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 번째 <시詩와 물레>가 열린 지난 5월 27일, 목화학교는 해남 목신마을로 현장학습을 떠났습니다. 목신마을에는 몇 해 전부터 작업장학교와 인연을 맺고 있는 이세일 목수님의 공방이 있어요. 이곳에서 목화학교 죽돌들은 7박 8일간, 스스로 생활공간을 돌보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하루를 정리하는 일상의 흐름을 만들어가며, 물레와 베틀을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목화농사를 짓고, 베틀을 만들어 직조를 배우면서, 그다음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은 물레를 만들어 실을 짜는 일이었어요. 이세일 목수님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 적정기술과 수공구 제작에 관심을 가진 장인들이 계셔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베틀은 직접 만들기도 하고, 조금씩 익숙해질 기회가 있었지만, 실 잣는 도구인 물레만큼은 여전히 역사박물관이나 골동품수집가, 아니면 어린이 그림책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거든요.
지난해 창의서밋에 참여했던 이와키 농업고등학교의 물레 도면을 참고해, 올해 초 목화학교 판돌인 교오가 열심히 실험작을 만들어본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실 만드는 일을 시작해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현장학습에선 이세일 목수님의 가르침으로 죽돌들과 함께 물레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들판의 보리가 노랗게 익어가고, 초록의 모판이 마당 가득 모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계절, 숙소에서 목공방을 오가는 마을 길 중간에 빨갛게 익어가는 보리수나무 열매가 죽돌들의 발걸음을 방앗간 참새들처럼 멈추게 하는 해남 목신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현장학습의 처음 이틀은 물레를 만드는 데 집중된 시간이었습니다. 목수님이 만들어놓으신 ‘킥 스핀들(kick spindle)’ 물레의 치수를 재고 도면을 그리면서 구조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장 먼저 가졌어요. 실을 감는 물레 바늘의 축을 발로 차서 돌리는 원리 때문에 처음에는 ‘킥 스핀들’이라 불렀는데, 우주탐사선이라도 쏘아 올릴 듯한 외양에, 도면을 그리는 동안 죽돌들이 ‘목화호’란 별명을 붙여주었어요.
‘목화호’는 부품 하나하나의 치수를 도면에 옮겨 적고, 직접 잰 치수대로 나무를 재단해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큰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것들을 각각 오차가 없도록 재단해서 뚫고 붙이고 깎고 다듬어 정성을 들여야 하는 긴 과정이었답니다.
완성한 물레를 돌려보니 정말로 실이 잘 만들어졌습니다. 물레가 손에 익고 돌리기 좋은 자세를 찾기까지는 물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포인트를 잘 찾고 나면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편안하게 물레 돌아가는 소리의 리듬을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
다음 날에는 물레를 만들 때와 같은 순서로 베틀을 만들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나무로 수저를 깎거나 직조를 하면서 작업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물레와 베틀에 첫 실을 걸고 돌려보는 완성기념 작업도 물론 이어졌지요.
현장학습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 하루는 시간을 내서 장흥에 다녀왔습니다. 장흥의 동백나무숲에 집을 짓고, 햇빛과 바람과 샘터에 벗하여 살아가고 있는 젊은 부부 ‘하얼’과 ‘페달’을 만나기 위해서요.
하얼과 페달은 과거에 환경단체 활동가로 지내온 적이 있고, 그러던 중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생태적으로 전환하자는 결심이 생겨 장흥 동백숲에 들어온지 4년째가 된 부부입니다. 이분들을 만나려고 했던 건, 처음엔 나무덩쿨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우려고 한 것이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전기나 수도, 가스 없이 자연과 벗하여 샘터에서 마실 물을 얻고, 텃밭을 돌보며, 지구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사는 방식에 대해 더 생각해볼 걸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흙을 밟으면 몸 안의 정전기가 방전되니까 맨발로 걸어보는 것도 좋아요.” 조금 다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천천히 걸으며 흙을 밟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숲과 더 친해질 수 있다는 하얼의 말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숲을 걸으며 바구니 짤 재료도 채취하고, 더우면 잠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쉬어가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현장학습 마지막 날에는 부모님의 시골집을 죽돌들의 숙소로 내어주신 ‘담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담담은 20대를 도시에서 보내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다시 해남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시골집 옆에 여섯 평쯤 되는 작은 집을 지으셨어요. 그 집을 지으면서 이세일 목수님을 만났고, 지금은 함께 아이도 키우고 있지요.
흙과 나무, 돌, 그리고 버려진 문과 창문으로 지어진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담담의 집에서 도시의 생활공간과 시골 마을의 생활공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편안한 것과 아름다운 것, 공간과 삶의 자리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목화학교는 현장학습 후 해남에서 열린 하자네트워크학교의 고정희 시인 추모기행에 합류해 2박 3일의 여행까지 더불어 잘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해보면 현장학습에서 만난 분들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전환’을 선택한 분들이었어요. 거기에는 생활의 공간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새롭게 하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사람들을 찾는 일이 포함되어있었지요. 목화학교의 현장학습은 이런 분들을 만난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화학교 죽돌들의 ‘전환기 1년’도 어느덧 절반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죽돌들 각자는 어떤 전환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이들의 여정에 이번 해남 현장학습이 어떤 이야깃거리로 이어지게 될까요?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면서 학기 마무리를 향해 준비해가려고 합니다.
이번 현장학습에서 만든 물레와 베틀은 이달 마지막 금요일에 열리는 네 번째 <시詩와 물레>에서 공개해 함께 작업해볼 계획이에요. 죽돌들 버전의 현장학습 이야기와 새로운 물레, 베틀이 궁금하신 분들은 오는 6월 24일(금) 오후 2시~5시, 하자센터 본관 쇼케이스로 발걸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