판을 확장해나가는 시간이었다.
#코트
하자센터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비빌기지에 가다보니 코트를 챙기지 못했다. 일교차가 큰 요즘, 외투를 걸치지 않은 채로 야외에 있으려니 얼마나 춥던지. 집에 들어오자 마자, 엄마에게 한 소리 들었다. “오늘 날도 추운데, 겉옷도 안 입고 다녔어?” 하자에 옷을 두고 왔다고 하자, 다음에 하자센터에 갈 일이 있을 때 그때 찾으란다. ‘엥? 내가 하자를 언제 갈 지 알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엄마는 종종 학생들이 직업체험이나 성교육을 하자센터에서 받게 한다. 하자에 자주 방문을 해서 하자에 대한 신뢰가 생겼나? 어디에서 비롯된 신뢰인지 몰라도, 두고 온 내 코트를 천천히 찾으란다. 게다가 다음에 이어진 엄마의 말을 나를 더 재미있게 했다. 내일 아침 전화를 해서 코트를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랬는데, 그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빨간 날에도 하자센터는 활짝 열려있을 거라는 엄마의 생각은 또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자에는 항상 나를 반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고, 나의 물건을 소중하게 안전하게 지켜줄 것 같다는 생각. 이것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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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오디세이학교
그 때가 10월 16일 이었을 거예요. 서밋 셋째 날이었는데... 아, 서밋은 하자에서 하는 이야기 축제 같은 건데, 여러 네트워크 학생들이랑 같이 하는 거였어요. 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있잖아요. 인공지능이라든가, 기후변화, 브렉시트(Brexit), GMO같은 문제들이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축제였어요. 셋째 날에는 씨앗 행동의 날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GMO를 생산해내는... 아 GMO요? 유전자 변형 농산물의 약자에요. 이것 때문에 고유 종자가 없어지고 있다는데, 요즘 많이 생겨서 우려가 되고 있죠. 그 날은 GMO생산 기업인 몬산토에 반대하는 행진을 하기 위해서 모두 모인 거였어요. 농부들의 생계유지와 종자싸움. 즉 씨앗 쟁탈전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몬산토거든요.
우리는 행진에 필요한 피켓을 직접 만들기 위해 2층 999클럽으로 내려갔어요. 무슨 문구를 쓸까 고민하다가 ‘흙, 물, 바람, 식물,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농사하고 싶어요.’라고 썼어요. 노란 바탕에 알록달록 글씨로요. 다들 엄청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특히 작업장학교가 만든 피켓은 정말 예뻤어요. 만들기를 마치고 우리는 GMO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강의라고 해서 엄청 지루할 줄 알았는데 짧고 명쾌하고 재미있게 알려주셔서 부담 없었던 거 같아요.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거요? 음.. 아, 몬산토가 쥐한테 실험을 했는데, 10마리 중에 3마리가 암에 걸렸는데도, 그건 자기들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던 거요. 어이가 없었죠. 그 암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실험도 안했으면서. 으, 쥐들이 불쌍해요.
강의를 듣고 저마다 알록달록한 피켓을 들었어요. 드디어 행진 시작인거죠. 두 줄로 섰더니 엄청나게 길게 이어지더라고요. 전 제 피켓과 성미산 학교의 벼를 바꿔서 들었어요. 벼를 드니까 정말 제가 농부가 된 기분이었어요. 작업장 학교의 ‘바투카다’ 연주를 들으면서 걸었어요. 바투카다는 브라질의 퍼커션 합주를 말하는데요. 작업장 학교가 진짜 맛깔나게 치는 거 같아요. 또 몇몇은 긴 장대를 타고 올라가서 행진했어요. 그래서 키가 엄청 커보였죠. 다들 키다리 아저씨 같았어요. 맨 앞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리듬을 맞춰서 걸었는데, 굉장했죠. 완전한 흥분 상태가 되었어요. 마음속에서 끓어 나오는 흥을 어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북소리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즐겼죠. 큰 소리로 외쳤던 “몬산토 아웃!!!” “농부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 “우리 농부 고맙다!!” 이런 구호들도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어요. 구호들을 외치는 걸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전율이 흐르면서 내가 사회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았죠. 집회의 일원이 된 것은 저에게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웃긴 상황이 발생했는데, 국회 의사당과 100미터 이하로 가까워지면 시위, 집회가 금지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린 산책 나온 척을 했어요.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국회 앞에서 산책이라, 나름 아주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런 다음 국회 앞에 나란히 서서 피켓을 들고 어떤 글을 읽었어요. 몬산토의 씨앗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이었고, 왜 그래야만 하는 지에 대해 적힌 글이었죠. 다들 걷는 동안의 즐거움과 흥은 접어두고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죠.
이번 서밋은 저에게 굉장한 기억을 남겨준 것 같아요. 물론 첫째 날도 많은 이야기들을 할 만한 기억이 있지만, 가장 뇌리에 박힌 게 ‘씨앗 해방의 날’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행진을 한 것이에요. GMO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집회가 있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네요. 아, 물론 국회 의사당 100미터 안에서는 산책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