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느라 매일같이 책상에서 일을 해 허리가 아프던 A씨는 서서 일해 볼 것을 권유받았다고 합니다. 지난해인가 TV에서도 서서 일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합니다. 막상 서서 일하는 책상을 사려고 보니 한번 사용해 보기에는 너무 가격이 비싸서 고민 중이었다고 합니다.
A씨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서도 서서도 사용할 수 있는 책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무라는 재료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한계가 분명했기에 꼭 필요로 하는 기능에만 집중하였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동식 서서책상입니다. 표현이 거창하지 사실 접는 밥상 같은 것입니다. 만드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고, 받은 사람도 만족했습니다. 조금 흔들린다는 피드백은 있었지만….
이후 요즘 무슨 작업을 하냐는 질문에 ‘서서 일하는 책상’을 만들었다 하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미 거북목 진단을 받았다는 직장인도 있었고 20년 뒤에는 E.T 몸매가 된다는 기사를 보고 걱정하는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내리 앉아서 일하다가 오는 피로감 때문에 서서 일해보고 싶었던 IT, 디자인, 사무행정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몇몇은 그냥 목공작업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요. 그렇게 ‘서서책상 만들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팔레트로 ‘서서책상’ 만들기
팔레트(pallet)는 화물을 운반하고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는 받침대입니다. 주로 공장, 창고 등에서 볼 수 있죠. 하자 커뮤니티목공방에서는 이 팔레트를 재활용해 주로 사용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톱질, 못질을 연습하고, 쓸모를 다한 폐목재를 재활용해 쓸만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목공의 매력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서서책상’ 만들기에 돌입한 참여자들은 각자 근무 환경과 형태에 따라 필요로 하는 책상을 디자인해 시안을 공유했습니다. 이후 논의를 거쳐 공동 작업 공간에서 사용할 1mx1m 사이즈의 서서공용 테이블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꽤 훌륭한 테이블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용할 공간과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해 기획되고 스스로의 손과 기술로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 참 멋졌습니다.
참고로, 건강한 자세는 목과 어깨, 허리, 다리가 지면과 수직으로 되어야 하며 눈높이에 맞는 모니터와 팔의 접히는 각도가 자연스러운 직각이 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자세도 3~4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있다면 아무리 좋은 자세라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 시간에 최소 몇 분씩은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서서 일을 하든, 앉아서 또는 누워서(?) 일을 하든 마찬가지랍니다.
건강에서 시작해 생활, 문화까지 이어지는 서서책상 이야기
누군가의 건강문제에서 비롯된 필요에서 시작했지만 ‘서서책상’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서 일을 하려는 이유와 그 그거를 들어보니 생활과 문화까지 연결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벌을 주기 위해 교실 뒤에 나가 서 있으라고 하지만 유럽에서는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많이 서서 공부를 한답니다. 회의를 집중적으로 짧게 하기 위해 회의실에 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테이블을 놓아두는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에 ‘서서책상’이 몇 개 있으면 지나다가 잠깐 짐을 올려놓고 쉴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 책상에 기대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벼운 만남이 일어나고 부담 없이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죠.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수개월째 서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장점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관심이 생겨서인지 부쩍 관련 소식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페이스북 본사에 서서 일하는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 곳에서 서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한 관공서에서 고가의 서서책상을 구입했다는 구설수가 일기도 했습니다.
‘서서 일하자’는 운동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의 필요에 따른 생산과 이 과정을 통한 사람의 변화, 저마다의 방법으로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한 ‘생활생산’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이야기죠. 그 첫 번째로 ‘서서책상 만들기’가 진행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또다른 필요와 사람들이 모이면 다양한 생활생산품들을 작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자 커뮤니티목공방 ‘생활생산워크숍’에서는 ‘손녀를 위한 생각하는 의자’,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를 위한 나무 밸런스 바이크 만들기’ 등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서서책상’도 2기 계획이 있고요. 관심 있는 개인과 단체는 판돌 원쓰에게 메일 주세요. wons@haj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