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틀면, 각종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농촌이나 어촌에서 삼시세끼 차려먹기, 냉장고 재료로 화려한 요리 만들기, 건강과는 거리가 있지만 쉽고 대중 입맛에 맞춘 요리를 하며 쌍방향 중계하기, 각 지역별 요리대결…. 하지만 과거에 비해 실제 집에서 요리를 하는 시간은 현격히 줄었고, 많은 선택권을 산업에 넘겨준 시점에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많은 시간을 들여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까? 먹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 걸까?
<고민/문제의식>
❍ 2013년.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를 넘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학생 대상 주제중심 통합활동을 만들게 되었고, 2014년에 신규로 식생활-먹거리를 주제로 잡게 되었다. 먹는다는 것은 특수한 직종, 직군에 그치지 않고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 무궁무진한 변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 고민은 파편화된 신자유주의와 저성장시대 청소년 시기의 삶과 생활에 관한 교육 경험은 어떤 것이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고, 주 1회 10주차 만남이라는 물리적 한계 속에서 말이다.
생각 하나는, 저성장 시기에는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희미해지기에 더욱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서천석의 말이었다. 하여 돈으로 사서 소비에 의존하는 무기력의 비중을 줄이면서 생활 중 직접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들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구나,느끼는 경험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 될 거란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소소하지만 밥 먹는 행위 가운데, 주체적으로 힘을 만들어내고 또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느껴보는 경험도 의미있을 것이다.
생각 두 번째는, 개인의 기술이 아닌 타자를 인식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리는 감수성과 책임을 생각하는 것. 시민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단지 요리를 배우고 직업을 체험하며 자립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며 협력하여 무언가를 해결해보는 현장에 참여하는 프로젝트형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소재/도구가 어떠하든 질문을 접하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하고 기존의 자신을 성찰하고 다시 글 등을 통해 표현하는 것. 거칠지만 인문학적 사고와 요리라는 예술과의 통합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먹거리 관련 정보 중,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를 나눌까? 우리 공교육 청소년생활을 중심으로 고르고 요리하고 먹고-라는 과정으로 구분했다.
‘무엇을 먹나’라는 질문에서는 ‘먹는 것이 내 몸이다’라는 말처럼 음식을 바꾸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 삶의 경로가 바뀐 사람들도 많다. ‘어떻게 먹나’라는 질문에는 건강과 기쁨이 있는 요리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요리를 하면서 미미하게나마 단지 소비자에서 구체적 생산을 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몰입의 즐거움도. ‘누구와 먹나’ 1인 가구들이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집밥 프로젝트처럼, 함께 먹는 즐거움 또한 몸으로 느껴볼 일이다. 또한 ‘어떤 재료로’ 라는 질문에서는 어떤 먹거리를 선택하고 기르느냐에 따라 생태 환경을 구성하고 구조악에 저항하는 적극적 시민 되기를 이야기할 수 있다. 경제적 차이에 따른 식재료와 요리 습관을 보면서는 요리가 개인 홀로 느끼는 ‘맛’을 위한 사적인 차원을 넘어, 건강을 위한 권리와 같은 공적인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화학제품을 먹는 것이 아닌 ‘자연 온 생명’을 먹는 것이기에 고기와 곡식을 손으로 만지며 생태와 연결되는 질문에 답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재구성해보는 감각을 건드려보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몇 회 안 되는 프로젝트에, 과연 가능할까 싶은 참으로 거창하고 야무진 꿈을 담았다.(욕심일까?) “이것이 ‘정답’, ‘대안’이라고 하여 계몽적, 도덕률처럼 따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것을 접하고 경험하며 ‘관점’을 열고, 스스로 자연 재료 본연의 맛을 보고 즐기며 후각, 시각, 미각인 몸으로 느끼는 것. ‘정답’인 레시피를 따라하고 외우는 게 아니라, 신이 만든 섬세한 맛을 느끼는 감각이 화학 조미료와 한정된 음식 경험 때문에 닫혀 있는데, 이를 열어주는 것. 자신의 상태와 욕구도 돌아보며, 과감하게 재료를 사용하고 창작할 수 있는 것. 서로의 ‘입맛’을 존중하는 것. 먹는 것-길러 선택하고 요리하고 먹고 정리하는 과정이 ‘요리’라는 인식. 요리의 실천, 선택이 세상을 바꾸는 한 톨의 쌀과 같은 일이라는 것. 어느 책의 문구처럼, 깨어있는 소비자에서 참여하는 시민이 되는 것. 요리사가 되건 아니건 삼시세끼 누구와 함께 무엇을 먹을 지를 통해 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보는 것. 그것도 즐겁게 놀면서!”
