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습니다. 꽃이 폈습니다.
물러서지 못한 슬픔의 기울기가 여전한 봄날입니다.
어느 유가족 어머니의 말에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확하게 아픕니다.
“바닷물을 다 퍼마셔 버리고 싶어요.”
올해 1월 단원고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환하고 밝은 꽃을 가슴에 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야 할 졸업식 날 졸업하지 못한 250명의 학생들의 책상에는 하얀 국화가 놓였습니다. 졸업앨범을 들추며 꺌꺌거려야 할 졸업식 날, 416추모교실을 일방적으로 이전하겠다는 교육청의 방침에 단원고 졸업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
친구가 보고 싶다는 말도,
진실을 밝혀달라는 말도,
선체를 인양하라는 말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도,
심지어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도.
무슨 말을 하건 ‘여전히’ 아프게 말하지 않을 방도가 우리에겐 아직 없습니다.
단 한마디도 비껴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통의 증언 앞에서 무감각하고 무례한 이들은 말합니다. 놀러갔다가 죽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이제는’ 그만하라고, 지겹지도 않냐고, ‘이제는’ 극복해야 할 때라고 합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정부와 관료들은 말합니다. 보상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고, 세월호특조위도 꾸려졌으니, ‘이제는’ 괜찮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절망으로 압도하는 내러티브의 세계에서 삶의 자리와 존재의 자리는 모욕과 비통함이 가득합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거의, 거의, 거의, 거의, 거의 없는 세계에 존재의 품위는 습격당합니다. 매번 정확히 습격당하는 절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씻지도 못한 채 걸었고, 동료들은 돌아가며 곡기를 끊기도 했고, 청소년들은 마스크를 끼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모두 길게 울었습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황폐함 속에서도 이들과 함께 낭독회를 열고, 손바느질을 하고, 상담센터를 열고, 토론회와 추모집을 출간하며 물러가지 않은 비통함의 자락에 물러서지 않는 믿음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보면서 떠올려봅니다.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 속에 같이 머물러 있는
말을 가진 자로서 목격한 것을 증언하고 고백하는
우리 자신의 인간됨을 질문하고 물으며 나아가는
절망감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배움을 이어나가는
서로의 품위를 위한 자리 마련해주는
“국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시민들에 의해 시대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한혜정
이것들이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시민이 되고자 하는 우리들의 다짐과 결심의 말들을 간신히 떠올려보게 합니다. 세계의 진동을 느끼는 세계감을 가진 시민이 되고자 하는 우리들의 의문과 질문들을 부양시킵니다. 그것은 아주 서서히,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드는 것이겠지요. 지금도 그 시민들의 미래가 도래하고 있음을 조금은 믿어보고 싶습니다.
또, 봄이 왔습니다. 또, 꽃이 폈습니다.
물러서지 않는 슬픔의 기울기가 여전한 봄날입니다.
이 봄날
어떻게들, 지내고 계신지요?
*하자마을에서는 4월 16일 오전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세월호 2주기 추모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마음 닿는 분들은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