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2015 11월 생활 보고서
Alternative Weeks 2주 남짓 쉬어가는 주간이 끝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중앙 유럽에 여행을 갔던 친구들도 다 돌아오고 캠퍼스는 또다시 꽉 차게 되었다. 모두 정규 일정으로 돌아왔다. Global Challenges Line 글로벌 챌린지 수업에서는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구조에 관해 공부했다. 케인스 경제학을 바탕으로 규제되어 왔던 금융 시스템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많은 부문의 규제가 완화 되었다. 이 규제 완화가 불러온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전세계적인 여파를 알아보았다. 2000년부터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미국 연방은행은 이자율을 엄청나게 낮게 책정, 가난한 사람들도 주택을 담보로 쉽게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2001년 9.11 이후에는 가장 낮은 1%를 찍었다. 돈의 가치는 낮아지고, 물가는 올랐다. 또한 실제 자금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누구나 은행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되어 집값은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라크전쟁, 유가상승, 부유층 감세 등으로 자금난에 부딪치자 미국정부는 은행 대출 이자를 높였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자를 갚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2006년부터 소규모 은행들은 이미 위기였다. 작은 은행들은 큰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저소득층에게 빌려주고 있었다. 소규모 은행들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자 큰 은행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던 많은 은행들이 파업을 했고,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이 주식을 팔려고 하자 주식시장이 닫혔다. 그렇게 거품처럼 쌓였던 돈은 다 사라졌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만은 돈의 가치를 계속 고정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싸게 수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인들이 신고 있는 ‘made in china’ 신발 가격이 15년 동안 같을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물론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중국 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소비 시장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지금 또 새로운 위기가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 하는 분석이 있다고 한다. 현재 중국, 브라질, 러시아의 GNP(국민총생산량)와 일자리 수는 변함없는데 계속해서 자산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또 거품경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대안으로 선생님이 덴마크에 있는 ‘Merker’ 지역 은행을 소개해 주었다. 이 은행은 사회에 기여하고 친환경적인 사업을 할 때에만 대출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은행이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세 가지 키워드는 모두 P로 시작하는데 People, Planet, Prosperity(번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마을에 풍력발전기를 세운다면 돈을 빌릴 수 있다. 이런 은행들의 네트워크가 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다. 전세계 27개 은행이 가입되어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없다고 한다. 금융 이슈 다음으로는 세계의 무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무기들에 초점을 맞췄다. 왜 작은 무기에 주목했냐 하면 탱크 같은 큰 무기와는 달리 규제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오가는 작은 무기의 수는 8억 7천만 정 정도 된다. 기대 수명이 무려 40년 정도로 긴 데다가 한번 생산이 되면 한 곳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돌며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총은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용도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협박이 가능하다. 성폭력을 저저지르고, 집안에 들어가 금품을 요구하는 데도 쓰인다. 글로벌 챌린지를 맡은 선생님도 예전 케냐 나이로비에서 활동할 때 차를 몰고 나가면 사람들이 총을 들고 차에서 내리라고 협박을 한다고 해서 일부러 오래되고 낡은 차를 구해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일이 너무 흔해서 실제 동료 중에 차를 뺏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총들은 대부분 소말리아 내전 지역에서 흘러든 것이라고 한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암시장에서 총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산다. 가난한 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 총들은 대부분 선진국의 기업들이 만든다. 최대 생산국은 미국이고 한국도 꽤 높은 순위에 올라가 있다. 1년에 8백만 정 정도가 생산되어 전세계를 돌고 도는 소형무기를 규제하기 위해 2015년 12월 UN 무기거래조약이 정식 발효되었다. 이 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하면 해당 생산국은 무기가 어떻게 돌고 도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막아야 한다. 한국은 서명은 했지만 국회에서 비준이 안 된 상태이다. 미국도 의회에서 비준이 되지 않아서 이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도 50여개 국이 비준했다고 한다. 물론 최대 생산국인 미국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 이렇게 무기를 계속해서 생산하는 것일까? 지금 지구상에 있는 무기로도 전 지구 인구를 두 번 죽일 수 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계속 무기가 만들어진다. 여성만 무기를 가질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다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 글로벌 챌린지 수업에는 여성들만 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어떨까? 하하. 무기 생산을 애초에 불법으로 만들면 좋았을 텐데. 아니, 어떻게 무기를 만드는게 합법이란 말이지, 싶기도 하고. 질문이 꼬리를 문다.