❍ 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2년차 되는 시점에서 읽게 된 마이클 폴란의 글이 있다. 아래 그의 말에 동의하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먹거리와 관련한 다양한 삶의 배움이 더욱 다양하게, 성찰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많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입맛에 맞는 규격화된 레시피와 이를 따라해 보는 것을 넘어서 말이다. 그리고 ‘어떤 요리사가 될까’를 넘어, 식-의-주 중, 매일 선택하는 먹을 것이 나의 삶은 물론이고 어떻게 공적인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지도 포함해서.
"요리를 하면서 나는 요리가 사회적, 생태학적 관계망 속에 우리를 끌어들이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즉 동식물, 흙, 농부, 우리 몸 안팎의 미생물, 그리고 요리로부터 양분을 얻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과의 관계 말이다. 무엇보다도 요리가 주방에서 서로를 연결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이한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바느질을 하거나 양말을 꿰매거나, 차의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외부에 위탁하지 못한 다른 집안일들에 관해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진 않으니까. 요리는 이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요리 자체 혹은 요리 과정은 우리가 떨쳐내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떤 감정적이거나 심리적인 힘이 있다.”
<기획/구성>
❍ 기획
주제중심 통합활동으로 _(1) ‘가치’에 대한 고민, 공적 가치로 일을 만들고 있는 다양한 ‘어른’ 및 친구와의 만남과 협력, (2) 시뮬레이션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현장 기반, (3) 일상을 재구성해보고 공공적 현장에 참여하는 경험을 하도록 하고 가능한 한 몸을 움직이는 노동으로 구성하였다. ‘요리사/셰프’ 직업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에게 '삶/생활의 감각과 방향‘을 고민해보는 경험의 장을 만드는 것. 공교육 청소년들이 모이는 토요일은 요리하는 분들이 매우 바쁜 날이다. 한 사람이 전체를 진행하기는 어렵기에, 옴니버스 식으로 독립된 워크숍을 연결하여 하나의 맥락을 가지도록하고, 회차별로 시작과 끝의 연결짓기를 수업 중 일부로 구성해 청소년들이 전체 의미를 잇도록 해보았다. 특히, 사회 현장과 결합하여 기여해보는 콘셉트를 교육과정에서 강화했다.
❍ 구성
◗ 삶 구성과 연결되는 주제 : <온 삶을 먹는 요리>
: 직업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하되, 요리사가 꿈인 청소년들이 기술을 배우는 활동에 그치지 않고자 했다.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라는 책에서 초점을 연결하여 잡은 제목인 <온 삶을 먹는 요리>는 그대로 유지했다. 본래는 농사부터 매우 중요하게 연결되는 의미이나, 본 활동에서는 시간적 한계로 생산(농사) - 유통(이동 및 구매) - 소비(선택, 요리, 섭취)의 단계를 자연스럽게 고민해보도록 하지만, 감수성을 환기하도록 하고자 했다.
