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자유학기제를 통해 학교와 동네를 넘나들며 작당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 팀은 '학교에서 놀이터를 만들겠다'하고, 한 팀은 동네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며 돌봄을 고민합니다. 두 달여 지난 프로젝트의 흐름, 어디까지 왔는지 한번 들여다볼까요?
*이 글은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과의 활동과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야기 하나. 우리가 학교를 만든다면?
청소년=학생=공부라는 공식이 어른들에겐 절대 진리인가 보다. 초등학생이었던 작년까지만 해도 건강이 최고라던 부모님도 이제는 공부 타령이다. 수업시간. 몸이 근질거려 죽겠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다. 선생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때론 멍 때리고 싶을 때도, 너무너무 졸릴 때도 이 딱딱한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한다.
쉬는 시간에도 맘껏 놀 수가 없다. 복도는 좁고 북적댄다. 편하게 앉아 수다를 떨고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 공간이 없다. 오가는 선생님들 눈치도 보인다. 그러니까 친구들과 놀 때도 딱딱한 교실 의자에 앉아서 놀거나 복도 한 켠에 멀뚱히 서서 얘기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학교를 만든다면 공부에 지친 우리 학생들이 언제든지 마음껏 쉴 수 있는 엄청 큰 공원을 만들어 놀 거다. 그리고 건물 계단 대신 미끄럼틀을 만들고 복도는 재미없는 일자 복도가 아니라 친구들과 만나 놀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들 거다. 여기저기 흔들의자도 두고 싶다. 쪽잠을 자거나 편하게 누워서 놀 수 있는 아늑하고 푹신한 공간도 만들고 조용히 책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카페도 만들 거다. 분위기 있는 조명도 달아야지. 정말 그런 학교가 있다면 그 자체로 힐링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 나의 이런 상상을 현실로 옮겨 학교 공간을 마음대로 바꾸고 놀이 문화도 만들어 나가는 수업이 생겼다. 수업 제목도 ‘힐링학교 : 학교는 놀이터다’ 라는 희한한 이름이다. 에이 설마, 그래도 수업인데 진짜로 학교를 막 바꾸고 그런다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수업을 신청했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첫날부터 놀고 또 놀고 또 논다. 재밌긴 한데 이상하다. 정말 이게 수업이라고? 긴장돼있던 몸이 '탁'하고 풀어지는 느낌이다. 이게 자유의 느낌인가. 근데 왜 이렇게 낯설까. 그리고 학교가 이렇게 매일 재밌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여 앉아 나만의 학교를 상상해봤다. 지금 학교에 어떤 불편한 점이 있는지, 우리가 어떤 학교 공간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학교가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을지 신나는 토론을 벌였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도 했다. 그냥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불편과 제약들도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니었다. 이제는 우리 손으로 조금이나마 바꿔볼 수 있다.
마음껏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학교를 구석구석 탐방했다. 무심히 지나치던 학교의 공간들이 다르게 보였다. 공간마다의 매력이 있었다. 좁은 구석공간은 아늑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 들었고 넓고 탁 트인 공간은 신나게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맨날 똑같던 학교가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뭔가 아지트를 짓기 위해 숲속을 모험하는 기분이랄까.
우리는 학교 건물 통로의 약간 넓은 공간을 찾아 이곳을 모든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유박스와 버려지는 팔레트를 재활용해 무한변신이 가능한 테이블과 스툴을 만들었다. 모이고 흩어짐이 자유로워 원하는 위치에 친구들과 모여 앉을 수도 있고 혼자서 따로 앉을 수도 있다. 계단처럼 쌓아서 나란히 앉을 수도 있고 여러 개를 늘어놓고 침대처럼 누울 수도 있다. 단순한 우유박스가 이렇게 다용도로 활용이 되다니 놀라운 일이다.
공간 디자인에 흥미를 느낀 친구들은 휴게공간의 분위기와 기능이 잘 살아나도록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크고 편한 쿠션도 만들고 있다. 한쪽 벽 전체에 칠판 페인트를 칠해 누구나 자유롭게 낙서하는 낙서판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알록달록 분필 낙서가 가득 찼다. 자유로운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난다. 간판도 만들고 조명도 예쁘게 바꿔보려고 한다. 다음 주부터는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다. 친구들과 좁은 공간에 들어가 놀 수 있는 돔이나 텐트 같은 거다.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학교의 한 곳에 완전히 다른 느낌의 우리만의 오아시스가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나의 상상이 수업이 되고 내 손에 의해 학교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재미없기만 한 학교가 아니라 오고 싶고 기대되는 뭔가가 있는 곳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의외로 손재주가 좋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손으로 정성껏 만든 물건이 진짜로 사용되는 그 느낌도 참 좋다.
