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에서 아직도 굵은 땀을 흘리고 있는 하자 자전거공방의 뜨거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자 자전거공방에서는 자전거를 통한 청소년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자전거 문화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그간 오랜 숙제였던 자전거 정거장과 카고바이크, 이 두 가지 미션에 도전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 하자 자전거 정거장
하자센터 마당에는 자동차 주차 공간은 많은데 자전거가 주차할 곳은 마땅히 없었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하자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자전거 보관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자전거공방에서 ‘리사이클링 자전거 보관소’를 제작했었다. 버려진 자전거 몸체와 바퀴를 이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리사이클링 보관소가 완성되었지만 아쉽게도 지붕이 없어서-애초에는 넝쿨 식물을 키워서 친환경 지붕을 만든다는 구상이었으나 지붕 뼈대 역할을 하는 바퀴의 녹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이면 처량하게 비를 맞고 있는 자전거를 보며 늘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이 흘러 하자 외부 공간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면서 기존 ‘보관소’가 조금씩 해체되었고 새로운 고민이 깊어갔다. 일정과 시간에 쫓겨 잠시 기성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관공서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주로 쓰이는 기성품 야외 자전거 보관소의 가격대는 200~800만 원 대 정도였다. 이중 마음에 든다 싶은 디자인의 제품은 거의 800만 원 선이어서 차마 구매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오기’가 생겼다. 편리함과 효율성 대신에 ‘정성과 수고로움으로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돈의 가치가 아닌 땀의 가치로 하자마을의 시간과 공간을 채워보고 싶었다.
여러 사람의 자전거가 비를 피할 수 있길 바라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한 ‘하자 자전거 보관소’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아이디어가 보태져서 ‘하자 자전거 정거장’으로 발전했다. 문래동에 가서 직접 원재료인 파이프를 구매하고, 공구를 빌려와 용접을 하고 도색 과정을 거쳤다. 외관에 필요한 폐 목재를 톱으로 자르고, 전체를 조립한 뒤 마지막으로 입간판을 달면서 지난했던 작업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지난 9월 30일 매주 수요일 하자마을 주민들이 점심을 함께하는 나눔부엌에서 그간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곁들여 제작과정을 소개하고 식사가 끝난 뒤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가 축하 한강 라이딩을 하는 것으로 임시 개소식을 열기도 했다.
기성품 가격의 1/10 비용으로 ‘자전거 정거장’을 제작하는 동안 고속 절단기와 드릴, 톱 등 각종 기계음이 그치지 않았던 현장에 많은 하자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보태주었다. 허브 지하층 이웃인 목공방에서는 폐목재를 제공하고 입간판까지 제작해 주었으며 하자센터 청소년운영위원회(시유공) 청소년들(먼데,태호,슈슈,공백)도 잠시 들러 폐목재 자르는 작업에 손을 보태주었다. 시설을 담당하는 판돌 루하는 비를 피하는 지붕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다른 판돌들과 죽돌들도 오고가며 관심과 응원의 말을 건네주었다. 하자의 자전거 문화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 하자작업장학교 중등과정 청소년들은 ‘즐거운 정거장, 함께하는 자전거 정거장’의 운영원리를 같이 만들어가기로 했다.
앞으로 ‘하자 자전거정거장’은 공용 자전거 주차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자전거를 사랑하는 주민들이 만나 대화도 나누고 기초 생활 정비도 함께하면서 ‘하자마을의 자전거 이야기’를 쌓아갈 계획이다.
# 생활자전거 프로젝트(카고바이크=다목적 자전거)
하자 자전거공방에서는 자전거가 생활 영역에서 지금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기를 기대하다 카고바이크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해 그동안 크고 작은 실험을 진행해 왔다. 드디어 올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기회를 맞았는데 이는 에너지 자립하우스를 짓고 있는 하자작업장학교 청년과정 청년들과의 의기투합으로 가능했다.
청년과정의 경우 적정기술, 생태건축 교육과정에서 배운 용접 등 실질 기술훈련을 응용해 볼 수 있고 자전거공방도 폐자전거 재활용 사업의 심화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합이었다. 지난 5월 살림집을 1차 오픈하면서 열렸던 살림포럼을 통해 소개된 ‘생활이 자전거다’슬로건을 일상에 적용해 살림기술(적정기술 일반과 다양한 손기술을 필요로 하는 자급기술을 지칭하는 용어)을 확산하고 또 청년, 환경관련 단체, 자활사업단 등 다양한 파트너와 연계해 워크솝 등을 통해 자전거 관련 기술도 전수하고자 하는 등 다양한 바람을 담아 보았다. 첫 번째 도전은 지난 6월 청년과정 청년들이 실험연구원, 하자 자전거공방이 기술 멘토로 결합해 시작되었다.
카고바이크(cargobike)는 말 그대로 수레를 끄는 자전거로 앞 또는 뒷부분에 있는 카고(cargo)에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실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유럽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다목적 자전거(MPB: multi purpose bicycle)’로도 유명하다. 카고바이크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유럽의 일상에서는 친근한 풍경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소수의 마니아나 장인들이 해외에서 구매하거나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자전거 도로가 좁고 차도는 위험하며 관련 법규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등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의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기 보다는 ‘카고바이크’로 풀어볼 수 있는 이야기와 문화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세 가지 모델 개발을 목표로 ‘생활자전거 프로젝트’의 첫 걸음을 떼었다. 그 세 가지 모델은 1. 생활에서 짐을 싣고 이동하는 용도(짐 운반용) 2. 아이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용도(육아용) 3.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용도(미니 인력거)이다.
이후 6월~7월 동안 2대의 카고 바이크를 제작했다. 실제로 제작해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최대한 폐자전거 부품을 활용했는데 부품 규격이 저마다 달라서 필요할 때마다 여러 자전거의 부품을 뒤져야 했고 그나마 없는 것은 직접 만들어야 했다. 또한 일반 생활차용 브레이크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카고바이크가 필요한 순간 멈추기에는 제동력에 한계가 있었다. 박스 형태의 카고바이크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4명이 함께 들어야 했고 조금 긴 형태의 카고바이크는 자전거를 조금 능숙하게 타는 사람만이 운전 가능했다.
8월에는 좀 더 정비를 해서 시운전할 기회가 있었다. 8월 21일부터 8월 22일까지 이틀간 에너지기후행동캠프가 하자마을에서 열렸는데, 둘째 날 진행된 자전거행진에 참여해 영등포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신나게 도로 위를 달린 것이다.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더 듬직하고 멋지게 달려주었다.
이제 10월~11월에는 두 번째 모델 개발에 도전할 예정이다. 청년과정 친구들과 좀 더 머리와 마음을 모아서 이제는 혼자서도 들 수 있을 만큼 가볍고 크기와 길이도 적당하며 초보자도 운전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어떤 사람들이 사용할 것인가? 무엇을 싣고 달릴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달릴 수 있을까?’도 함께 고민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하자만의 카고바이크를 기대해 본다. 글 / 박정규(미라클, 기획1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