보통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제공되는 급식, 삼각김밥 등 편의점의 조제된 식품, 대형 마트에서 자르고 포장한 고기나 채소 등을 ‘상품’으로 사 먹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다. 또 유명한 셰프와 요리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은 늘었지만 일상에서 자기 힘으로 손수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눠먹는 시간은 줄었고, 돈으로 구매, 소비한다. 매일 세 끼를 먹는 일상의 이야기와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만나고 답해보는 과정이 중요했다. 먹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 함께 먹는 경험을 통해, 일상을 만드는 다른 상상을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따라서 먹거리 재료의 생산부터 함께 먹기까지의 과정을 활동으로 짚어보았다. 대도시 청소년들임을 감안해 생활환경을 근거로 하는 도시농업/텃밭을 가보고 그 밭의 생산물로 요리를 해보며 공동체적 유통방식인 CSI이나 정기 꾸러미 판매 등을 알아보았다. 요리 과정에서도- 먹는 것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구성한다는 것, ‘자연스러움’의 중요성과 제철 농산물과 밥상을 다루는 방식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우리가 먹는 고기와 곡식들이 ‘생명’이었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생태계의 다양한 이들을 떠올리는 기회를 배치했다.
◗ 작은 의례 / 맥락 공유 / 생활 태도
: 조리만이 아니라, 전후 과정에서 작은 생활의 의례와 약속을 만들고 지켜봤다. 작은 의례로 식사 전 바람과 햇살과 농부님 등에게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놀고 배우겠다는 기도문을 함께 읽음으로써 마음을 모았다. 평소 습관을 환기하는 의도로 공동의 약속도 만들었다. 또한 칼을 잡거나 내려놓는 방향, 도구를 정리하면서 요리를 하는 습관도 강조했다. 텀블러와 수저, 앞치마, 머리끈을 챙겨와 활용하고, 정리까지가 요리이므로 조리도구 정리까지 역할을 나누어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지렁이 퇴비장 등을 활용했다. 부모님들을 통해, 일시적일 수 있으나 일상에서 활력이 생겼다거나, 가족들과 먹을 식사를 직접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 어른과의 만남
: ‘어른’의 섭외 기준은, 본 활동에 부합하는 가치와 방향을 가지고 먹거리 관련 일을 하되, ‘요리사’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경험과 경로와 이야기를 가진 분이었다, 연령대도 20대~60대까지 다양했다. 구체적인 직업으로서의 일과,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회고를 보면, 의외로 삶의 본질적인 전환을 해낸 내용에 감동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 손작업/협력
: 손과 몸을 사용한 노동을 강조했고, 개별 작업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과정을 또래 동료들과 협력하여 진행했다. 요리는 물론 외부활동, 쇼하자의 경우도 기획, 인력배치부터 공간 작업, 정리까지 함께했다. 조리 시에도 일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협력해야 일이 되는 동선을 구성하였다. 협업의 즐거움과 효과에 대한 회고들이 많았다.
◗ 감각 확장, 자기성찰 / 쉼표의 시간 만들기
: 타인과 관계맺기, 이를 통한 협력과 동시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중요하다. 기존 정보를 머리로 정리하는 대신 ‘지금-여기에서의 느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느껴보고 기록하기’, ‘타인을 생각하며 기록’하는 등의 활동으로 구성했다. 평소 맛보지 못했던 신선한 제철 채소 등 재료에 대해 혀와 몸이 느끼는 맛, 온도 등 주관적인 감각에 집중하여 떠올려보도록 했다. 그리고 평소 먹거리와 비교해 새로운 맛의 조합을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회고 시엔 평소 생활을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고, 침묵 속에서 단어들을 떠올려보는 등 “~를 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해진 과제에서 벗어난 묵상의 기회를 만들어 자신을 돌아보는 틈새를 만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습득하러 온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학원과 학교 생활과 다른 쉼표의 시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 스토리 + 작업
◗ ‘천천히’ ‘함께’ 라는 약속을 공유하고, 페어푸드 관련 영상을 통해 돌봄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식생활 상황을 보면서 이것이 공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 주강사인 민경은 선생님과는 먹는 것이 사는 것, 나를 위로하는 음식으로 ‘내 인생의 소울푸드’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라이드 치킨은 어떤 음식일까요? 누가 먹었던 음식일까요?”
