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달이 또 지났다는 것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바쁘게 수업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서 이제 2015년의 10월이 다가온다니. 봄 학기는 여유로운 느낌이었다고 그러던데 가을 학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주 바쁘다.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 다음 10주에는 수업을 조금만 신청하려고 한다.
Green group
생태 모임을 만들었다! 총 멤버는 열세 명 정도다. 먼저 왜 이 그룹에 들어왔고 어떤 작업들을 해나가면 좋을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업장학교에서의 후쿠시마, 밀양 송전탑, 현미 네 홉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다른 친구들도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터넷에서 친환경 치약을 만드는 방법을 알리는 누나를 둔 친구, 채식하는 친구들, 또 더 이해하고 싶고 같이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고 싶어서 들어온 친구들도 있고, IPC를 더 ‘그린’하게 만들고 싶어서 들어온 친구도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룹의 이름은 IPC로 운을 띄어서 거창하게 I Preach Climate, I Promote Changes 같은 이름이 후보에 올라왔지만 IPC-green group으로 정해졌다.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한 해 동안 생활하는 작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노 임팩트맨(no impact man)>을 함께 보고 간단하게 리뷰를 했다. 결국에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소비하며 살아가는 로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러자 한 덴마크 친구가 장난으로 “그런데 너희는 멀리서 온실가스 배출하면서 비행기 타고 오지 않았냐, 나는 자전거 타고 여기 왔다”고 웃으며 얘기했는데, 그룹의 다른 친구들도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본 것 같았다. 처음에 내가 이 곳에 왔을 때 멀리서 비행기 타고 온 여행을 사랑하는 글로벌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의 소비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은 기후변화와 쉽게 이어질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을 같이 인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글로벌 시민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법을 배우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모두 함께 일생 동안 만들어가야 할 긴 과정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큐멘터리 <GMO OMG>도 함께 봤다. 다음 미팅에서는 ‘waste’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학교 안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앞 슈퍼에 갈 때마다 플라스틱 백을 살 필요가 없도록 안 쓰는 에코백을 모아다가 슈퍼 가는 쪽 복도에 걸어놓았다. 또 지렁이집을 커먼룸에 두고 실내 퇴비 만들기를 시작했다. 지렁이집의 크기가 작고 또 조리 안 한 상태의 채소만 넣을 수 있어서 실험 형태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지렁이들을 보니 참 반갑고 이곳 친구들과 지렁이를 함께 돌보는 것이 새롭고 좋다. 친환경 치약, 샴푸 만들기, 전기 사용을 잠시 멈추는 어스 아워 이벤트 만들기 등 다른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돈을 모아 니카라과에 있는 열대우림의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땅을 사는 것이다. 미팅을 하면 정말 이야기가 많이 오고간다. 더 알고 싶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그룹에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과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 또 그것을 함께 의논한다. 미처 생각하지 않았거나 잊고 있었던 것들을 서로 일깨워주기도 한다. 진심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무엇인가를 함께 하려 하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있어서 기쁘고 든든하다. 그룹을 통해 캠퍼스가 확실히 더 ‘그린’해지고 있다.
Exploring Denmark
9월 9일, 익스플로링 덴마크 수업에서는 다 같이 자전거를 타며 코펜하겐을 돌았다. 한 두 시간 정도 주위를 둘러보니 왜 사람들이 자전거를 매일, 또 많이 타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우선 편하고 빨라서다. 정부 입장에서도 시민들이 차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쪽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한다. 자전거만을 위한 도로 주변으로는 나무, 잔디 등 자연환경이 잘 되어 있다. 또 자전거로만 건널 수 있는 다리도 있다. 만약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려면 훨씬 멀리 있는 다리까지 가야 건널 수 있다. 반면 자전거 다리는 가까워서 차보다 더 빨리 건널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이용하는 게 훨씬 빠르니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선다.
