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중등과정에서는 올해 3월부터 목화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싹이 트고, 튼튼한 줄기가 뻗고, 꽃이 피고 지면서 9월부터는 목화솜이 환하게 터지기 시작했답니다. 목화솜을 따다가 실을 뽑아 그 실로 직조를 해서 천을 짜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키워나가며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는 중이지요. 그 과정 중 하나로 ‘실’과 친해지기 위해 베틀을 활용한 직조를 배우고 있습니다. 올해 6월에는 해남에 내려가 베틀을 만들고 계신 이세일 목수님 댁에서 1주일간 직조를 배우고 오기도 했답니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지난 창의서밋 기간 동안 직조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이번 직조워크숍은 ‘생활기술공예 전시: 손의 기억과 삶의 기술’이라는 전시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남도를 근거지로 작업하고 있는 생활기술 작업자들과 장인들의 공예품과 제작기들을 전시하는 자리였습니다. 직조기, 맷돌, 빗자루, 숟가락 등등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일상을 찬찬히 돌아보며 우리시대의 생활과 기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서 중등과정 청소년들은 테이블 베틀, 띠 베틀, 4축종광 베틀을 활용하여 시연을 선보이기도 했고 띠베틀, 접시베틀, 팔찌매듭을 체험할 수 있는 워크숍도 열었습니다.
직조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준비하고, 실을 걸고, 마무리하기까지 꼼꼼하게 집중하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실을 한 번 잘못 걸었다가 실이 엉켜서 거의 5시간을 들여서 풀기도 했고, 딱 한 줄 잘못 건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동선은 막막함과 동당거림을 거쳐야 하지요. 또 평소와는 다른 자세로 오랜 시간 동안 직조를 하다 보니 어깨도 아프고, 목도 아파집니다. 실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지겹기도 하다가 또 아무 생각 없이 씨실을 움직이고 있노라면 ‘참, 실과 친해지는 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온갖 생각들이 스치지요. 직조를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간, 마음, 자세들을 몸에 익히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직조워크숍에서 다양한 청소년 그룹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홍콩창의력학교의 청소년들, 적정기술을 공부하고 있는 성미산학교 청소년들. 또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목화 프로젝트를 활기차게 진행하고 있는 이와키농업고등학교 청소년들과는 직조워크숍뿐만 아니라 중등과정이 일구고 있는 노들섬 목화밭에 같이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 밖에도 전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베틀 사용법, 직조 용어들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직조를 하면서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울상을 짓던 청소년도 있었고, 생각보다 손에 잘 맞아 진하게 몰입하던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물론 “난 못하겠어.”하고 중간에 뛰쳐나간 청소년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오호라, 이것 봐라.”하며 중등과정 죽돌들의 안내와 설명에 따라 직조의 과정을 훌륭하게 거쳐냈습니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되며 눈앞에 드러나는 직조 과정을 보면서 흥미로워하던 그들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 다양한 표정들만큼 다양한 직조물들이 나왔답니다.
실을 베틀에 걸고, 직조를 하고, 마무리를 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베틀 직조는 과정에 충실하지 않으면 곳곳에서 실들이 엉켜버립니다. 그리고 또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두르거나 단번에 끝내버리려고 할수록 실들은 끊어져버립니다. 과정 하나하나를 굼실굼실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별다른 지름길이라는 것이 없지요. 손길이 실에 충분히 익은 만큼, 실이 손길을 충분히 거친 만큼 그 모습을 간신히 드러내어 보여주지요. 손의 시간과 삶의 시간이 서로 씨줄과 날줄로 만나 엮여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정희의 시 ‘베틀 노래’를 보면 “내 땀의 한 방울도 날줄에 스며”드는 시간. 베틀에 실을 간신히 걸어도 자꾸만 의도치 않게 씨실들이 엉키며 “풀어 감은 고통의 실꾸리”의 시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오가는 만남의 잉아”를 교차하는 시간. 이 시간들을 온전히 거쳐내었을 때에 한 폭 잘 짜여진 “새벽바람 막아줄 실비단”을 만져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중등과정이 손끝으로 갈아세운 직조 천을 하자마을 청년과정이 짓고 있는 에너지자립하우스 ‘살림집’의 커튼으로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살림집 새벽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든든한 커튼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