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운율, 지혜의 기술_ 4월 <시詩와 물레> [전환기학교] 특별실과과정 <목화학교> 소식
하사와 병장의 노래 <목화밭>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1976년에 나온 노래인데요. 연인이 “우리 처음 사랑한 곳”이면서 “우리 헤어진 곳”이라고 노래하는데요. 더 애절한 것은 그 곳은 “정말 잊지 못한 곳”이자 “그리워서 찾아온 곳”으로 추억하며 목화밭을 한없이 노래합니다. 목화밭은 오랫동안 마을에 사는 연인들이 사랑을 노래하던 곳이었나 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목화를 본적이 없었던 저에게 이 노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목화를 직접 본다는 것이 별일이 되어버렸지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에서 목화농사는 점차 짓지 않는 농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설탕. 밀가루. 섬유 시장이 독점하게 되면서 목화농사는 그저 옛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던 목화밭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석유문명을 앞세운 나일론과 화학섬유산업이 들어섰지요.
“요즘에 누가 목화농사를 지어, 거짓말 하지마.”
노들텃밭을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께 목화농사를 짓는다 말씀드렸더니 들었던 말입니다. “요즘”같이 굳이 목화농사를 짓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시대에 “목화농사”라니 정말 “거짓말”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일에 괜스레 기분이 신이 났습니다. 신나는 마음으로 목화공부를 바지런히 하면서 반다나 시바라는 인도의 에코페미니스트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반다나 시바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친구가 입고 있는 나일론 코트를 사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그 때 반다나 시바의 어머니는 “나일론 코트를 사줄 수도 있어. 그러나, 기억해두렴. 코트 값은 결국 부자들의 고급차로 둔갑합다는 걸. 만일 네가 간디의 가르침대로 평소처럼 손으로 뽑아 짠 카디를 계속 입는다면 어딘가의 가난한 어머니와 아이들의 밥이 된단다. 자, 다음부터는 네 스스로 결정하려무나.” 그 뒤로 반다나 시바는 자신이 직접 짠 직물로만 옷을 헤입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선 등골이 서늘했지요.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아, 언젠가는,
이렇게,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거짓말같은 일’을 상상하며 2016년 올 한해 <시詩와 물레>라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달 집중하는 작업들을 달리하면서 가보려 하는데요. 지난 3월에는 목화솜으로 실을 자아보는 <목화실실>이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이번 4월에는 <씨실과 날실>이라는 주제로 기초직조인 타피스트리 작업을 했습니다. 헌 옷을 활용하여 실을 만들어 낡은 의자 상판을 떼어내어 직조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날실을 걸고 씨실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작업인데요. 한 번 시작하면 등과 허리가 묵직해질 때까지는 정신없이 씨실을 움직이게 되는 묘한 작업이지요. “천천히 신중하게, 또 온화하지만 가차 없이 전진하며, 그리고 끝까지”라는 격언의 중심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지요. 반복과 반복, 또 반복해야 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과 반복, 또 반복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운율에서 나오지요. 운율 없이는 생동감을 불어 일으키기 힘들지요.
덴마크에서 온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age)학생들이 덴마크의 국민시인으로 칭송되는 라스무센에 대한 이야기와 시 낭송을 해주었답니다. 덴마크의 어린이들이 처음으로 말을 배울 때부터 라스무센이 쓴 알파벳 시를 읽으면서 말을 배운다고 하는데요. 처음으로 말을 배울 때 시詩를 통해서 배운다니……. 삶의 운율이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시詩적인 것으로 시작하게 되면 삶의 국면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 잠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목화학교에서는 “이놈 쟁기질 하는 것이 / 뭐 그려”라는 호통으로 시작하는 박운식 시인의 <쟁기>라는 시를 낭송했는데요. “먼 곳을 봐야지/ 이랑이 똑바른 거여/ 코앞만 보고 쟁기질하니/ 저렇게 꾸불꾸불하지”라는 시로 자꾸 삐뚤어지는 직조의 운율을 다시금 곧추 세우는 시였답니다.
전라남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시詩와 물레>를 위해 하자센터를 오고가시는 한 선생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려고 해요.”
라는 말을 남겨두시고 가셨습니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에 대해서 잠시 떠올려봅니다. 이렇게 둥글게 모여 시와 노래를 나눠읽으며 석유문명에 잠식된 우리의 손끝, 발끝, 눈 끝을 깨워나가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떠올려 봅니다. 끊임없이 실수하며 다시금 씨실을 끼워야 하는 직조작업을 떠올려 봅니다. 옆 사람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손을 맞춰나가야 하는 씨실과 날실의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이 속에 지혜로움이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려”는 그 선생님의 자세와 표정, 움직임에 대해서 떠올려 봅니다. “되려고 해요”라는 말을 하실 때의 눈빛과 어조를 떠올려 봅니다.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려고 해요”라고 다시 입으로 말해봅니다. 어쩌면 지혜는 찾아지는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되려고” 할 때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캄캄하게 떠올려봅니다. 올 한해 펼쳐질 <시詩와 물레>를 거듭하면서 곰곰이 삶의 운율과 지혜의 기술에 대해서 떠올려봐야겠습니다. ‘거짓말’같을 정도로 놀라운 지혜로움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요.
* <시詩와 물레>에 참여하고 싶다면
시간 :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2~5시 (*다음 모임은 5월 27일)
장소 : 하자센터 본관 1층 쇼케이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목화학교 페이스북에서 확인해주세요.
* 목화학교는
15-17세 전환기 청소년들을 위해 하자작업장학교가 운영하는 1년제 특별실과과정입니다. 목화학교의 학생들은 자전거 타고 밭을 오가며 목화농사를 짓고, 목화농사의 흐름에 따라 목공으로 물레와 베틀을 만들거나, 실 잣고 천 짜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씨앗을 심는 봄, 꽃이 피는 여름, 솜이 피어나는 가을에 입학생을 모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