우리가 만드는 건 그저 하나의 쉼터가 아닐 것이다. 나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고 나의 행복을 내 손으로 즐겁게 일궈 나갈 수 있다는 걸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되고 있는 이 공간을 통해 다른 학생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지 모른다.
이야기 둘. 동물과 함께 도시에서 사는 일
문래동에는 고양이들이 참 많다. 학교 주변에서도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을 종종 보곤 한다. 올해 초부터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에서 활동한 나는, 매일 동아리원들과 함께 카톡방에서 밥과 물을 주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돌봄일지를 작성해오고 있다. 선배들이 시작한 이 동아리 활동은, 1학년인 우리들에게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밥을 주던 과정 중에 학교 공사로 인해 밥 주는 장소를 옮기고, 밥그릇에 벌레가 들끓어 바꾸기도 하고, 한동안 밥을 먹지 않은 채로 사료가 방치되어 있어 난감해한 적도 있었다.
우리 동아리의 일상은 이렇게 매번 밥과 물을 주는 돌봄 활동으로 지속되었는데, 자유학기제로 만난 <버려진 동물을 위한 공생 프로젝트>는 이런 돌봄 활동을 더욱 잘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아리원 몇 명이 함께 신청했고, 우리는 길 위에 터를 잡고 먹을거리가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며 하소연할 곳 없는 도시 속 길고양이의 삶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들을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인 학생들이 모두 고양이와 동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동물을 무서워했고, 어떤 학생은 별반 관심이 없는 이도 있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기 전에 우리가 ‘왜’ 그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지 공통의 흥미에서 시작해야 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버려진 동물과 관련된 영상을 볼 때 눈물을 흘리고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맞다. 길고양이는 불쌍하다. 하지만 모든 길고양이에게 동정심을 갖는 것이 함께 사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길고양이는 어떻게 생겨나는지, 어떠한 습성을 가지는지 등 정확한 정보를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인천시 수의사협회 유기동물보호소’를 방문하면서 직접 구조의 과정과 보호하고 있는 동물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여군으로의 꿈을 갖고 있었다가 수의사로 전환한 서정주 수의사님의 현장의 이야기, 사진작가 찰카기 선생님의 길고양이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동물들의 상황이 더 진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왜’ 우리가 모였으며,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알아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는 이제 작은 움직임을 시도하고자 머리를 맞댔다.
첫 번째 시작은 함께 길고양이 캐릭터를 그려 엽서를 만들고 하자센터에서 열리는 달시장에 참여하여 판매했다. 고양이 캐릭터는 수업 시간 중에 ‘○○한 고양이’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를 엮었던 상상 속의 고양이를 그려놓은 것이다. 이 고양이의 모습에는 우리가 수업을 통해 많이 보아왔던 ‘버려진 길고양이’의 모습이 담겨져있다. TNR로 귀가 잘린 고양이의 모습도 있었다. 고양이 모양은 실크스크린을 통해 엽서로 재탄생했다. ‘LIVE TOGETHER’라는 타이포를 새겨넣어 도시에서 함께 사는 의미를 살려보기도 했다. 10월 28일(금) 올해 마지막 달시장이 열리던 날, 우리는 부스 하나를 얻어 캠페인 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에게 다가가 주저하며 말을 꺼낸 것이 우리에게 큰 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문래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로 버려진 동물 수업을 듣고 있는데, 우리가 만든 엽서야. 이걸로 길고양이들 급식소도 만들고, 길고양이들을 돕는 데 쓰이는데 한번 볼래?” 친구들이 내민 엽서를 본 초등학생들은 귀여운 캐릭터에 온통 눈길이 쏠리더니 일제히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급식소요? 당연히 도와줘야죠~” 손에 들고 있던 엽서가 동이 나자, 초등학생들은 우리들을 따라 부스로 왔다. 부끄러워 주저했던 시간도 잠시, 우리는 달시장에서 무려 완판했다.
추워진 날씨에도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캠페인 보드를 들고 돌아다녔던 경험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수업시간에 했던 작업들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판매도 할 수 있다니. 생각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달시장에 계속 오겠다고 했고, 앞으로도 길고양이 관련 제품들을 만들어 판매하고 싶다는 욕망을 내비쳤다. 이제 우리는 달시장에서 작은 걸음을 떼고 길고양이 겨울집 짓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박스로 집 모형을 만들어 보면서, 고양이들에게 근사한 선물을 해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