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배우는 학교’라니 참 낯선 곳입니다. 그런데 좀 특이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학교’하면 선생님이 계시고, 칠판이 있고, 교과서가 있을 텐데 <연금술사 일학교>는 그렇지 않거든요. 또 ‘일’만 배우는 것도 아니지요. 일주일에 한 번은 지역에서 창업하신 동네 사장님들의 가게를 찾아 산책을 떠났고, 두 번은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또래 선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어느덧 3개월의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동안 해왔던 ‘기초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상담과 평가, 전체 모임을 하고 있어요. <연금술사 일학교>의 일상, 살짝 들여다볼까요?
지난 5월에 시작한 <연금술사 일학교(이하 일학교)>는, 대학을 가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안전한 음식업 일자리와 진로교육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교육 과정입니다. 교육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랍니다. 그래서 일학교는 학교와 병행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3일 진행됩니다. 하루는 공통프로그램으로 여성네트워크 줌마네의 ‘산책학교’가, 이틀은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현장실습교육이 있었습니다.
먼저 매주 월요일마다 진행된 산책학교부터 살펴볼까요? 여성네트워크 줌마네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단체인데 이번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총 6회 동안 산책학교는 지역 내에서 사업하시는 ‘개념 있는’ 가게들을 찾아가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연남동의 동진시장과 <해달밥술>, 상수동의 <앤트러사이트>, 서촌의 <사직동 그 가게>, 혜화동의 <인생의 단맛> 등을 다녀왔어요. 해달밥술 사장님은 직접 말린 유기농 시레기를 한보따리 가득 선물해주셔서 이웃들과 나눠먹었지요.
줌마네 산책학교 네 번째 시간인 서촌산책 때 방문한 <사직동 그 가게>
‘개념 있는 가게’란 무엇일까요? 어떤 가게는 멋졌고, 어떤 가게는 작았고, 어떤 가게는 오래됐고……. 저마다 외양과 사연은 다 달랐지만, 우리는 여러 곳의 사장님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통점을 발견했답니다. 그것은 우여곡절을 겪어 성공했다는 성공담이 아니고, 운영에 대한 그 분들의 ‘고민’이었어요.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벌어야 할까, 그러려면 손님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돈만을 위해 손님을 만나는 것일까 등등 그 분들이 운영하면서 부딪힌 고민들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신 과정이 ‘개념’을 만들었더군요.
산책을 마치고 큰 나무 아래 그늘에 모여 잠시 한숨 돌리기
월요일이 비교적 여유로웠다면, 나머지 이틀은 (주)연금술사의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음식업 현장실습교육이 있었답니다. 현장실습교육은 일학교 교육생들보다 조금 먼저 시작한 또래 선배들이 직접 일을 가르치고 돌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그 이유는 또래 선배들과의 관계를 통해 막연히 갖고 있던 일에 대한 생각들을 실제 경험으로 바꿔나가면서 무엇보다 동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조금 다른 일 문화’를 경험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육생들은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일하는 몸’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이 일이 실제로 해볼 만한 것인지, 내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지를 또래선배들과 같이 일하면서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교육생들의 조별 출근표
교육생들과 함께 일하는 <소풍가는 고양이>의 일상
교육생들과 함께 일하는 <소풍가는 고양이>의 일상
얼마 전, 교육생들은 선배들과 함께 기초과정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또래 선배들은 후배들이 자신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유독 말이 없어서 후배들로부터 어색하고 어렵다는 말을 들었던 ‘혁’은 자신의 말 없음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걸 알았다며 앞으로 조금씩 변화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또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가장 친절한 선배로 꼽힌 ‘매미’는 친절함의 고충과 함께 친절하지 않은 자신의 본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답니다. 일학교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간다는 걸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로웠어요.
이렇게 교육생들은 2개월 반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8월부터 다음 과정인 ‘진입과정’에 들어갑니다. (주)연금술사와 (주)오요리아시아, 두 군데로 나뉘어 본격적인 직능교육이 진행되는데요. 이곳에서 ‘음식업’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려면 어떤 능력이 실질적으로 필요한지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책 <일의 발견>에서 저자는 ‘왜 일은 항상 우리를 배신하는가?’라는 부제를 달았지요. 저자는 오늘날 일이 우리 삶의 방식을 지배하게 된 이유를 추적합니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성인기로 이행하는 청소년에게 ‘일의 의미’는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대학을 가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일’이 곧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길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금술사 일학교>가 교육생들에게 그런 곳이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