할프단 라스무센(Halfdan Rasmussen) 주말
11월 13일부터 11월 15일까지 3일간 예전 IPC의 학생이었고 올해 탄생 1백주년을 맞은 시인 할프단 라스무센을 기념하는 주말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토요일에는 보물찾기 전시 행사가 진행되었다. Art&craft 수업에서 만든 작업을 호수가를 따라 선보였다. 할프단 라스무센의 넌센스 알파벳 시가 담긴 책을 소재로, 각 작품마다 하나의 알파벳을 정해서 그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따라가며 둘러보는 전시였다. 드라마 수업을 받는 친구들은 책에 담긴 상황을 곳곳에서 연기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삽화가의 다른 작품들이 IPC 복도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한 선생님은 손자의 손을 잡고 함께 왔고 다른 분들도 가족들과 함께 전시를 보러 왔다. 덴마크 작곡가들이 할프단 라스무센의 시로 노래를 만들고, 그중 가장 아름다운 곡을 뽑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유명한 연주자들과 보컬리스트, 또 쇠렌(IPC 교장)도 노래를 들려 주었다. 지난 학기 학생이었던 이가 속해있는 극단이 할프단 라스무센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극단인데 관객들과 다함께 노래를 부르며 끝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할프단은 여성 시인은 아니지만 주말 내내 행사에 참여하면서 고정희 시인과 하자센터, 또하나의 문화(또문) 생각이 많이 났다. 또 덴마크 사회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시, 글, 노래 문화를 만들고 이어나가는 데 IPC가 많은 노력과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In the same boat - Crossing Borders”
11월 19일 목요일 코펜하겐의 한 포크하이스쿨에서 열린 ‘In the same boat’ 라는 제목의 난민 관련 컨퍼런스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다. ‘Crossing Borders’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주최한 행사였는데 난민, 언론인, 정치인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와 해결방안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시리아와 헝가리 혼혈인 기자가 터키 국경에서 취재를 했을 때에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기자의 가족 중에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시리아 안쪽 지역에 아직도 살고 있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서너번 주변에서 폭탄이 터지는데도 말이다. 왜 아직도 위험한 그 곳에 머물고 있냐고 물으면 아직 운 좋게도 집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피난을 가지 않는 것은 첫 번째, 난민캠프의 상황이 너무나도 열악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브로커를 통해 유럽으로 간다 해도 그곳에서 많은 차별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란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난민에게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은 거의 없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기자는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시리아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스웨덴으로 오게 된 난민도 연설을 했다. 사회자는 그를 더블, 트리플 난민이라고 소개했다. 스웨덴까지 오는데 정말 힘든 여정을 겪었다고 말하며, 그의 동생도 지금 유럽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두 명의 정치인도 패널로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난민 캠프 안에서의 음식, 의료, 교육 구호 지원이 절실하며 덴마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1951년을 잊지 않고 다시 떠올리자며 그 해 체결된 UN 난민협약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객석에서 한 시리아 난민이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으로 건너 올 때에 품에 아기를 안고 있어서 한 여성을 구하지 못한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덴마크에 와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도 했다. 영어, 덴마크어를 잘 하지 못하는 다른 난민들을 대신해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그는 난민들이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거라며 자신들을 믿고 사회가 더 난민을 환영하는 분위기와 정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행사장에 있는 모두가 그의 말이 끝나자 환호를 보냈다. 스스로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여러 전문가, 정치인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기차역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한 사람 한 사람 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리고 더 좋은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자리를 마련한 단체인 ‘Crossing borders’는 알고 보니 원래 IPC에서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한다. 창립자가 15년 동안 IPC에 학생과 교사로 몸담고 계셨던 분이라고 한다. 파리 테러 이후 파리를 위해 기도하자는 문구가 인터넷에 도배되었다. 그러면서 파리 테러 하루 전에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에 왜 무관심한 것인지, 또 시리아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폭발과 전쟁은 왜 일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일까. 어느 국적이냐에 따라 져야 할 삶의 무게가 다르다는 모순된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함께 자각하게 되었다. 프랑스 공군이 IC 기지를 공습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 곳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의 상황을 우려하게 되었고, 무슬림 난민을 받으면 테러 가능성이 커진다,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에 맞서 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생겨나고 있다. 이곳 current affair 수업에서도 이런 흐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 전환이 점점 뜨겁게 진행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추세가 더욱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또 이 세계의 흐름이 너무나도 빠르게 가속 진행되는 것 같다. 나도 마음이 점점 바빠진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할 틈 없이 생계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하면 참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