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쯤이었나. 여자친구가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평소 목공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게 생각났다고.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더니 하자센터에서 ‘일상 목공 워크숍’을 다음 주에 연단다.
그때만 해도 하자센터는 그 존재만 알고 있었지, 관심은 거의 없었던 차였다. 굳이 접점을 찾자면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달시장’에 놀러 간 정도? 하자센터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목공에 대한 이끌림 때문에 워크숍 참가신청을 했다.
일상 목공은 하루나 이틀에 걸쳐 간단한 목공 소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다. 목공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도 소정의 참가비만 내면 하자 목공방에서 각종 도구를 이용할 수 있다. 목공방에는 톱이나 전동드라이버처럼 흔한 도구부터, 테이블쏘, 직쏘, 드릴 등 전동도구도 갖춰져 있다.
나의 첫 작품, 스툴(stool)
내가 워크숍에 처음 간 날은 대략 5명 정도가 참석했다. 다들 처음이라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간단한 소개를 하며 딱딱한 분위기를 풀었다. 일상 목공을 주최한 당사자이자, 하자센터 목공방을 책임지는 ‘원쓰’다. 원쓰는 목공 문외한들을 데리고 재활용 나무 손질부터 톱으로 나무를 써는 법, 각종 도구 사용법 등을 알려줬다.
그날 우리가 만들기로 한 건 스툴(stool)이었다. 탁자로도, 의자로도 쓸 수 있는 활용방법이 다양하다. 스툴에 필요한 나무를 일일이 자르고, 구멍을 뚫어 나사를 박았다. 가장 마지막에는 사포질과 스테인칠을 번갈아가며 해야 한다. 사포질은 나무의 거친 표면을 부드럽게 해주고, 스테인칠은 나무에 색을 입히고, 변형되지 않도록 코팅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완성한 스툴은 제법 그럴싸해보였다. 직접 나무를 다듬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목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있다가, 목공의 즐거움을 알게 되자 더 관심이 생겼다.
하자 목공방은 수업이 있는 시간만 제외하면 예약을 하고 이용할 수 있다. 일상목공이 끝난 뒤 나는 원쓰에게 미리 연락을 하고 목공방으로 달려갔다. 어떤 일이나 그렇듯이 이제 막 시작할 때가 가장 재밌다. 목공의 재미에 푹 빠진 나는 아이폰 나무 스피커, 의자, 스마트폰 거치대, LED스탠드, 숟가락, 접시, 책꽂이, 발받침 등을 만들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몸은 피곤하지만 목공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저녁식사를 거른 일도 부지기수다.
나는 주로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물건 위주로 만들었다. 자기 전 취침등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LED스탠드를 만들었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발이 시려워서 책상 밑에 둘 발받침을 만들었다. 가끔은 유투브 영상을 찾아보며 만드는 방법을 배우거나,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목공에 대해 잘 모를 땐 모든 게 어렵게 느껴졌지만 하자 목공방에서 직접 자르고, 붙이고 하다보니 시간은 오래 걸려도 결과물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하자 목공방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 ‘조한’과의 만남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하자 목공방을 들락거리다보니 자연스레 ‘하자센터’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도 하자센터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작년 8월말 제주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의 일이다. 제주도에 갈때면 항상 묵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가시리에 있는 타O텔O 게스트하우스(너무 유명해질까봐 차마 공개하지 못하겠다). 이곳에선 정해진 시간에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자리가 정해진 건 아니라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한다.
그날 아침 나는 함께 여행을 온 친구와 함께 빈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잠시 후 동그란 안경을 쓴 한 중년 여성분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것 빼고는 별다른 대화는 하지 않던 중 그분이 먼저 “여행 오신거냐”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제주도와 게스트하우스의 매력, 앞으로의 일정 등 처음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던 차에 하자센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이행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기 때문이다. 나도 며칠 전에 원쓰에게 이행기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행기라는 쉽게 말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요즘은 20~30대도 많이 겪는다고 한다. 나 역시 최근에 목공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하자 목공방에 다니다보니 이행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야기를 한참 들으시더니 그분은 하자센터에 관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분 역시 “나도 원쓰를 안다”고 말하시는 게 아닌가. 세상 참 좁기도 하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원쓰를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그런데 함께 온 친구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해보더니 조심스럽게 그분에게 물었다.
“혹시 조한혜정 선생님 아니신가요?
조한혜정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하자센터를 만든 분 아닌가? 그런데 그분이 왜 여기에? 의문이 멈추지 않는데 맞은 편에 계신 분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네, 맞아요.”
반가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교차했다. 나와 친구 모두 조한혜정 선생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얼굴은 본 적이 없어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 분 앞에서 하자센터를 설명했구나. 얼마나 우스웠을까. 다행히 선생님은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과 하자센터를 이야기할 수 있어 재밌었다고 말씀하셨다.
하자센터에서 목공을 할 수 있고, 원쓰를 만난 것도 참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주도 외딴 마을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선생님과 한참을 더 대화를 나누고, 영광스럽게도 번호를 교환할 수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 뒤에도 하자센터를 갈때면 그때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나도 모르는 새 찾아 온 이행기
처음 일상목공 워크숍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목공이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는데 불과 몇 달새 많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어쩌면 나는 목공을 계기로 이행기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당장 삶의 방향을 틀 순 없겠지만 조금씩 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신문사에 그동안 만든 목공 작품을 다룬 연재기사를 썼다. 만드는 방법부터, 왜 만들었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누군가 그 글을 읽고 목공에 관심을 가지고, 나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도 기쁠 것 같다. 나는 왜 목공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한편으론 게을러져서 하자 목공방 가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겨울이라 역시 춥지만, 가끔 목공방을 갈 때면 마음이 편해지고, 작업도 즐겁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지난 번에 완성하지 못한 쟁반이 자꾸 떠오른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엔 목공방을 가야할 것 같다.
:: 글_위디(전기신문 기자)
커뮤니티목공방은 2011년 시민사회의 허브로서 사회적 연결과 실행 기반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공방입니다.
쉬운 소비문화 시대에 간단한 도구와 기술로 생활의 필요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공간입니다. 더 쉽고 더 가벼운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삶의 기술로서 목공작업을 지향합니다. 교육과 작업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땀 흘리고 생각하며, 그 기억을 손에 담아내려 합니다. 학교 안팎의 청소년, 지역주민, 동아리들과 자연친화적, 대안적 삶의 기술을 함께 고민하며, 청소년 메이커들의 공유 공간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안내는 목공방 블로그의 게시글(링크)을 확인해주시고, 문의 사항은 원쓰(wons@haja.or.kr)로 메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