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접어들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문하겠다던 손님들이 모두 약속을 취소했고, 하자마을 역시 일찍부터 준비하고 널리 초대했던 일들을 기약 없이 미뤄야 했습니다. 하자작업장학교, 로드스꼴라, 영셰프스쿨 등 하자 네트워크학교는 일주일 가까이 휴교를 해야 했고, 이웃한 사회적기업이며 창업팀들은 예정했던 행사들이 연이어 취소되면서 타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질병 하나로 갑자기 세상이 마비되어 버렸으나 이로 인한 위험과 책임은 각자 개인이 떠맡아야 하는 이 상황은 1년 전에도 그랬듯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문을 닫아 건 채 무력감에 빠지기 보다는, 그간 돌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을 챙기고, 동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2015년의 두 번째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하자마을입니다.
가장 큰 일 중 하나는 6월 26일에 진행하려 했던 두 번째 달시장이 연기된 것이었죠. 영등포 지역 주민들, 특히 어언 5년째에 접어든 달시장과 함께 자라난 이웃 어린이들이 얼마나 이 날을 기다리는지 잘 알기에, 섭섭한 마음이 컸습니다. 세 번 진행하면서 조금씩 힘을 받기 시작한 작은 달시장도 6월 내내 진행을 못했습니다. 달시장이 워낙 비중이 큰 일이라 주로 담당했던 기획2팀 판돌들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생각지 못한 여유를 틈타 그동안 바빠서 챙기지 못했던 일상적인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리 저리 여러 팀의 짐이 쌓여 있어 마음 한켠이 무거웠던 지하 1층의 창고 공간을 다들 달려들어서 말끔히 정리했고, 5월에 함께 일했던 파트너들을 만나서 피드백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간 참고하려고 모아 두었던 자료들을 찬찬히 읽어보기도 했고요.
매주 수요일 점심에 열리는 나눔부엌은 이런 시기일수록 계속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 속에 중단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시는 분들이 좀 줄어들긴 했으나 그간 바빠서 들르지 못했던 하자 내 사회적기업 등 이웃분들이 함께해 뜻깊었습니다. 하자와 인연이 있는 사회적경제 팀들은 대부분 문화예술, 서비스 분야라서 이번 메르스 사태로 공연이며 예약, 행사 등이 줄줄이 취소되어 타격이 컸다고 하네요. 함께 밥 한 끼 나누면서 힘을 모아 보았습니다. 나눔부엌 이후 검도, 호신술 강좌도 이어졌습니다.
일일직업체험을 비롯해 일반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기획 1팀에는 학교들의 잇따르는 취소 문의는 물론 이 사태로 인해 밀리게 된 학사 일정을 향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교사들의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주말에 오는 토요진로학교와 청소년운영위원회도 한 주씩 일정을 연기하거나 잠정 연기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장기화된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장 영향이 컸던 팀은 하자작업장학교를 비롯한 네트워크학교였습니다. 서울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적지않은 수의 학생들이 경기 지역에 사는 터라 결국 하자작업장학교, 로드스꼴라, 영셰프스쿨 모두 함께 열흘 가량 휴교를 해야 했습니다. 몇 년째 모든 네트워크 학교 학생들이 함께했던 고정희 시인 추모 기행도 취소되었고요. 작업장학교 단체 카톡방에는 ‘살만 찌고 심심해 죽겠다, 학교 가고 싶다’는 호소가 이어졌다고 해요.
각 팀과 하고 있는 일에 따라 이번 사태로 인해 체감되는 세상의 모습이 여러 가지였습니다. 많은 일정이 취소된 첫 주 토요일에는 대부분의 판돌들이 모여 이런 위기 상황에서 결국 각 개인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1년전 세월호를 떠올렸고, 두 상황을 비교하면서 각자의 생각, 그리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6월이 지나고 7월을 맞았습니다. 벌써 1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어느덧 사람들의 일상은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메르스 관련 근황이 매일 전해지고 있으나 대다수 사람들은 ‘이제 나도 좀 살아야겠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거듭되는 재난에 무뎌진 것일까요, 다 귀찮아진 것일까요. 하자마을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네트워크학교들은 방학을 앞두고 각 수업들의 쇼하자에 여념이 없고 7월 31일 달시장도 열립니다.
다만 이렇게 바지런히 움직이는 까닭은 지난 일들을 다 잊고 내 일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보다는 함께 모여 생기는 지혜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여름, 다시 마을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