9월 16일, 코펜하겐의 한 학교를 방문했다. 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 나이부터 중학교 3학년 나이까지 함께 있는 학교다. 건물 이곳 저곳에서 학생들이 만들고 그려놓은 흔적들이 가득했다. 학교를 둘러보고 학생들도 만나게 되었다. 이곳은 일주일마다 수업시간표가 바뀐다고 한다. 또 6학년까지 시험과 평가가 없다. 대신 자가 채점이 있다. 자신이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하며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년부터 정부에서 수업시간을 더 늘리는 등 경쟁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단다. 그래서 전환학기를 선택하기보다는 학원이나 대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날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 중에서는 졸업하면 전환학기를 가질 것이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도 진로에 대해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또 세계지도가 많이 걸려있는 복도가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교실에서 Global Responsibility Lines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라인 중에 하나라고 한다. 중학생 나이의 학생들이 글로벌 책임에 관해 토론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영어 수업도 참관했는데, 선생님이 어떤 사람의 정보를 던지면 그 사람이 총기 소지에 찬성하는 입장일지 반대하는 입장일지에 관해 학생들이 추측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시험만 치고 나면 까먹는 한국 일반학교의 배움과 덴마크 학생들의 배움은 다르다. 토론과 작업 방식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배움을 내 것으로 흡수하게 되는 것 같다. 시민의식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한편으로 이상하게 다가왔던 점은 학교에 식당이 없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집에 가서 따뜻한 식사를 하고 다시 학교에 왔다고 한다. 지금은 각자 점심을 챙겨온다. 부모가 아침마다 자녀의 식단을 선택하고 준비하니 무얼 먹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매일 똑같은 맛이 나게 계산된 김치와 반찬을 몇 년 동안 먹고 자라면서 획일화된 입맛이 만들어지는 한국의 급식과는 정말 다르다. 어찌 보면 덴마크의 개인주의 문화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덴마크 사회에서는 식단의 빈부격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싶었다. 알코올 중독 같은 문제가 있거나 아예 자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부모의 자녀도 있어서 그런 학생들은 식단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주민 자녀도 너무 다른 식단을 들고 오면 놀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Green lecture
코펜하겐에 있는 학교를 다녀와서 바로 기후변화로 인해 가난한 나라에서 더 많은 피해를 입는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저먼와치가 발표한 기후변화에 취약한 나라 순위를 보면 HDI(Human Development Index) 순위가 아주 낮다. 온두라스, 버마, 아이티, 니카라과,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들이 있다.
2013년, 필리핀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태풍 하이옌을 들여다보았다. 필리핀은 땅의 40%가 농경지이고 28%의 노동자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필리핀에선 벼가 가장 중요한 작물이다. 그런데 태풍이 오면 그 해의 벼농사는 물론 그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한 종자 채종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쌀 생산이 줄어들고 동시에 농업인들의 수입도 줄어든다. 쌀의 가격은 오르고 또 가난한 사람들은 쌀을 사지 못하게 된다. 삶의 질은 하락하고 빈부격차는 상승한다. 코코넛 농사, 어업도 마찬가지다. 코코넛나무가 다시 자라고 열매를 맺기까지 16년에서 2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산호초가 사라지면서 물고기가 알을 낳을 장소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태풍 하이옌이 왔을 당시에 필리핀 간디학교에 있었던 친구가 그때의 상황을 간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학교가 있는 지역은 비교적 괜찮아서 피해가 심각한 다른 지역에 봉사를 갔다고 한다. 대나무로 지어져있던 집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려 다시 짓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대만에서 자란 한 친구는 대만에도 태풍이 많이 오지만 개발이 되어 있어서 필리핀만큼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앞으로 늘어날 인구와 식량 생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식량 생산이 줄어드는 요인 중에 삼림 벌채, 지나친 가축 방목, 가뭄, 홍수로 인한 토양 붕괴가 있는데, 표토층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무가 없는 땅에서 건강한 흙은 물과 바람으로 인해 쉽게 사라진다. 그런데 그 뿐만 아니라 나무를 베면 뿌리가 잡고 있던 탄소가 산소와 만나면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또 그늘이 사라지고 증산작용을 통해 가습기 역할을 하지 못해서 가뭄이 쉽게 온다. 빙하가 녹으면 녹을수록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나무를 베면 벨수록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이다. 이런 작용들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지? 싶었다. 이때까지 나는 생물을 대할 때에 그저 생명의 중요함, 신비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기본적인 생물학과 생태학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마침 한국어에 관심 있는 덴마크 친구가 고등학교 내내 생물학을 열심히 공부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주말에 코펜하겐에 있는 도서관에 가 관련한 책을 빌릴 예정이다. 아, 이 친구가 바로 니카라과에 있는 열대우림 땅을 사자고 제안한 친구다. 실질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상황과 작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IPC에서는 그런 다양한 정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덴마크 사회에서도, IPC 캠퍼스 안에서도 9월 한 달 내내 가장 큰 이슈는 난민 수용 정책이었다. 이곳 학생들과 함께 9월 12일 코펜하겐 크리스티안보르에서 열린 시위를 갔다. 인상 깊었던 모습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누군가가 발언을 하면 귀기울여 듣는 것이었다. 모두 자연스러운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지금 IPC에는 시리아의 난민이 기후변화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기사를 공유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그룹이 있다.글로벌 챌린지 수업에서도 초국적기업에 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점점 IPC에서의 생활이 자리 잡혀 가고 있지만 익숙해지면서 수업의 내용을 놓치지 않게 잘 정리해나가고 싶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해도 정말 빨리 떨어진다. 덴마크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여름 햇살을 만끽하려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