“예전 계급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먹었던 음식들이 왜 지금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을까요?”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요시히로의 <차별받은 식탁> 속 이야기를 공유했다. 오사카의 한 부락 출신인 저자는 식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으로부터 각국의 차별 받는 사람들이 서로 엇비슷한 소울 푸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르러 10여 년 간 조사활동을 펼쳤다.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개인의 역사도 살펴보기로 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식, 맛을 넘어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음식은 삶을 들여다보는 매개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맛을 넘어 나를 위로하는 음식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물론 수다와 함께.
“너무 배가 고파서 엄마한테 밥을 해달라고 했는데, 귀찮으셨는지 뚝딱 계란밥을 해주셨다. 달걀 후라이 반숙과 치즈 한 장, 참기름, 간장만 있으면 계란밥이 된다. 정말 맛있다.”
“할아버지랑 밤에 먹은 추억의 계란 볶음밥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해주시는데, 들기름과 집 간장이 들어간다.”
같은 계란밥이지만, 그에 담긴 추억과 레시피가 다르다는 것을 나누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난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김치랑 채소가 들어간 이 음식은 참 좋아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해준 음식인데, 엄마 생각이 날 때 스스로 해먹는 요리이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인 두부, 스팸, 돼지고기, 팽이버섯이 들어간 김치찌개는 정말 맛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실 때 엄마가 간편하게 간식을 해주시고 나가셨다. 집에 혼자 있어서 외로울 때 달콤한 토마토 설탕조림을 먹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직접 자주 해 먹는다”
저마다의 사연과 관계가 얽힌 소울 푸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요리하는 과정으로 풀어내니, 여러 감각을 고루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또 <내가 힘이 나는 밥상>을 그림으로 그려, 각종 쌈요리용 식재료를 펼쳐두고, 랜덤으로 서로에게 그 요리를 만들어서 건넸다. 상상을 다른 사람이 만들어 선물하는 과정이었다.
◗ 전 에코밥상 대표셨던 김경애 선생님과는 ‘우리, 밥 해먹고 살아요’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요리사를 꿈꾸진 않았으나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고 생협운동 등 일을 만들고 추진해 온 이야기, 화려하게만 보이는 셰프나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실제 생활과 해야 하는 공부 이야기도 들었다. 인구 구조의 변화, 몇 년 후 독립하면 겪게 될 1인가구의 식생활, 공장식 축산이나 GMO, 방사능 오염, 소비 패턴에 따라 억지로 채소 모양을 변형시켜 키우는 등 전반적인 먹거리에 대한 맥락도 잡았다. 계몽적으로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무엇을 바꿔볼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부터 식재료를 잘 고르는 방법까지. 그리고 통보리가 들어간 샐러드와 마요네즈로 ‘끼니’를 만들고 다양한 방법으로 달걀을 삶아보기도 했다.
◗ 옥천에서 농사짓는 농부이자 요리, 예술 선생님인 한은미 선생님과는 제철채소와 함께 ‘나의 미각은 안녕하신가요’ ‘나는 어떤 맛과 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나눠보았다, 농사는 노동이자 놀이라는 이야기. 텃밭에 허브를 심고, 바람과 햇볕이 만드는 각종 풀들을 그냥 먹어보았다. 평소 못 먹어본 방풍나물, 민들레를 비롯해 다양한 풀을 날것으로 맛보고, 또 데쳐서 직접 담근 된장과 참기름, 들기름를 넣어 무쳐내 현미밥에 곁들였다. 3년 묵은 천일염과 다양한 허브를 나무절구에 넣고 빻아 모두가 다른 허브솔트를 만들고, 달걀프라이와 현미 리조토를 만들어 각자의 허브솔트가 얼마나 다양한 맛을 내는지 돌아가며 맛보기도 했다. 나는 어떤 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지 적어보고, 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몇 cm로 잘라 몇 분을 조리하는 식의 규격화된 레시피가 아니라 내 눈과 코와 혀로 느끼는 맛으로 창작하는 요리였다.
