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던 지난 25일, 하자센터 쇼케이스에서 목화학교의 <시詩와 물레>가 시작되었습니다. <시詩와 물레>는 매달 마지막 금요일, 시낭송이 들리는 풍경 속에 모여앉아,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짜는 시간이에요. 목화학교가 자리를 만들고, 물레질과 직조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해서, 옆 사람에게 배우고, 서로 가르쳐주며 익히는 교류와 학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올해 첫 번째 <시詩와 물레> 시간을 열어준 것은 손택수 시인의 시였습니다.
"오늘은 땅심이 제일 좋은 날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
설씨 문중 대대로 내려온 농법대로 할머니는 별들의 신호를 알아듣고 씨를 뿌렸다
별과 별 사이의 신호를 씨앗들도 알아듣고 최대의 發芽를 이루었다
할머니의 몸속에, 씨앗 속에, 할머니 주름을 닮은 밭고랑 속에 별과의 교신을 하는 무슨 우주국이 들어있었던가"
- 손택수 시인, <달과 토성의 파종법> 중에서
할머니가 밭에 씨를 뿌리러 간, 땅심이 제일 좋은 날,
별과 별 사이의 신호를 알아듣고 최대의 발아를 이뤄낸 씨앗들처럼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이곳을 찾아온 여러 분들과 함께 실실 실을 만들고, 천을 짰어요.
실 만들기는 목화솜을 이용한 무명실 만들기와 안 입는 면티셔츠를 이용한 재활용실 만들기,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실만들기에 이용한 재료는 지난해 목화학교 재학생들이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목화솜이었지요.
물레질을 배우기에 앞서서, 목화농사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었어요. 먹는 것이 아니라 입는 것을 농사짓는다는 게 생소하기도 했지만, 씨앗을 심고 꾸준히 돌봐 여름에는 하얗고 붉은 꽃을, 가을에는 그 자리에 피어난 솜을, 솜으로 터지기 전에 따 먹으면 달콤한 맛이 나는 목화다래를 보게 되었죠.
그렇게 수확한 솜 안에는 씨앗이 들어있어, 씨앗은 다음해 농사를 위해 모아두고, 남겨진 솜으로는 물레를 돌려 실을 자았습니다.
한편, 면티셔츠를 잘라 만든 재활용 실로는 직조를 했어요. 사각 직조 틀에 씨실을 걸고, 재활용실을 날실로 써서 래그러그(Rag Rug)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첫 걸음을 뗀 목화학교의 <시詩와 물레>는
올 한해, 매달 마지막 금요일마다 꾸준히 이어질 예정입니다.
마치 목화학교 학생들이 <시詩와 물레> 첫 시간을 마무리하며 낭송한 시에 등장하는 ‘기름진 자음’처럼 말이지요.
“내 최초의 받아쓰기 지겟작대기 끝에서 나온 자음 흙냄새 폴폴 묻어나던 소리 'ㄱ'위에서 씨앗 꽉 문 고추와 입천장 데며 먹던 고구마 노란 속살이 태어났다
허리 구부정한 'ㄱ' 지게를 지고 저녁연기 오르는 마을을 향하여 돌아오시던 할아버지 허리가 펴지지 않은 채 땅에 묻히셨다 기름진 자음이 되셨다“
- 손택수 시인, <자음> 중에서
처음 배우는 글자 ‘ㄱ’처럼 목화씨를 발라내고 실을 뽑으면서 배움을 시작하고 있는 목화학교. 앞으로 목화학교의 ‘ㄱ’에서는 무엇이 열리고 자라날까요?
* <시詩와 물레>에 참여하고 싶다면
- 시간 :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2~5시 (*다음 모임은 4월 29일)
- 장소 : 하자센터 본관 1층 쇼케이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목화학교 페이스북에서 확인해주세요.
* 목화학교는 15-17세 전환기 청소년들을 위해 하자작업장학교가 운영하는 1년제 특별실과과정입니다. 목화학교의 학생들은 자전거 타고 밭을 오가며 목화농사를 짓고, 목화농사의 흐름에 따라 목공으로 물레와 베틀을 만들거나, 실 잣고 천 짜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씨앗을 심는 봄, 꽃이 피는 여름, 솜이 피어나는 가을에 입학생을 모집하고, 현재 5월 여름입학생을 모집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