◗ 농부와 요리사, 아티스트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대안 장터 ‘마르쉐’에 이영연 선생님과 참여하기도 했다. ‘마르쉐’에서는 청소년들의 배움이라며 특별히 부스를 배려해 주셨다. 우보농장 농부님에게서 구매한 각종 곡식으로 강정을 만들어 판매해 보았다. 평소 먹는 간식과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 간식, 간식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농부님과 요리사를 찾아 인터뷰하고 블로깅도 했다. 현장에서 자신들이 직접 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큰 기쁨을 느꼈다는 회고도 있었다.
◗ CSA, 꾸러미, 생협 등 유통과 도시 안에서의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자 이웃에 위치한 문래커뮤니티 텃밭을 방문하기도 했다. 많은 도시텃밭 중 특별히 이 곳과 연결한 것은 도시텃밭을 ‘생산’으로만 한정하여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개인이나 가구별로 분양을 받아 자기 밭을 가꾸는 곳들과는 달리 문래커뮤니티 텃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딱히 구역과 당번 없이도 주섬주섬 농사를 짓는다. 동네에 사는 목수와 함께 여름용 포차를 만들고 덩굴이 올라갈 대도 만든다. 하자에서 간다고 하니, 마침 하려고 했던 넝쿨 작업대를 만들어두셨다. 주중 주말 ‘벙개’로 같이 요리해 먹고 놀기도 한단다. 이러면서 침침한 공장 건물에 색채가 입혀지고 서로 지지하는 관계망이 생겨난다.
이 곳은 섭외를 위해 추운 연초부터 찾아갔다. 단지 ‘강사 섭외’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이 커뮤니티와 청소년이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역시 달랐다. 연간 계획 모임은 물론 단체카톡방까지 초대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 분의 텃밭 멤버들이 함께 동네 투어부터 옥상에서 팀별 게임을 통한 미션, 레시피를 모른 채 맛의 기억과 상상을 떠올리면서 하는 요리를 청소년들과 진행했다. 멀겋게 밀가루가 좀 많았지만 얼마나 맛있었는지! 옥상에서 바로 딴 허브로 모히토와 샐러드도 만들었다. 20년 후 오늘의 일기와 내가 동네에서 만들 텃밭 상상도 나누었다.
◗ 요리로 사업을 하는 곳 홍대 슬로비를 방문해 오가니제이션 요리 한영미 대표도 만났다. 슬로푸드와 슬로라이프, 사회적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 여러 회차를 지나 쇼하자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 평소 잔치나 파티를 돌아보며 콘셉트를 잡았다. 제목은 <작은 초대: 나눔밥상>. 벽에는 10회차에 걸친 회고와 그림들이 붙었고, 환영하는 꽃들을 조금씩 꽂았다. 멀리 가평, 용인, 안산에서도 부모님과 친구들이 참석했다. 1부에서는 각자 배움을 정리한 에세이를 발표했고, 질문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낸 질문들을 가지고 참석한 모두와 함께 하는 토크쇼를 진행했다. 2부에서는 <나에게 힘을 주는 요리>를 그림으로 그리고 랜덤으로 바꾸어 그 밥상을 차려 선물하고 같이 먹는 시간을 가졌다. 요리는 ‘내가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싶은 요리’로 만들어온 포트럭 파티와 쌈요리를 합쳐둔 식탁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고백들도 이어졌다.
ㅡ “이전까지 요리는 내가 혼자 해서 맛있게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하는 게 더 좋은 걸 알았어요. 또 파티쉐가 꿈이어서 제게 요리는 계량이 가장 중요한 거였어요. 그런데 각자 다른 맛을 보면서, 꼭 정해진 대로가 아니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ㅡ “타인과 같이 먹을 때 서로의 입맛을 어떻게 배려해 줄 것인지 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가족들이 뭘 좋아하는 지 궁금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 오면서 아빠가, 언니가 어떤 맛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처음 궁금해졌어요. 요리를 잘 한다는 건 상대방의 입맛을 고려하는 거구나, 또 단순히 포만감은 배만이 아니라 머리에서도 채워질 수 있구나 하는 것도 배웠어요.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부름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다른 특성으로 소통하기 위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생활기준을 세웠습니다.” -또모
ㅡ “청소년들의 먹는 문제 해결 방안,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들의 음식, 패스트푸드는 어떻게 나왔을까, 또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음식을 먹는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 요리를 할 때면, 미술을 할 때와 같이 갑자기 편안해지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에게 요리란 인생입니다. 요리를 만들 때 갈등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참치캔
ㅡ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디자인하기 위해 나누고 함께하는 것이 정말 필수요소라고 느꼈습니다. 먹는다는 건 개인의 일이 아닌 공공의 일이라는 것. 이제부터 삶에서 진짜 소중한 사람들, 또는 그렇게 될 사람들에게 진짜 나누는 것을 내보여야 될 것입니다. 음식으로 함께 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진짜 행복한 일이에요. 아직 확실한 진로를 정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내 에세이의 제목은 떠올랐어요. 갈림길에서 ‘하자’라는 길을 선택하면,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것이 요리가 아니더라도,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아요. 삶은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걸요.” -빛길
ㅡ “여기 와서 요리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이 달라졌어요. 실력 뿐 아니라 재료까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셰프인 것 같아요. 농부님들이 땀 흘려 키우신 훌륭한 재료이기에 감사하게 사용하겠다는 마음,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잘해서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마인드, 요리는 요리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담긴다는 생각 등이요.” -제이니
ㅡ “항상 엄마가 해주시는 것만 먹다가, 처음 요리를 해서 드렸어요. 엄마가 딱 맛있어 하시진 않았지만, 정말 좋아하셨어요.” -에메랄드
-“나의 미각은 안녕합니다. 처음 먹어보는 야생 풀들이 각각 다른 맛이 난다는 것과 꽤 마음에 든다는 걸 알았거든요.” -루팡
<글을 나가며..>
쌀 하나에 산업은 물론 자연과 생명이 갈래갈래 이어진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자신의 몸과 맘의 소리를 들어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생활의 길을 만든다.
로컬푸드 운동을 다른 한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핵 발전은 석유정점 이후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자원 위기, 식량 위기, 물 부족, 기후변화 등은 서로 연관, 융합되어 상호증폭 중이다. 경제불황, 저성장. 지구적 위기의 배후에는 성장제일주의의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고통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는 우리. 그러나 시민의 힘에 의한 재지역화 움직임이 확산 중이라고 한다. 잘 알려진 영국의 전환마을 토트네스는 먹거리를 중시한다고 한다. 가장 직접적인 사람들의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시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이다. 먹거리에 대한 자기 통제권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다양한 텃밭 가꾸기, 정원 공유, 지역공동체 텃밭과 과수원, 지역공동체 지원농업 CSA, 농민장터, 생협, 학교 프로젝트 등)이 있다.
이번엔 ‘요리’를 중심으로 만났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시민으로의 성장과 순환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먹거리와 연결되는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가족들이 먹는 것과 이상이나 가치를 연결짓는 것은 연금술과 같은 과정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자신이 이상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그러한 비전이 결실을 맺도록 함께 일하는 것을 진정 즐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음식에 열정적이 되며, 스스로 더 건강해지고, 지역 공동체 및 토양과 더 많이 연결됨을 발견하는 것. 모두가 삼시세끼 때우기 바쁜 와중, 각 마을 공간에서 청소년들과 더 나누기를 소망한다.
상반기 토요학교를 마치며. 정해진 것을 수행하는 커리큘럼이나 스킬 교육이 아니라 ‘삶의 교육/생활공간 관계망과 연결된 교육’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재와 주제, 아이템 선정이 아니라, 소박하더라도 ‘질문’들이며 스스로 질문을 떠올리고 답할 수 있는 과정을 기다려주는 것,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리고 기획자이자 교사의 삶을 가는 나 또한 올해 들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향으로 섭생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삶과 유리된 ‘정보’ 전달이 아닌 힘이 있는 대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